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전환기 문단과 시문학사

전환기 문단과 시문학사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정가
20,000
판매가
20,000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38g | 152*223*20mm
ISBN13 9791196054571
ISBN10 119605457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재귀적 관광”이란 독특한 용어가 있더군요.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경인 운하의 유람선에서 바라본 풍경을 비아냥거리면서 재치 있게 붙여본 명칭입니다. 이 용어에 담긴 뜻이 우리가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현대시의 획일성’ 문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듯싶어서 진중권이 재귀적 관광을 언급한 대목을 읽어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경인 운하’의 유람선 얘기를 들었다. 유람선을 타고 아무리 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도 보이는 건 양옆의 콘크리트 둑. 얼마나 볼 게 없던지 유람선에서 고작 둑 위를 달리는 자전거만 구경하다 돌아왔단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 대목이다. 볼 게 없기는 자전거 탄 이들도 매한가지. 그들은 유람선을 구경하더란다. 구경을 하면서 구경을 당하는, ‘상보적’ 유람, ‘재귀적’ 관광. 두 개의 손이 서로 상대를 그리는 에셔의 작품을 닮았다.
- 「각하의 삽질미학」, 『시네 21』 857호

이 대목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내용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다듬으면 볼거리가 많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볼거리가 빈약해진다는 사실에 있지 않았습니다. 진중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지적하는 문제는 빈약한 볼거리의 ‘놀라운 실태’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경치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유일하게 찾아낸 볼거리가 ‘사람 구경’이라고 하는 기막힌 현실이 바로 ‘전환기의 서정시’가 처해 있는 착잡한 현실을 시사해주는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삶의 현실이나 자연을 시의 볼거리로 삼던 우리 서정시에서 언제부턴가 삶의 현실이나 자연의 자취가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를 다른 볼거리가 차지하게 되어버린 상황이 떠올랐다는 말입니다.

전환기 서정시의 다른 볼거리란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해야 할 ‘내면 폐쇄 징후’를 뜻합니다. 시인이 삶의 현실이나 자연을 서정의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자신의 시학이나 시쓰기 자체를 서정의 대상으로 삼는 시쓰기. 시인의 시쓰기에 대한 ‘재귀적 관광’, 혹은 시쓰기의 자기 회귀현상. 우리는 이런 현상을 ‘메타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시사에서 일찍이 ‘거울’을 이용한 내면으로의 ‘재귀적 관광’을 시도한 이상의 경우가 최초의 사례라면 ‘자아’를 대신하여 ‘주체’를 내세우는 ‘미래파’ 시인들의 작업은 가장 최근까지 전개되고 있는 시쓰기의 자기 회귀현상일 것입니다.

앞의 인용문에서 진중권은 사람의 손길(‘삽질’)이 자연이라는 대상을 걷어내고 사람의 자취만 확인하게 하는 현실을 네덜란드 화가인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 「그리는 손」의 풍경에 비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두 개의 손이 서로를 그려내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림의 대상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현대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비롯한 현대예술이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을 상실하거나 회피하고 있는 정황,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예술이나 예술가 자신의 내면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정황이 암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 역시 ‘메타예술’의 성립조건입니다.

에셔의 「그리는 손」은 메타예술의 존재 조건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동시에 메타예술의 존재 가치를 반성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가의 손이 내면으로만 수렴될 수 없는 예술의 특정한 존재 조건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셔가 ‘그리는 손’을 그리려고 한 것은 예술의 역사에서 손으로 대표되는 육체가 감당해온 ‘장인’의 역할을 상기하게 해줍니다.

