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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배우

어쩌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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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52*210*20mm
ISBN13 9791189958527
ISBN10 11899585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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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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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음이 좋지 않은 데다 경상도 사투리까지 쓴다. 게다가 키는 작달막하고 배는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팔자걸음이요, 소갈머리가 없고 주름살 대왕에다가 거북목까지 가졌으니 배우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연극 경험이 없어 어리벙벙한 데다 대사는 왜 그리 외우기가 힘든지 틀리기 일쑤여서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였다. 연습하는 내내 나로 인해 난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려 얼음처럼 굳어버린 내 모습, 당황하는 동료들의 표정 그리고 황당해하는 관객들의 한숨 소리 등을 상상하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어쩌다 배우」중에서

역시 연극은 재미있었다. 남의 인생에 빠져보는 즐거움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희곡 속 배역을 건성으로 흉내나 내다가 마침내 배역에 빠져서 웃고 춤추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벅찬 감동이었다.
---「어쩌다 배우」중에서

일단 시작하고 보니 포기하고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나 하나 빠지면 그 피해는 함께하는 모든 동료들이 고스란히 받게 되니까. 나로 인해 자칫 무대에 올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동료들이 흘린 땀이 훤히 보이는데 이를 가벼이 볼 수는 없었다.
---「어쩌다 배우」중에서

연극은 끝났다. 며칠 지나니 연극하면서 겪은 노고와 괴로움은 멀어지고 조명과 음악 소리가 담긴 무대의 화려함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첫아기를 낳기까지의 그 힘든 순간을 알면서도 둘째아이를 가진 엄마가 아기의 태동을 기대하고 기다리듯이 벌써 ‘다음 작품은 언제 하려나, 나도 끼워주겠지’하며 기웃거린다. 나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지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어쩌다 배우」중에서

딸이 유치원 다닐 즈음, 나는 집에 있을 땐 TV 리모컨만 쥐고 뒹굴었다. 그러는 내게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아빠! 나, 만화영화 볼 거야.”
국가대표 축구 중계 중이었다. 그 경기를 꼭 보고 싶어 딸을 설득하였다.
“아빠는 축구 경기를 봐야 되는데…. 축구 끝나면 보여줄게.”
그러자 딸은 축구 끝나면 만화영화도 끝난다고 떼를 쓰며 울려고 했다.
“진아, 집안 물건에는 다 주인이 있거든. 네 방에 있는 동화책과 인형은 네 것이고 그밖에는 다 엄마 것이지. 그릇도 냉장고도 밥솥도 모두 엄마 것이야. 사실 아빠 것은 TV밖에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딸에게 타이르듯 덧붙였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사용하는 거야. 네 인형은 네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단다. 그렇듯이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TV를 볼 수 있는 거야. 알겠지?”
이런 이상한 논리가 통했는지 의외로 딸은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그날 이후 딸은 나에게서 TV 리모컨을 뺏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축적의 시간」중에서

아내 역시 가사 일과 나를 연결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힘든 순간마다 어찌 저리 매정할까 하고 나를 원망했을 수도 있다. 이제 와서 물어보자니 본전도 뽑지 못할 것 같아서 과거는 묻지 않기로 했다. 어떻든 퇴직할 때까지 집에서 나의 가사노동 항목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축적의 시간」중에서

아내의 지도하에 계란말이부터 시작하여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고기 두루치기, 김치찌개, 닭볶음탕 등을 하게 되었다. 감바스, 부추전 및 돼지고기 수육 등 술안주도 물론이다. 아내는 나보고 ‘간쟁이’라고 했다.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춘다는 뜻이다. 딸도 아빠 계란말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칭찬이 자자했다. 딱 일주일 지나니 일상이 되었다. 이제 다들 짜니 싱겁니 하고 냉정한 평가가 시작되었다.
---「축적의 시간」중에서

내가 보기엔 아내는 이미 다 나아서 건강해 보이는데 부엌을 다시 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TV를 하루종일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이감을 갖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열 받고 있다. 아내가 노는데 나 혼자 일을 하면 사실 처량할 때도 있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할 때 연속극을 보는 아내가 밉고 분하다. 그런데 아내가 거실 탁자를 끌어 주어 청소하기 편하게 해주면 반분이 풀린다. 요리를 하면 아내는 냉동실의 재료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해동해 준다. 내가 설거지할 때면 아내는 식탁 위의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싱크대 위의 그릇을 제자리에 넣는 등 정리를 해준다. 그러면 또 분이 조금은 풀린다.
---「축적의 시간」중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관심을 축적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벌어 온 월급도 중요하긴 하나 한 달에 단 한 번씩만 잠시 관심을 받을 뿐이었다. 그러나 밥은 수많은 횟수로 서로 간에 축적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축적의 시간은 아버지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아내는 35년 동안 밥과 청소하는 시간을 축적했다.
---「축적의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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