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흔들리는 30대 여행자. 새것보다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그 어떤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변하지 않는 풍경을 찾아 걷고, 그곳에서 마주한 장면들을 글과 사진으로 이 책에 담았다. 현재 남편과 함께 서교동에서 작은 책방 ‘유어마인드(YOUR MIND)’를 운영하면서 고양이 세 마리와 살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음반, 패션 룩북, 소규모 출판물 작업 등에 참여했다.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직접 팔기도 하는 소규모 공방에 관심이 많아, 가방을 소량 생산하는 제작자들에 대한 인터뷰와 제작기를 담은 책을 준비중이며, 올 가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계절의 풍경과 이야기를 찾을 계획이다. 홈페이지 www.moi-moi.net 트위터 @aloha_garden
나는 일하듯 여행했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정하고,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멋모르는 신입사원처럼 무작정 열심이었다. 두 번째로 샹젤리제 거리를 찾았을 때에는 그 후회가 떠올라 인파를 피해 골목길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골목 하나 안쪽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그 많던 관광객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어지럽고 시끌벅적한 대로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숨통이 트였다. 이 작은 발견은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에 애달아 하던 내 마음속 미욱한 여행자와 이별을 고하게 해주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해야 하고,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비로소 여유를 건져낼 수 있었다. ---「1. 복잡한 샹젤리제 거리를 뒤로하고 공원으로」 중에서
영화 [사랑해, 파리](2006)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한 중년 여인의 짧은 파리 여행기를 그리고 있다. 나는 그 여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 눈물짓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유독 그 장면이 생생한 이유는, 나도 그녀처럼 파리를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울컥 눈물을 흘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사람의 감정은 한없이 풍부해진다. 서울에서 약 9,600킬로미터나 떨어져 일상의 반대편에 앉아 무섭도록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친다. 그들과 나의 거리가 ‘지금’이라는 순간을 예민하게 건드린다. 절대로 완전한 ‘우리’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나’와 ‘너’가 선명하게 보이는 여행의 순간. ---「9. 영화 ‘사랑해, 파리’에 등장한 몽수리 공원 찾아가기」 중에서
여행에서는 실망의 순간들이 종종, 아니 꽤 자주 찾아온다. 마음속에 혼자 품고 있던 완벽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바로 낙심한다. 그 누구도 환상을 품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그날 나는 생마르탱 운하를 따라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10. 생마르탱 운하 따라 걷기」 중에서
그날 사고 싶었던 책 중 몇 권은 의외로 쉽사리 찾았는데, 아무리 훑어봐도 나오지 않는 책 한 권이 있어서 주인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장을 살펴보더니 없다고 했다. 돌아서는데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옆 가게 아저씨를 불렀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또 다른 아저씨를 불러 다섯 명의 남자들이 그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유쾌한 풍경이었다. 결국 그 책은 찾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받았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책을 찾았다는 메일이 온다면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리라.
너와 함께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난 파리 여행은 최고로 행복한 여행이었어. 청소를 해야 했지만 집처럼 편했던 스튜디오, 추운 겨울이라 사람보다 새가 더 많았던 공원에서 너와 함께 한 바게트 점심이 생각나. 우리는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자 다짐했었지. 이 책에는 그때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파리가 있어. 친구야, 너와 다시 파리에 가고 싶어. - 이솜(모델)
동갑내기 친구가 파리에 머물며 천천히 기록한, 도시의 평범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본다. 다시 파리에 간다면 나는 그녀처럼, 파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평범한 서울의 아름다움을 같이 떠올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바쁘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산뜻하고 편안한 모모미의 책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