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서호’가 있다
‘서호’는 서구에 있는 운천 호수의 애칭
‘광주는 볼 것이 없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문화단체나 언론에서 ‘볼 것’을 계속 논의는 하나 지금까지 대박 난 성과가 없다. 문화 자원은 풍부한데 '선택과 집중'이 잘못된 결과이다. 지금 서둘러도 늦지 않았으니 보다 분명한 주제에 집중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문학인들이 합심하여 펼치는 ‘西湖’ 가꾸기 운동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광주의 ‘서호’는 서구에 있는 운천 호수의 애칭이다. 이곳을 문학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민과 관광객의 볼거리 명소로 바꾸어가고 있다. 광주를 찾는 중국 사람들에게 운천 호수를 ‘서호’로 소개하면 중국의 ‘서호’를 연상하며 반가운 미소를 절로 짓게 한다. 민간차원에서 펼친 문화운동이 이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운천지 ‘서호’는 광주의 맑은 눈동자이다. 도시 빌딩 사이에 자리 잡은 서호는 빌딩과 물과 숲이 잘 앙상블을 이루는 보기 드문 명소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 모습을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금년 4월과 5월, 이곳에서 두 달에 걸쳐 500여 편의 시화를 전시하여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들도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절히 지키면서 질서 있게 다녀갔다. 아름다운 시화와 오색 분수를 뿜어내는 야경은 벚꽃 필 무렵부터 연꽃 개화기까지 환상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우리의 관심은 광주문학관에 있다. 현재 광주문학관의 장소가 정해지고 그에 맞춰 설계를 공모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소를 정하는 문제는 재고에 재고를 거듭해야할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명심할 것, 조금 늦더라도 지어놓고 후회 없는 문학관을 목표해야 한다. 접근성은 대단히 중요한 문화관광의 첫 번째 요소이다. 필자는 서호 옆에 정말 멋드러진 디자인으로 호수와 어울리는 문학관이 들어서서 광주관광의 1번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일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광주문인협회 차원에서 장소문제에 따른 의견을 수렴하려 한다. 한번 짓기도 이리 어려운 문학관을 혹여 접근성이 떨어지는 잘못된 장소에 건립한다면 두고두고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좋지 못한 장소 선정으로 실패한 문화공간을 우리는 여럿 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곡성의 도립미술관에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나주의 임백호 문학관에 사람이 없다. 진도의 진도 국립국악관에 발길이 없다. 볼 것이 없는 콘텐츠도 문제지만 접근성이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예산 들어 지을 때만 요란하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이다. 성공사례는 많다.
특히 전주의 한옥마을과 최명희 문학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심 속의 한옥 군락이 관광자원이 되리라고 처음부터 확신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910년부터 이곳에서 주거문화가 더욱 발달하고 근래에 와서 선택과 집중으로 도심 속 한가운데 명소로 개발하여 연간 1천만명 이상이 찾는 거대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비빔밥이 살고 전주 막걸리가 유명해지고, 경기전과 전동성당과 최명희 문학관이 덩달아 가볼 곳으로 뜨고 있다.
여기서 광주의 서호에도 성공한 문학관과 컨텐츠를 생산하는 문화발전소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보자. 서호에서 장예모 감독이 연출했듯이 수면 위로 신비한 영상시화전이 펼쳐지는 것 또한 상상해보라 또 하나의 가상 문학관이 그 곳에 펼쳐지는 것을. 영상적 현실세계는 시뮬레이션 문화가 중심이 되는 세계다.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셰리 터클은 물리적 실재를 가상으로 구성하는 시뮬레이션 문화가 우리의 정신과 몸, 기계에 대한 기존 관념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여러 연구를 통해 설명하면서 사이버 세계의 새로운 ‘나’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사회는 “실제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자아가 조금씩 사이버 세계로 삶의 중심을 옮겨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상상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기억해보자. 서호 문학공원과 문학관, 호수에서 펼쳐지는 영상 무대, 첨단 기술과 예술이 만나면 문화는 분명 희망이다.
지금 서구에 있는 운천저수지는 시화전으로 장관이다. 이 운천저수지에서 열리고 있는 시화전은 ‘서호 시화전’이라 부르는데 4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무려 500여점이 벚꽃과 어울려 펼쳐지니 시화전의 규모로는 기록갱신이고 해를 거듭하여 광주의 문화 볼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60여일 전시되니 벚꽃이 피면서 시작하여 연꽃이 필 무렵 끝난다. 운천저수지를 왜 서호라 했을까? 그 연유는 이렇다.
광주의 중심이랄 수 있는 서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광주의 으뜸이다. 체육시설이 광주에서 1등이다. 여기 서구에는 두 개의 호수가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생활 속에 살아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뿐더러 호숫가를 워킹하는 코스가 일품이다. 그 옛날 농업용수 정도였던 저수지가 조경과 길이 잘 닦여져서 호수로 변모하여 현대화 되어가는 광주의 중심 서구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심 속에 자칫 메마를 수 있는 시민의 정서에 물기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자연은 그대로 두어도 좋지만 다듬어서 더 좋은 경우가 운천저수지, 풍암저수지이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그 중에서 운천저수지가 빌딩숲 속에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빌딩 사이에 잔디공간만 있어도 좋게 보이는데 호수가 그 공간에 있으니 오다가다 보면 짜임새가 있는 모습이 딱 제대로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의 변화에 무심하다. 시대는 변했고 도시화되고 디지털화 된 세상에 살고 있는데 옛적 농경시대 용도로 불렸던 ‘저수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도 그대로 무심코 쓰고 있다. 생각의 전환도 문화운동의 큰 역할이다.
