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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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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153*225*20mm
ISBN13 9791155552094
ISBN10 115555209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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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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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전 남편의 추억 여행에 동행했다. 그가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했던 섬으로. 겨울의 끝자락 싸늘한 공기가 한기를 느끼게 했지만, 하늘빛은 맑고 투명했다. 숨어 살았다는 반씨네 고가의 문간방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무서웠던 시간을 잊기 위해 찾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앞에 섰다. “이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 남편은 감개무량한 듯 나무를 어루만졌다. 잎새를 다 내려놓고 빈 몸으로 서 있는 나무.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아! 옛날엔 돌담집이었는데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으로 변했네.” 남편은 아쉬운 듯 교정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위로가 되어 주던 은행나무가 아직 남아 있어 추억의 한 자락은 잡은 듯했다.

60년대 중반 한일회담 반대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나라를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 대학교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은 그에게 지명수배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었다. 두 달 간 몸을 숨겨 주었던 강화도. 아침마다 오르내리던 전등사 고갯길을 올라가다 만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뒷모습. 아마 50년 전 기억을 함께 더듬고 있으리라. 일흔이 넘어 되새김해 보는 암울했던 젊은 날의 상흔은 이제 어떤 색깔로 남아 있을까. 꿈 많던 대학생이 교정과 학군단에서 갑자기 내쳐졌던 아픔과 서슬 퍼런 경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던 시간, 엄동설한처럼 춥고 막막했으리라.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의 유형을 세 단계, 즉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지고 걷는 낙타로 살면서도, 남다른 권력 의지로 지배받기보다는 지배하기를, 명령을 따르기보다는 명령하기를 더 원했다. 자유 의지로 삶의 순간순간을 사자로서 거슬러 오르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지 싶다. 그러나 이제 남은 생은 스스로 놀이규칙을 만들어 가볍게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살아갔으면 했는데….

나의 평생의 동반자 강창범(姜昌範). 그는 정년퇴직 4년 후, 8년간 병마에 잡혀 무척 힘들어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지만, 그래도 한 십 년만 더 삶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내는 그를 보면서 먹먹해지곤 했다. “나 이대로 갑자기 푹 쓰러질 것 같아.” 항암주사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던 남편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위로가 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시울이 흐려졌다. 동반자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막막함. 그런 암울한 나날을 며칠 견디다 보면, 그는 툭툭 털고 다시 밝은 얼굴로 나를 보고 웃곤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투병하면서 벽에 써 붙인 좌우명처럼 혼자 잘 견뎌 주었다.

다시 살라 해도 똑같이 살고 싶다는 자존감과 무한 긍정으로 힘겨운 병마를 이겨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달에 두 번 상경하여 받는 항암치료를 누구의 도움도 마다하고 혼자 감당했다. 청소, 설거지, 의복관리 등 잡다한 집안일까지 운동이라면서 활기차게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병에 잡히니 건강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소.” 자기 몫까지 하고 싶은 일,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봉사활동에 즐겁게 참여하라고 내 등을 떠밀어 주는 여유도 보였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넘어서려 애쓰면서도 성숙한 실존적 삶을 살고 있는 여백이 있는 남자. 그와 동행하면서 둘이 함께 사는 이 순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문해 보곤 했다.

그와의 동행이 어느새 50여 년. 세상이란 무대에서 남녀가 함께 추었던 춤은 괜찮았을까. 부부 사이에서도 권력의 의지는 예외 없이 드러나는 법.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 거슬러 오르며 사자로 살고자 하는 그와의 부대낌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피해 갈 순 없었다. “국이 좀 짜네. 전등이 또 켜진 채 있더군. 이건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가끔은 모른 체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반복해서 꼬집어 낼 때는 짜증이 나곤 했다. 한쪽 귀로 듣고 흘려넘기다가 참을 수 없을 땐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사람의 습관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와 나의 평행선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억력이 좋고 세심하며 권력의 의지가 넘치는 남자, 소탈하고 덤벙거리고 건망증이 심하며 주의력이 부족한 여자. 그러고 보니 이런 남녀가 참 오래 살았지 싶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사는 사람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사랑이 있었지 싶다. 사람 인(人)자처럼 받쳐 주고 의지하는 동행인. 늘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 주었고, 격려해 주었고,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언젠가 야무지게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불만이었던 남자에게 물었다. “어수룩한 짝이 매력적이지 안허우꽈?” “음양 조화 원리에서 보면 우리는 괜찮은 인연 아닌가?” 당차고 야문 여자를 만났다면 어땠을 것 같냐고 슬쩍 묻는 내게 되레 반문했다.

