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한 자리를 용케 알고 콩알만 쏙쏙 파먹는 멧비둘기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는 농심을 이해하면서도, 벌레 눈 다칠세라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한꺼번에 버리지 않았던 우리 조상의 생태 사상을 새삼 기억해 본다. 콩을 심을 때 “한 알은 새가, 한 알은 벌레가, 나머지 한 알만 싹트게 해 주소서.” 하며 노래하던 조상을 가진 우리의 감성 속에 자연은 살아 있을 것이다. 이제 그 감성을 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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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일원은 공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5톤짜리 배 한 척이면 하루에 1톤이 넘는 백합을 걷어 올리는 천혜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장장 33킬로미터,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바닷물의 이동을 막기 시작하면서 생산량이 절반 밑으로 떨어졌고, 제방으로 완전히 막힌 요즘에는 간신히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씨를 뿌리거나 김을 매지 않아도, 농한기도 없이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갯벌에 들어가 잡고 또 잡아도 새만금의 백합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이 들고 나는 한, 날마다 호미로 갯벌을 뒤집고 그레를 밀며 잡고 또 잡아도 백합은 갯벌을 떠나지 않았다.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이 우리의 밥상을 위협하는 마당에 건강한 갯벌마저 점점 사라진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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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소갈머리? 무슨 소린가. 이해심이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을 보고 어른들은 “이런,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놈!” 하며 야단을 쳤다. ‘소갈머리’나 ‘소갈딱지’는 마음이나 속생각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니 ‘밴댕이 속 같은 놈’이란 뜻이다. 도대체 밴댕이 속이 얼마나 좁기에 그런 불명예를 안겼을까. 비교적 넓적하면서 옆으로 납작한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밴댕이는 청록색 등에 은백색 몸을 가졌다. 몸은 작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 등 푸른 생선의 대명사 청어, 기름진 정어리와 함께 모두 청어과에 속한다. 몸이 작으니 내정이 작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밴댕이는 자기보다 작은 물고기의 내장보다도 더 작은 내장을 가졌다. 또 성질도 급하다. 그물이나 낚시에 걸리면 파르르 떨면서 바로 죽어 버린다. “성질 급한 밴댕이는 화가 나면 속이 녹아 죽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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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일까. 유럽의 강력한 국가였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국왕은 참새가 자신이 좋아하는 버찌를 쪼아 먹자, 화가 나서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두 해가 지나자 벌레가 들끓기 시작해 벚나무 꽃은 물론이고 꽃눈과 잎눈마저 먹어 치우는 게 아닌가. 결국 참새를 잃은 벚나무는 단 한 알의 버찌도 맺지 못하고 말았다. 참새의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된 국왕은 참새를 보호하도록 지시했고, 벚나무도 참새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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