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터는 조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그녀에게 우리는 모두 야만적이고 바보이며 난폭하다고, 우리는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공포와 혼란에 사로잡혀, 젊고 생동하는 공기를 마시고 아침 햇살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땅 위를 걸어가고 있다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인을 품고 있기에 그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친 듯 창가로부터 몸을 돌렸다.
“저기에 영원이 있어.” 그가 말했다. “저기에 당신이 바라는 영원이 있어.”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Ⅰ」 중에서
한 마디로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순수한 불꽃이 필요했다. 그 순수한 불꽃이 지향하는 것, 자신의 정신이 알고 있는 것을 완수하기 위한 고요하고 부단한 노력, 불굴의 노력이 필요했고 불굴의 의지가 필요했다. 그 부단한 노력은 말 없는 고뇌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 노력이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맹목적이고 잔인한 무지(無知)의 힘, 적개심, 편견, 불관용과 싸워 이겨 그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어리석음, 즉 나이에 따른 어리석음, 요조숙녀인 척하면서 보여주는 어리석음, 신분을 과시하며 보여주는 어리석음, 구태의연한 것에 집착하면서 보여주는 어리석음, 지나치게 겸손을 떨면서 보여주는 어리석음, 편협함에서 오는 어리석음, 속물근성과 질투와 시기에서 오는 어리석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리석음 중 최악의 어리석음인 천성적으로 타고 난 어리석음과의 싸움을 뜻했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Ⅰ」 중에서
모든 미국인이 그렇듯이 조지는 물질적인 성공을 동경해왔다. 따라서 고향 사람들이 그가 성공했다고, 혹은 적어도 성공 가도에 들어섰다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가 성공했다고 믿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의 책을 출간하기로 한 출판사의 명성이었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Ⅰ」 중에서
“오, 많지!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와 『리어왕』을 쓴 셰익스피어, 『미시시피강의 생활』을 쓴 마크 트웨인. 물론 완벽한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을 거야.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할 만한 실수를 했을 뿐이야. 총알을 조금 더 멀리 쏘아 보낸 정도랄까…… 하지만 그들은 허영심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지도 않았고 그놈의 자의식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지도 않았어. 그 허영심, 자의식이 바로 실패의 원흉이야. 나는 그런 실패를 저지른 것이고.”
“그렇다면 처방은 뭐지?”
“나 자신을 힘껏 이용하는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 바짝 마를 때까지 젖을 짜내는 것. 나를 등장인물로 삼는다면 그 어떤 유보도 두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것. 좋은 점뿐 아니라 나쁜 점도, 참된 면 뿐 아니라 거짓된 면도 그리는 것. 자신을 남들 그리듯 그리는 것. 그릇된 개인성, 헛된 자만, 쓸데없는 감정 등이 개입되지 않는 것. 한마디로 ‘상처 입은 목신’을 죽여버리는 거야. (……) 사실에 충실하되 사실보다 더 진실한 글,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하되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글을 쓰는 길, 그걸 찾고 있어. 내 생각에 최고의 소설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어.”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Ⅱ」 중에서
1929년 가을의 미국은 매미와 같았다.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10월 24일, 뉴욕의 월스트리트의 대리석 건물 안에서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주식 대폭락의 파열음이었다. 미국을 감싸고 있던 낡아빠진 껍질, 그 죽은 껍질이 깨지고 등에서 금이 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껍질 안에서 고통스럽게 서서히 변화하던 살아 있는 생명체가, 즉 언제나 변함없이 그러했던 미국, 앞으로도 그래야 할 진정한 미국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미국은 밝은 빛으로 나오자 아찔한 상태에서 비틀거렸고 다리를 절었다. 이제껏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가사(假死) 상태에서 그 안에 생명력을 간직한 채 변신의 다음 단계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Ⅱ」 중에서
인간은 이 무감각한 우주의 허무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것은 하나의 믿음, 확신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광이요, 승리요, 불멸성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삶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은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삶을 사랑하기에 죽음을 증오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며 영광스럽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영속한다. 인간은 무감각한 별들 아래 살면서 별들 안에서의 자신의 의미에 대해 쓴다. 인간은 두려움과 노고와 번뇌와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숨을 내쉴 때마다 상처 입은 폐에서 피가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라도 숨이 그쳐 버리는 것보다는 삶을 더 사랑한다. 죽어가면서도 인간의 눈은 아름답게 불타고 그들의 오랜 갈망은 그 눈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 그토록 힘들고 무의미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살기를 원한다.
---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