부부의 인연은 기적이다. 누군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 100의 422승 분의 1의 초미세 확률이라고 했다. 이러한 인간이 부부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또 얼마일까. 무한 우주의 일부인 작은 별에서 떨어져 나와, 한 여자의 태속으로 들어와 모아진 생명체.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이 세상에서 만난 각각의 생명들. 자기와 전혀 다른 유전자에 더 끌린다고도 하고, 이성 간 냄새의 매력으로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 부부의 인연. 이 경이로운 우연을 그와 나는 필연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까.

산사에서 내려오다가 고즈넉한 찻집에서 차향을 마주했다. 창 너머 수령을 알 수 없는 연리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 한 가지가 되어 있었다. 얼굴만 한 동그란 구멍,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올라간 잔가지들의 자유로움과 머지않아 돋아날 연초록 잎새들. 연리지는 시원한 그늘로 산사를 찾는 다정한 부부들을 불러모을 것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의연히 받아들이던 남편. 50년 전 추억 여행을 함께한 4년 후, 나만 남겨 놓고 혼자 외롭게 떠나 버렸다.
---「동행」중에서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대문을 나섰다. 96세의 아버지가 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천천히 뒤를 따르셨다. 아버지의 조끼에서 ‘6·25 참전 유공자’라는 글자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오늘 나들이는 부둣가에 있는 옛집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옛 모습을 더듬으며 바라본 항구에는 여전히 깃발을 세운 고깃배들이 북적이고, 비릿한 갯내음이 우리를 반겨 주는 듯했다.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정겨운 비양도는 두 팔로 안을 만큼 가깝게 보였다. 등대와 지금은 방파제로 변신해 버린 톤대섬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내 시야에 가득했던 다정한 풍경들. 어느 사이 나의 소싯적 추억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나의 아버지 문인수(文仁受)는 배 짓는 목수였다. 빈농의 장남으로 신혼 초에 일본 군함을 만드는 도크를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1948년 제주의 지축을 뒤흔든 4·3의 여진 속에 도크로 일하러 떠난 아버지를 내놓으라며 경찰이 들이닥쳤다. 4·3 광풍은 세 살배기 나도 피해 가지 못했다. 아버지 간 곳을 대라고 윽박지르던 경찰이 만삭인 어머니와 세 살짜리 나를 한림지서(경찰서)로 끌고 갔다. 나는 세 살 때 만삭이던 어머니와 무서운 감옥살이를 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 간신히 풀려났다.

목숨을 부지할 길을 찾던 아버지는 6·25 싸움터에 지원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셨을까?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전쟁 지원자를 선발했다. 그런데 28세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다며 ‘입대 불가’ 줄에 세워졌다고 한다. ‘아차, 큰일났구나’라고 생각한 아버지. “군대 가는 쪽 줄로 슬쩍 바꿔 섰져.” 감독관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줄을 바꿔 섰다고 한다. 6·25보다 더 참혹했던 4·3을 피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스스로 들어가신 아버지. 그때 아버지에게 만삭의 아내와 어린 딸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열한 번 밀고 밀렸던 마지막 보루,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였다. “친구와 둘이 사흘을 밀림 속을 헤매다 용케 살아왔져.” 소대원들이 적의 총알에 다 쓰러지고, 굶주림과 무서움에 가슴 졸이다 가까스로 아군에게 발견되어 살아나셨다는 아버지. 전쟁이 끝나도 돌아올 수 없었다. 강원도의 화물선 건조 도크에서 2년여 더 배를 만들고 난 후에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당신의 일을 찾아 자주 우리 곁을 떠나야 했다. 도크가 있는 먼 곳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목말라하던 어린 딸은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집 앞 방파제에 앉아 바다 끝, 아득한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연기를 날리며 들어오는 배들, 나를 향해 아버지가 달려오시는 것만 같았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가뭄 끝에 단비처럼 아버지는 노란 바탕에 분홍색 꽃무늬가 있는 예쁜 티셔츠를 안고 오셨다. “우아, 예쁘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뺨에 비비며 팔딱팔딱 뛰었다. 그 순간은 아버지보다 티셔츠가 더 좋았지 싶다. 무명 치마저고리만 입고 다니던 50년대, 신소재 나일론 티셔츠는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보물 1호가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늘 의기소침하던 내가 친구들 앞에 처음으로 의기양양하게 나설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는 나무를 깎아 ‘세상에 하나뿐인 필통’을 만들어 주셨고, 밤이면 희미한 등피불 밑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받아쓰기를 불러 주시곤 했다. 결혼 후 아버지는 무슨 뜻에선지 작은 반닫이도 하나 만들어 주셨다. 그 반닫이는 아버지의 체온을 간직한 채 지금도 거실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키에 하얀 피부, 뚜렷한 눈썹, 사색에 젖은 듯 고요한 눈매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 노년 들어 꽃 가꾸기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온종일 같이 있어도 먼저 말씀이 없으신, 깊은 바다처럼 속이 깊으셨다.

