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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 두고 온 열한 살

청어시인선-421이동
최민초 | 청어 | 2023년 1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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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30*205*20mm
ISBN13 9791168552135
ISBN10 116855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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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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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은 엄마에게 사람들은 새댁이라고 불렀다 단정한 쪽머리에 물색 한복을 입은 엄마가 내 눈에도 새댁처럼 고왔다 양 볼에는 발그레 홍조가 떠 있고 살짝 내리뜬 눈가에는 어떤 슬픈 그늘이 드리워지고 소리 나지 않는 발걸음도 나직한 음정도 갓 시집온 새댁 같았다 입덧이 심한 임신부나 병을 앓고 난 이웃들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다며 자꾸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엄마는 이웃집 산모(産母)가 아기를 낳았을 때도 산후조리를 할 때도 그들을 딸처럼 돌보았다 제사 때 쓰려고 아끼던 찹쌀 참기름 깨 미역 등 산모에게 좋다는 걸 죄 가져다 먹였다 마을 사람들은 늬 엄마 그늘 덕에 우리가 먹고 살았다고 그 어려운 시절 우리가 견뎠다고 눈가를 붉혔다 나는 요즘 와서 엄마를 다르게 생각한다 혹 외할머니에 대한 그 상처 벗어나려고 복 짓는 일에 온몸 바쳐 헌신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안쓰러움이 들 때면 나는 ‘다정한 친정엄마’가 되어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다
---「친정엄마」중에서

이모는 나를 손녀딸 대하듯 했다 첩첩 산골에 사는 12남매 이종들이 들로 산으로 제각기 일하러 나가면 이모는 나를 아궁이 앞으로 불러 앉혔다 어서 먹어라 입이 하 많아서 따루 챙겨주고 싶어도 이놈 걸리고 저놈 걸리고 우리 공주님 입에 들어갈 차례가 없으니 어서 어서 먹거라 이모는 어서 먹어라 재촉하면서 체할라 물 마시고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가 어서 먹어라 천천히 먹거라 또 어서 먹어라 애들 오기 전에 어서 먹거라 이모가 주는 그것이 뭐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초가지붕 위에서 말린 지푸라기 붙은 말랑말랑한 찐 고구마거나 찌그러진 콩엿이거나 호박 풀때기거나 호두 조금 넣은 찐빵이거나 우리집에서는 지천이어서 먹지도 않는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누가 오나 망보면서 자꾸 내 입에 먹을 것을 들이밀었다 자녀들에겐 유난히 엄한 이모부 무릎에 내가 날름 앉거나 어깨에 매달리면 이모 입에서는 연신 주술 같은 언어가 쏟아져 나왔다 아유 저년은 복도 많지 복도 많어 왼식구덜이 저년 밥이지 밥이여 내 얼굴을 씻기면서도 즤어매 닮아서 어쩌면 요렇게 뽀얗고 이쁘냐고 요년은 얼굴도 이쁘고 궁뎅이두 이쁘고 젖두 이쁘고 안 이쁜 곳이 있으야지 어휴 복두 많지 복두 많어 하며 허허허 웃었다 이모는 딸을 둘씩이나 두었는데도 그 언니들 다 커버려서인지 나만 보면 허허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이모에게 많이 웃으면 푼수뎅이라고 사람들이 숭본다고 얕보이면 안 된다고 이모의 입을 틀어막고 웃는 법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래도 이모는 나만 보면 허허허 웃었다 너만 오면 집안이 환하다 여 와서 살래? 꼬드겼다 (후략)
---「이모의 주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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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최민초 소설가가 나에게 두툼한 원고 뭉치를 내밀며 “이게 어디 글이 됩니까?”라며 보아주기를 청했다 언뜻 보아하니 단시(短詩) 모음집이요, 꽤나 많은 소재를 가지고 쓴 시편들이다 잡다한 인간세사(人間世事)를 토막토막 엮은 소설적인 시 모음집 같기도 한데 두루 다 읽고 보니 소설적인 시요, 시적인 소설집 같다는 생각에 착도(着途)했다. 일찍부터 문학 장르엔 시극이 있었고, 극시라고도 엎어치기 한 글들이 한때 내로라 제법 추구하는 시인들에 의해 시도되기도 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최민초의 글은 늘어뜨리면 소설이요 줄이면 소소설(小小說), 즉 장편 시를 연상케 하니, 이 또한 스피드 시대에 걸맞은, 독서력의 곤비함을 적잖이 풀어내는 청량제라 싶기도 했다.

하여 내 딴에는 이 새로운 시도를 어찌 정의를 내릴까 궁리하다가 낯설기는 하지만 “시 소설집” 혹은 “소설 시집”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으면 어떻겠는가 싶어졌다. 어쨌거나 문학이란 끊임없이 앞을 향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숙명적 과제가 아니겠는가. 편편마다 들여앉혀 놓은 주제가 알기 쉽게 읽히는 단시(短詩)요, 또 더러는 장편소설(掌篇小說)을 요약한 소설 시를 읽는 듯하여 새로운 장르를 구축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침없이 읽히고 재미있는 것이 이 글의 특성이다. 읽어서 뭔가 기별이 오고, 또한 느끼는 바가 있는 글이면 그게 좋은 글이 아니겠는가. 남달리 대담하고 용감무쌍한 필력을 가진 최민초 소설가에게는 뭔가 기대해도 좋을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다.
- 김시철 (시인, 전 국제PEN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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