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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나폴리,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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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로마, 나폴리, 피렌체

해설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 연보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Stendhal,마리 앙리 벨(Marie Henri Beyle)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설 외에 문예평론·여행기·평전을 남겼다. 문필활동 말고는 나폴레옹시기에 군인·군무원을, 7월혁명 이후에 외교관을 지낸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고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를 넘지만, 1814년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필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다. 1819년 메칠드와 생애 최고의 연애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경험은 뒷날에 평론 『연애론』(1822)을 탄생시킨다. 1921년 파리로 돌아와 문필활동을 계속하며 1825년 『라신과 셰익스피어』를 발표하여 낭만주의운동의 대변자가 된다.

첫 소설 『아르망스』(1827)는 성적 불능자를 주인공으로 한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7월혁명 이후 대표작 『적과 흑』(1830)을 출간하며 처음으로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 밖에 미완성 장편소설 『뤼시앙 뢰방』, 『라미엘』, 사후에 ‘이탈리아 연대기’로 간행되는 『카스트로의 수녀원장』 등 중·단편들을 모은 『한 만유자의 메모』(1838)를 발표한다. ‘이탈리아 연대기’의 연장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그의 생애를 매듭짓는 걸작이 된다.

이처럼 발상과 기법의 참신함 때문에 작가 생전에는 많은 이해를 얻지 못하지만, 죽은 뒤 스탕달의 작품은 점점 많은 독자를 얻어 세계적인 명작으로 발돋움한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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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탕달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3대학에서 <스탕달 소설 세계에 나타난 시간성 연구>를 통해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프랑스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는 <라신과 셰익스피어 연구>, <스탕달의 서술 전략>, <스탕달의 음악적 글쓰기> 등 다수의 스탕달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언어철학》, 《시간과 이야기 1, 2》, 《유럽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 외 다수의 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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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664쪽 | 128*188*30mm
ISBN13
9791128835025

책 속으로

1816년 9월 2일, 베를린. 나는 넉 달의 휴가를 허락하는 편지를 펼쳐 본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이가 스물여섯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얼마나 미친 듯 들떠 있는가! 드디어 그토록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보게 되다니!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사제를 피한다. 왜냐하면 성적으로 중성화된 남자들은 언제나 자유사상가들에게 화를 내기 때문이다. 예상하건대 심지어 내가 돌아오면 두 달은 ‘냉랭’해지리라. 그러나 이 여행은 내게 엄청난 기쁨을 안겨 준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3주 후에 세상의 종말이 오리라는 것을.’
--- p.3

‘아름다움’을 위해 태어난 이 고장 사람들에 있어서, 더욱이 정치를 논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절망적인 고장에서는, 신축 집의 정면이 어느 정도 아름다운지 한 달 내내 관심을 갖는다. 밀라노인의 정신적 습성은 완전히 공화주의적이며, 오늘날의 이탈리아는 중세 시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도시에 아름다운 집을 갖는 것은 지갑 속의 두둑한 돈보다 더 중요하다. 만일 그 집이 아름다움으로 눈에 띈다면, 그 집은 곧바로 주인의 이름을 갖게 된다.
--- p.43

1817년 1월 22일, 피렌체. 그제, 피렌체에 가기 위해 아펜니노 산맥을 내려오면서, 내 심장은 세차게 뛰었다. 얼마나 어린애 같은가! 결국 굽이진 도로에서 평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어둡고 육중한 물체와 같은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브루넬레스키의 걸작품인 그 유명한 둥근 지붕을 멀리서 목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로 저기가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았던 곳이야! 이 고결한 도시, 중세 시대의 여왕이여! 바로 이 도시에서 문예가 다시 부흥되지 않았는가! 거기서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토록 군주의 역할을 잘해서 아우구스투스 이후 처음으로 군사적 공적이 뛰어나지 않았던 궁정을 훌륭하게 꾸려 나갔어.” 결국 여러 추억들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고, 나는 이성적으로 추론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곁에 있는 것처럼 격정에 빠졌던 것이다. 산 갈로 문과 그 형편없는 개선문에 다가가며, 나는 내가 만난 첫 피렌체 주민을 기꺼이 껴안았을 것이다.
--- p.392

1817년 2월 6일, 벨레트리. 우리는 로마에서 세 시간만을 보냈다. 멀리서 성 베드로의 둥근 지붕을 보았지만 결코 거기에 가지는 않았다. 일행에게 그 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콜로세움을 본 것은 나폴리 도로가 아주 가까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4륜 마차가 멈춰 섰고, 우리는 10분 동안 콜로세움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보았던 숭고한 것 대여섯 가지에 드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를 그 유명한 포폴로 문을 통해 들어갔다. 아! 우리는 얼마나 속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대도시의 입구보다 못하다.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으로 파리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현대 로마에서 라틴어를 과시하는 기회를 찾았던 현학자들은 우리에게 그 라틴어가 아름답다고 설득했다. 거기에 영원한 ‘도시(Ville)’의 명성의 비밀이 있다. 우리의 마차는 육군성 장관이 대주교에 취임한 것을 축하하는 거대한 열병식을 하러 가고 있었던 군대의 행진 때문에 거리에 멈춰 섰다. ‘파비우스, 어디에 있는가?’ 로마 거리는 썩은 양배추 냄새로 진동한다. 코르소의 대저택들의 아름다운 창문들을 통해서는 내부의 곤궁함이 보인다.

--- p.456~457

출판사 리뷰

스탕달의 이탈리아니즘, 그 시초

스탕달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던 여행 마니아였다.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 곳곳에서 부단히 행복을 찾고자 했던 그에게 이탈리아는 특별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 나폴레옹 원정대에 합류하여 경험한 그곳은 그에게 희망과 열정, 행복의 고장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이탈리아인들의 삶의 모습이나 그들이 창조해 낸 예술(음악과 미술)은 어린 벨(스탕달의 본명)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며, 그를 열광시키며 딜레탕트로 만들게 된다. 따라서 스탕달의 작품 세계에서 이탈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이탈리아니즘은 여행 일기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단편소설은 물론 각종 에세이, 예술 평론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관류하는 지배적인 모티브로 떠오른다. 특히 ‘밀라노인 벨, 살았고, 썼고, 사랑했노라’ 하는 묘비명에서 보듯, 그에게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고향과 같이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도시였다. 『로마, 나폴리, 피렌체』라는 여행 일기는 바로 이러한 작가의 이탈리아 예찬론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탕달은 여느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안내 책자의 형식을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조롱한다. “무미건조한 철학적 묘사 분야에서 하나의 걸작을 갖고 있다. 곧 그것은 센강의 도지사 샤브롤 씨에 의한 몬테노테 도(道)의 통계표다.” 이러한 통계표처럼 유적이나 기념물들을 세세하게 조사하고 돌멩이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스탕달 같은 딜레탕트에게는 무의미하거나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가이드 형식의 여행기들은 “여행객들이 지나갔던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 풍습, 관습, 편견들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벽들만을 보았다”는 것이다. 반면 스탕달의 여행기는 여행하며 보았던 ‘벽’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벽의 안팎에서 생활하는 이탈리아인들의 풍습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자 한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탕달의 작품이다. 1826년의 『로마, 나폴리, 피렌체』는 『적과 흑』이 출간되기 4년 전에, 『파르마의 수도원』이 출간되기 13년 전에 집필된 작품으로서, 이 책에 나타난 여러 핵심 주제와 일화의 내용은 미래의 소설 창작의 발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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