어머니는 배움만이 살길임을 아시고 우리 여섯 남매 교육에 삶의 전부를 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주 멀리 집을 떠나셨고, 홀로 남은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과 감내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를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맏딸만은 당신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었으면 하셨을까. 맏딸인 나는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뿐만 아니라 밭일과 장사일까지 도와야 했다. 지금도 추억하고 싶지 않는 버거운 삶이었다. ‘왜 나는 실컷 일만 하고 학교도 못 가야 하나?’ 내 밑으로 아들 셋을 내리 낳고 이어서 두 딸을 더 낳은 어머니. 그땐 당연한 것으로 알았던 살림밑천이라는 큰딸인 나는 ‘왜 나는 차별을 받아야 하냐’며 억울해했다.

아무리 망치로 때려 눌러도 튀어오르는 놀이기구 속 두더지처럼 나는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붙들고 싶은 나의 유일한 희망의 끈을. 다행히 고향에 여고가 개교되었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마음 졸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보다 결정권이 더 컸던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으셨다. 긴 침묵만 흐를 뿐…. 어머니 눈치만 살피며 가슴이 타들어가던 어느 날 저녁, 먹구름 속에서 한줄기 햇살이 비치듯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장학생으로 학교 다녀 지커냐?” 아버지의 이 한마디가 여름 밤 소나기를 가르는 천둥처럼 온몸을 흔들었다. 드디어 여고생이 되었다. 어머니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밭일을 하고 밖에서 장사일도 하셨다.

집안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처럼 쌓여 있는 집안일, 칭얼대는 어린 동생들. 어머니는 일요일과 소풍날, 방학만 기다리셨다. 그래도 내겐 꿈결 같은 여고시절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늘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 어느 사이 대학 입시가 눈앞에 다가왔다. 대입은 나에겐 가당치도 않은 호사였다. 또다시 크고 단단한 벽 앞에 서야만 했다. 암담했다. 담임 선생님이 몇 번 다녀가셔도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10대 소녀의 가출이라는 용감한(?) 선택을 했다. 시내에서 유학하고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대입 시험을 봤다. 교육대학에 합격했다.

“우리 딸! 정말 잘 했져. 아버지 기쁘다.”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대학 생활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하느라 늘 종종걸음을 쳤다. 대학생의 낭만은 그림의 떡이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음악감상실에 드나드는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말씀이 없어도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은 고단한 나의 삶에 큰 힘이 되곤 했다. 여자 관리직이란 하늘의 별따기였던 시절, 하지만 나는 도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해냈다. 교장 발령을 받고 부모님을 교장실로 모셨다. 소파에 앉아 큰딸의 명패를 자랑스레 어루만지시던 아버지.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지만 서서히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내 눈시울도 흐려졌다. 부모님을 찾아뵌 어느 날, 백수에 가까워지신 아버지께 부탁드렸다. “아버지! 자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 남겨 주십서.” “한세상 사는 거 몬몬허진 안 해도, 그래도 좌미나게 살라.”

한 세기를 살아낸 삶에서 나온 성찰의 한마디. ‘힘들 때도 있지만 재미있게 살라’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험난한 인생 여정을 살아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악기 연주회를 열었다. 어버이 은혜, 고향의 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모곡…. 하모니카, 오카리나, 색소폰으로 다양한 음색을 선보였다. 음악에 빠져드는 것 같던 아버지가 갑자기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한참 동안 소리를 내시는 게 아닌가. “열다섯엔가 친구 하모니카 딱 한 번 불어 봐신디.”

삶의 무게 때문에 한평생 눌러왔던 감성이 비로소 용솟음치는 것이었을까. 평생 힘든 삶을 감내하느라 표현하지 못한 감성일 것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젊은 날의 소망, 그 한 조각을 보았다. 지금에야 뒤늦게 알아챈 회한이 사무쳤다. 그리운 내 고향 바다. 고요한 달밤, 밀물이 집 앞까지 넘실대던 검푸른 넓은 바다! 어린 시절 일상에 지친 심신을 넉넉한 품으로 포근히 안아 주었던 바다. 아버지 또한 내 영혼의 품 넓은 바다였다. 아버지께서 만들어 세상에 띄워 주신 외로운 배 한 척, 세파를 헤치고 당당히 항해할 수 있도록 밀어 주신 분. 내 생에 가장 고마운 분 나의 아버지!

2021년 9월 23일 추석 다다음 날, 푸른 실핏줄이 선명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의 손에 아직 힘이 느껴졌다. 고비를 몇 번 넘기셨던 아버지, 마지막인 줄 몰랐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머리를 감싸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평생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마지막 한마디. “사랑합니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떠서 나를 바라보셨다. 아버지의 두 손을 모아 꼭 잡았던 따스한 손을 놓아야 했다. 두 시간 뒤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향년 100세. 나의 아버지의 고단한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버지의 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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