리처드 세닛이라는 사회학자는 『장인』이라는 저서에서 아방그르드 화가인 마르셀 뒤샹이 남자 소변기를 작품의 오브제로 삼는 순간 장인의 예술에서 중요한 전통으로 유지되어온 아름다움의 가치는 상실되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소위 ‘개념 미술’이 주목받으면서 장인의 예술작업을 대표하는 손보다 ‘머리’가 중요한 창작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세닛은 에셔가 주목했듯이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손”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세닛은 특히 “손과 머리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개념’ 미술을 주도하는 지성의 역할을 감성과 연계하고 다시 몸 전체로 확장하는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시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이제는 중요한 성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래파’(‘뉴웨이브’ 혹은 ‘다른 서정’)의 작품들이 간직하고 있는 속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이러한 세닛의 주장을 참고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래파의 시들에 ‘개념’ 시학의 흔적이 여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시를 후원하는 많은 같은 세대 평론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요소가 ‘감각’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그들의 시에 표현된 감각이 많은 경우에 ‘개념화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때로는 하위문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화된 감각’이거나 ‘자폐적인 관념에 덧칠된 감각’ 일 때가 많습니다. 더욱 착잡한 경우는 감각의 문제를 프랑스 철학자인 랑시에르의 주장과 연계하여 논의했을 때 생겨났습니다. ‘시와 정치’라는 주제로 논의된 여러 입장들 속에서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표현하는 작업이 작품의 성과와 연계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감성의 재분할’이라는 명분으로 한국시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표현하려는 시학은 오히려 문학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알리바이로 활용되거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문학의 관심과 책임을 요청하는 진보진영의 해묵은 주장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촉매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일련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동세대 평론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시단은 물론 문단 전체가 프랑스 철학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는 씁쓸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단의 경향 역시 개념적 시쓰기의 증좌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미래파의 시학이 내세우는 ‘주체’의 개념을 살펴볼 때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주체의 개념은 지금까지 한국 서정시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아오던 ‘서정적 자아’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전통적 서정시를 이끌어온 ‘시적 자아’ 또는 ‘화자의 정서’가 시적 대상과의 현실적 관계를 모색하기보다 ‘자기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시적 대상을 시적 자아나 화자의 정서 쪽으로 끌어들여 ‘자기 회귀’에 치중하는 문제점을 노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단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가 오늘 한국 서정시의 또 다른 획일성으로 극복해야 할 ‘서정 단순 징후’를 질타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정 단순 징후’는 그 자체로 별다른 평가나 언급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 문제점이 너무도 수월하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분류 명칭을 갖는 시의 속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 첫째로는 문학제도의 현실에서 서정시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많은 시편들이 이러한 징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이러한 징후를 가진 시편들이 수백 종을 초과하는 문예지와 시집을 발간하는 출판사들, 그리고 그것들과 피드백 관계에 있는 문학 교육제도와의 연관 아래 놓여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우선 수백 종의 문예지들은 매호 총 만여 편을 초과하는 엄청난 분량의 신작시를 게재해야 합니다. 작품 수와 그것을 집필해야 하는 시인들의 숫자를 헤아려볼 때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어떠한 수준을 보여줄지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수준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특징은 작품의 성격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을 서정의 대상으로 삼아 가혹한 삶의 현실로부터 일탈하고 싶어 하는 시적 화자의 자아를 표현한 시편들이 획일화된 서정의 주요한 품목입니다.

자연에 안주하는 서정을 소박하게 재생산하는 시쓰기가 쇄신되지 않는 까닭은 그런 시편들로 문예지의 지면을 채우는 편집위원들의 안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청소년 시절부터 다양한 시각으로 서정시를 감상하고 써보는 학습 기회를 제공할 여력을 갖추지 못한 학교 교육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입시에 대비해야 하는 문학 교육은 서정시에 대한 교육 수혜자의 자유로운 이해 능력과 풍요로운 표현능력을 억압하는 역기능을 초래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누적된 역기능은 199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학 및 사회기관의 문학 창작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까지 몇 개에 불과했던 문예창작과가 수십 개로 늘어나고, 대학마다 개설한 평생교육원의 문예창작 프로그램과 신문사를 비롯하여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기관에서 개설한 문예창작 교실은 이제는 성인이 된 역기능의 수혜자들에게 새로운 문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학 교육의 기회가 다양하고 개성 있는 서정시의 상상력과 언어 표현기법을 습득하는 기회로 활용되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시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풍요롭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시인 지망생들이 수많은 시 잡지를 발간하고 시집 출간을 활성화하는 일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들이 잡지와 시집을 구입해주는 문학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잡지에 등단하여 지면에 참여하고 시집까지 펴내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문학 교육의 수혜자인 그들이 문학 현장에 참여하면서 발표하고 공감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전통 서정을 답습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저의 좁은 소견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시 전문지와 시집 출간이 지나치게 양산되고 그것들의 전반적인 경향이 소박한 수준으로 자연을 기리는 서정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반성과 쇄신의 필요성은 최근 몇 년 동안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승강장의 스크린 도어에 적혀 있는 시편들을 읽으면서 느낀 자괴감 때문에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미래파를 지지하는 일군의 시인과 동세대 평론가들이 이러한 ‘서정 단순 징후’를 ‘자기 회귀’ 현상으로 비판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회귀 현상은 미래파의 시적 경향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메타시’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기 회귀 현상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전통 서정에 안주하는 시편들의 경우에는 자연을 시의 대상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대상에 ‘투사’된 ‘시적 자아’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 회귀 현상을 보인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이라는 대상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셈이죠. 이때 자연은 실재하는 ‘타자’로서의 대상적 성격을 갖고 있지 못한 셈입니다. 자연은 마치 우리가 수음 행위를 하기 위하여 떠올리는 ‘헛것’에 불과합니다. ‘조작된’ 자연이라는 점에서 시의 대상은 부재하는 셈이며 결국 자기 회귀 현상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그렇다면 미래파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래파의 경우에는 시적 자아와 마주하는 대상의 존재가 좀 더 복잡하게 규정됩니다. 그들은 우선 ‘시적 자아’라는 말 대신에 ‘주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시적 자아와는 다른 입장에서 대상과의 관계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파는 우선 시적 자아의 독립성을 부정합니다. 시에 표현되어야 할 삶의 진실은 시적 자아가 아니라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치는 무수한 ‘타자’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포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언어학자인 라캉과 그의 후예들의 관점을 차용한 셈입니다. 대상이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빚어지는 존재의 개념을 그들은 ‘주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본래의 자기를 텅 비어 있는 상태로 규정하고 타자의 흔적을 통해서만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주체는 자기 회귀 현상을 극복하는 시쓰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여기에서 저는 다른 지면에서 거론한 바 있는 시적 자아와 주체의 관계에 대한 소견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 싶어집니다.

