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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 물봉선

따라비 물봉선

[ 양장 ] 황금알 시인선-28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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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96쪽 | 128*210*15mm
ISBN13 9791168150706
ISBN10 1168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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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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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손지오름
옹알옹알 솜양지꽃

눈 녹은 그 자리에
갓난쟁이 다녀갔나

손말로
못다 한 고백
빛깔로나 하나 보다
---「손지오름 양지꽃」중에서

오십 대 중반에도 저렇게 예쁠 수 있다니!
그녀가 다녀간 날은 어김없이 비가 왔다
여태껏 한마디 말도 세상에 못 내뱉어본

그랬다 농아였다. 선천성 농아였다.
여성 상담하는 내게 무얼 자꾸 말하려는데
도저히 그 말 그 몸짓 알아듣질 못했다

나는 그날부터 수어手語 공부 다녔다
기어코 그녀의 말, 그 손말을 알아냈다
그렇게 하늘의 언어 아름답게 말하다니!
---「손말」중에서

삼십 년 손말에도 어긋나는 내 손짓
갓 배우는 녀석들도 구시렁구시렁 댄다
이따금 저들도 잠시‘틀렸다’는 손짓한다

언젠가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할 때
갑자기
‘탄소중립’
신조어 듣는 순간
얼결에 헛손짓하는 허공을 바라본다

이승의 흔적이야
한 방울 눈물인걸
아직도 못다 그린 내 소리는 무엇일까
죄 없는 팽나무에라도‘미안하다’하는 저녁
---「손말 2」중에서

때로는 오름들도 손말을 하나보다
다랑쉬, 다랑쉬오름 못다 한 말이 남아
괭이밥 노란 속살로 고백하는 저 손말

게메예 게메마씸 4·3의 그 동굴 속
댓바람 사잇길 칠십 년 된 그 아이
입으론 차마 못하고 손말로나 풀어본다
---「다랑쉬오름」중에서

따라비 가는 길은 묵언정진 길이다
그것도 가을 하늘 단청 펼친 오름 앞에
어디에 숨어있었나, 놀래키는 물봉선

그래 저 떼쟁이 예닐곱 살 떼쟁이야
선천성 농아지만 그래도 소리는 남아
어마아, 어마 어마아 그때 그 소리는 남아

그때 그 소리만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
꽃을 떠받치는 저 조막만 한 하얀 손
나에게 손말을 거네. 어마아 어마어마
---「따라비 물봉선」중에서

빠앙빵 경적 울려 봐라, 위협 운전해 봐라
세상 온갖 잡소리 아무리 떠들어봐라
차 안은 소리가 없네, 거룩한 손말 세상

옆자리도 앞자리도 룸미러 안에서도
소소한 이야기꽃 손끝에서 피어난다
어느새 나는 이방인, 눈으로 듣는 이방인

그렇다면,
층간소음 저들은 어찌 알까
소리 때문에 죽고 소리 덕에 살아나고
아무리 그래 들 봐라, 그 세상엔 소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 봐라」중에서

살다, 살다 별의 별꼴
볼 때도 있다더니
교회에 나가는 일도 동장 눈치 봐야 하네
빗쟁이 빚쟁이같이 눈치 보는 주일 아침

교회 올 수 없는 건
농아인도 매한가지
개구멍 슬쩍 열고 방송실로 기어들어
목사님
설교를 전하는
내 손말도 헛손질 같네
---「정말, 헛손질이다」중에서

촉수어, 촉수어란 그 말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떼로 보이네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 손말 하는 농맹인 현 씨
삼십 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네
눈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 뱉지 못해
가슴속 사라진 사랑 가슴에 붙여 사네

누군들 이름 하나 숨겨놓지 않았을까
마침내 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
오늘은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하네
---「촉수어 고백」중에서

저것도 산이라고 봉 하나를 올렸네
경기도 보개면 비봉산의 너리굴
‘너른 골’ 하면 될 것을, 굳이 왜 ‘굴’이라 하나

그 굴에 내가 들어 2박 3일 농인수련회
나는 신부 너는 신랑, 물 폭탄 맞아도 좋다
첫날밤 비둘기처럼 구구구구 웃는다

자정이 넘었는데 전등을 끄지 않네
오랜만에 두런두런 무수히 오가는 손짓
그렇다. 빛이 없으면 안 보이는 저들의 말

그래 끄지 마라 밤새도록 끄지 마라
나도 어둠 속에 끝내 놓친 말이 있다
오늘은 뒤돌아서서 손말 해 본다 “”
---「“사랑해”」중에서

사이렌 소리 멎고
들락이는 소방대원들

저들 눈엔 왜 없고
집주인 눈엔 있는 걸까

아무리
사각지대란들
있는 것이
왜 없는 걸까
---「반지하 사람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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