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공도서관은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독서실 또는 책대여점 기능을 수행하던 전통적인 공공도서관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옛 기억에 머물고 있는 시민이 적지 않다. 이 대목에서 사서를 비롯한 도서관 구성원들은 시민들에게 자신과 도서관이 어떻게 비쳐졌을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 지능정보사회에서 도서관이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반문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의 혁신을 통해 이용자인 시민들은 더 높은 수준의 도서관 서비스를 누려야 하고, 시민들과 도서관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거점으로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명실공히 도서관은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지식정보를 제공하고, 독서문화를 진흥하면서 평생학습의 장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지적자유를 누리고, 삶의 질이 나아지는 데 일조해야 한다. 그래서 도서관이 없는 지역사회를 상상할 수 없게 돼야 한다.
이 책은 필자가 공공도서관 현장에서 배우고 느끼고 시도한 바를 정리한 것이다. 이론서처럼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고, 주제도 산만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도서관의 변화를 통해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쉽지 않았을 여러 가지 시도에 기꺼이 함께해 준 젊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머리말」중에서
“평범한 도서관은 장서량을 늘린다. 좋은 도서관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만든다.”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통용되는 표현이다. 공동체란 공통의 생활공간에서 공동의 가치와 규범, 유사한 정체성을 갖고 상호 유대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공약으로 등장하는 등 요즘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복원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에 진영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만연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공동체의 대표적인 사회적 자본이다. 대체로 사회적 자본이 잘 구축된 공동체는 범죄율이 낮고,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교육 성취도가 높고,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으며, 행정 효율성과 경제적 성취도가 높다. 오늘날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이 절실한 이유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층 고도화된 지식정보사회를 유도할 4차 산업혁명시대는 물론, 주민의 민주적 인식과 역량이 요구되는 지방분권시대가 도래하면 공공도서관은 지역공동체의 더욱 증대된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도 공동체 복원에 기여하기 위해 지역사회 기관단체들과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 시작한 ‘우리 마을 책나눔축제’와 2017년 시작한 ‘우리 마을 동시童詩암송대회’가 그것이다.
---「2부 ‘도서관, 공동체 복원의 구심점’」중에서
‘용학이네 사람책방에 사람책을 모십니다.’
도서관 주변에 내걸린 현수막의 내용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용학도서관에서 운영되는 ‘사람도서관’의 이름이다. 사람도서관은 ‘사람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이다. 사람이 책과 마찬가지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신개념 도서관이다. 사람책은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마찬가지다. 도서관 안에서 읽을 수도 있고, 도서관 밖으로 빌려가서 읽을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사람도서관의 기원은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의 사회운동가인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 열린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이벤트로 시도한 것이 시초다. 이용자가 원하는 사람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인 ‘Living Library(살아 있는 도서관)’가 그것이다. 당시 덴마크의 청소년폭력방지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던 그는 사람책을 통해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사람들 사이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기 위해 사람도서관을 시도했다고 한다.
에버겔은 2014년 국회도서관과 희망제작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면 그는 친구 네 명과 함께 사람도서관을 고안했다. 목적은 일상적이지 않은 종교, 성적 취향, 인종, 직업 등을 가진 사람책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도서관은 동성애자, 무슬림, 이민자 집단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지역사회 시민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갈등을 해소해 사회통합에도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파티에 가던 자신의 친구가 칼에 찔려 숨진 뒤 ‘스톱 더 바이올런스’란 비폭력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사소한 싸움에 휘말린 친구가 왜 그렇게 무참히 죽어야 했는지, 극단적인 범죄를 막으려면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해결책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사람도서관이다. 갈수록 다원화되는 사회가 안고 있는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와해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으로 시도한 것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은 에버겔의 의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책이 거대 담론을 거론하기보다, 자신의 이웃과 소통하고 경험이나 삶의 지혜를 나누도록 유도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3부 ‘사람도서관과 지역공동체’」중에서
9월 ‘독서의 달’을 앞두고 참신한 지역작가들을 초청해 연 토크콘서트 첫 회부터 감동을 받았다. 주인공은 대구남산고 1학년 유수혁 군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소설집을 냈다는 것도 칭찬해 줄 만한 일이지만, 유 군이 독서광이란 사실을 확인했기에 독서문화 진흥을 사명의 하나로 여기는 공공도서관 사서로서 뿌듯했다. 더불어 ‘독서의 달’ 기획이 주효했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유 군에 대해서는 올 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이 대구시교육청 책쓰기 프로젝트로 소설집을 냈다는 기사를 읽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나 기행문 등 비교적 가볍게 쓰고 부담 없이 읽을 만한 글을 책으로 묶는 것이 요즘 추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상 대학입시를 대비해 학원에 다니기도 바쁠 고등학생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소설집을 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간결한 문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깜짝 놀랄 반전까지 소설의 흥행요소를 모두 갖췄다’고 평한 기사 내용에도 구미가 당겨 유 군을 초청하게 됐다. (중략)
유 군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바람에 도서관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 주말마다 도시락을 들고 용학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TGIL(Thanks God It’s Library)’을 외쳤다. 미국인들이 주말의 해방감을 나타내는 ‘TGIF’를 도서관 버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도서관이, 독서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3부 ‘도서관 사서의 보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