매 순간 마주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주체’라면 그것은 그저 텅 비고 허망한 존재의 속성을 일깨우는 개념일까? 또한 ‘타자’들을 통해서 구성되는 ‘주체’의 개념은 본래의 ‘자아’가 없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서 근대의 이성적 ‘자아’를 “현존재의 세계는 공동세계이다. 안에-있음은 타인과 더불어 있음이다”라고 주장하거나 “현존재는 더불어 있음으로써 본질적으로 타인들 때문에 존재한다”고 주장한 하이데거의 주장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주장에서 ‘고립된 자아’가 아니라 ‘열려 있는 자아’, 또는 ‘관계 맺는 자아’의 개념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아’의 개념이라면 구태여 ‘주체’와 대립하는 것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서정적 자아와 다른 서정의 주체」, 『시평』 2012년 봄호

그것을 ‘시적 자아’라고 부르건 ‘주체’라고 부르건 간에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텅 비어 있는 존재의 허망함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존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미래파 시인들의 시적 주체가 수행하는 작업을 착잡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시적 대상인 ‘타자’들과의 관계를 분주하게 도모하는 시적 화자의 언술 행위가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열망보다 오히려 불안과 상실감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혹시 시적 주체나 자아라고 하는 것을 ‘열려 있는 자아’의 가능성이 아니라 텅 비고 허망한 존재의 속성으로 인정하고 싶은 무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 미래파 시인들이 자주 노출하는 편집증과 도착증, 분열증을 내포한 언술 행위도 이러한 자아의 상실감과 연루된 듯합니다. 이렇게 자아 상실감에 집착하는 태도야말로 자기 회귀 현상을 입증하는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주체의 속성과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존재의 ‘깊이’에 대한 태도입니다. 가령 “이제 삼차원은 지겨워. 그러니까 깊이가 있다는 거 말야. 나를 잘 펴서 어딘가 책갈피에 꽂아줘. 조용한 평면, 훗날 너는 나를 기준으로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펴고. 또 아무런 깊이가 없는 해변을 거니는 거야.”(이장욱, 「중독」, 『정오의 희망곡』)와 같은 시의 내용에서 나는 주체의 열려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활동이 존재의 깊이를 회피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존재의 깊이를 부정하는 주체의 활동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훨씬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아의 텅 빈 상실감은 바로 이렇게 존재의 깊이를 부정하는 태도와도 연루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실감으로 말미암아 타자들에 대한 성실한 관계 맺기의 욕망보다 자기 부정과 파괴의 욕망을 나열하는 일에 분주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상이나 타자와의 열린 관계를 도모하는 시적 자아나 주체의 활동은 좀 더 심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활동이 오로지 새로운 대상과 관계 맺는 지평을 확장하는 일에만 분주하고 관계를 심화하는 일에 소홀할 때 자아나 주체는 삶에 대한 상실감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고, 그러한 상실감과 피로감으로 인해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열정이 약화하거나 병적인 우울증이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하일 바흐찐이 규정한 언어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관계와 베르나르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는 난쟁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으로 저의 발표를 마치려고 합니다. 바흐찐은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고 대화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언어의 원심력이 갖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깊이를 회피하고 주체의 개방적인 활동에 주력하는 미래파의 시쓰기도 이와 유사한 역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원심력은 반드시 구심력과의 상호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언어의 구심력은 존재의 깊이를 지향하는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언어의 구심력이 단일한 언어의 패권을 지향하는 문제점을 보여주긴 했으나 집중하려는 의지 속에 스스로의 뿌리를 돌아보려는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관계에 비견될 만한 서양의 고대 격언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난쟁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2세기 베르나르의 격언인데요. 17세기 후반에 몽테뉴는 거인을 고대인으로, 난쟁이를 근대인으로 규정하고 이 두 존재를 비교하면서 “근대인들이 고대인들보다 더 발전되었을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그들이 존경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저에게는 언어의 원심력이 근대의 난쟁이에, 언어의 구심력이 고대의 거인에 비슷해 보입니다. 물론 난쟁이가 바라볼 수 있는 언어의 지평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난쟁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이 거인의 어깨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인이라는 대지를 향한 구심력을 기반으로 하여 난쟁이는 보다 발전된 언어활동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시적 주체라는 난쟁이와 시적 자아라는 거인의 조화로운 관계를 우리 시단에서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제1부 전환기의 시론 - 전환기의 개념시학과 서정의 획일화 현상」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20,0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