2010년 겨울이었다.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중앙회 회장과 겨울 운천저수지를 거닐면서 우연히 툭 튀어나온 착상이 ‘西湖’이다. 강회장의 서호 명명 제안은 바로 나에게 필이 꽂혔다. 우연이 아니라 깊은 내공에서 나온 우연이었다. 서호는 서구에 있는 호수이니까 당연히 서호로 불리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는 명분이다. 도시에서 저수지보다는 호수라는 이름이 훨씬 좋겠다는 응수를 했다. 그러고서 서호 명명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필자가 대표를 맡았다. ‘서호명명 세미나’를 개최하여 강원구 수필가와 강만 시인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하였다. 바로 김종 시인이 ‘애첩같은 이름 하나 올리노라-운천호에서 서호를 낚다.’라는 시의적절한 명시를 짓고, 이는 낭송되었다.
누구는 풀섶에 숨는 붕어가 되고 / 누구는 폭포 오르는 잉어 되는 세상 / 운천호 예쁜 볼에 이름 하나 올리노라 / 하늘에 용 오르라고 이름 하나 올리노라 / 중국 항주 덮어 누를 이름 하나 올리노라 / 애첩같은 명패 하나 西湖를 올리노라
광주 서구의 ‘서호’는 절강성 항주에 위치하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호수 ‘西湖’를 연상케도 한다. 우리나라 지명 중에 중국 지명과 중복되는 지명도 많지만 서호는 중복이라기보다 ‘서구의 중심 호수’의 준말로 우선 받아들여진다. 도시 속의 ‘운천저수지’보다는 ‘서호’가 아름답게 들리고 낭만스럽고, 시적이고, 정겹고, 쉽다. 그 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맛있는 먹거리가 있을 것 같은 어감이다. 서호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운천저수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품격과 역사가 한껏 업그레이드된다. 서호라고 불러주는 시민이 늘어갈수록 운천저수지에 동반 투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서호에 의미를 하나씩 부여하게 될 것이다.
4회를 맞이하는 시화전은 벚꽃명소와 함께 전통행사로 굳어지고 있다. 금년은 특히 광주문협이 주관하여 그 격과 범위가 달라졌다. 그러나 2020년 봄은 다르다. 코로나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 부분 편안한 곳이 없다. 부자유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우리 모두 엄중하고 심각한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땅에 원자탄이 떨어진 도시는 잿빛 땅이 되어버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던 참혹한 그때가 있었다. 그 잿빛 땅에서 먼저 솟아오른 식물은 쑥과 고사리와 민들레였다고 한다.
지금 한국의 봄은 잿빛 땅과 진배없다. 무엇하나 시도하기 어려운 이때에 500여 점의 표현활동이 척박한 땅에 먼저 솟아나는 민들레처럼 경이롭고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시골길에서 짓밟혀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민들레가 떠오른다. 도시에서도 인도와 건물 사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노란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의 경이로움이란 얼마나 감동적인가. 서호시화전은 툰드라 동토에서 민들레를 피우는 기적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 전염병도 잦아들고 있다. 서호의 목교통로도 열리게 될 것이다. 서호와 시화전의 앙상블이 딱 안성맞춤이다.
중국 서호가 백낙천, 소동파, 임포 등의 대시인과의 관련으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듯이, 광주 서호에도 문화문인관련 의미 있는 인물의 여러 형태를 조각화하면서 만날 수 있는 연출을 한다면 새로운 문화역사가 시작될 것이고 문화운동이 될 것이다. 중국 관광객이 광주에 오면 ‘가볼 곳이 없다’가 아니라 서호로 모시면 된다. 중국 관련도 되면서 우리 것을 보여주는 찬스가 될 것이다. 그럴라치면 실천할 수 있는 문화 퍼포먼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서호에는 능수버들 사이로 팔각정도 있고, 무대도 있다. 광주의 수많은 문화단체를 활용하여 서호에서 시 낭송도, 판소리도, 재즈음악도, 영상도, 초상화 그리기 등을 펼칠 수 있도록 행정 지원이 조금만 있으면 된다. 산발적 분수 쇼보다 정기적 분수 쇼를 홍보하고 조명도 한껏 투자하여 사람을 불러들여야 한다. 조명과 분수가 춤추는 배경으로 서호 무대가 열린 시민문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문화전당’에 무슨 일이?
ACC 측과 시민들 사이는 물과 기름?
광주시민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옛날 전남 도청자리에 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 잡고 있다. 앞에는 5·18 기념관이 80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고 내부에는 무언가 다수의 문화시설이 있기는 한데 그 내부에서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있을 뿐 시민의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무지에 가까울만큼 무관심하다. 달리 말하면 순전히 아시아문화전당은 그들만의 일터일 뿐 더 이상은 다가온 것이 없다. 이 건물을 꽤나 출입한다는 필자부터가 무지한 명칭은 확인 결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약칭 아문당)이다. 이를 영어 약자로는 ACC라 부르는데 이마저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문당 측과 시민들의 사이에는 심하게 말하면 물과 기름만큼이나 따로 놀고 있다. 건물로 진입하면 급경사의 지하로 이어진다. 행사가 있어서 찾아가면 어딘지를 몰라 한참을 뒤고 메고 해야 한다. 명칭도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민주평화교류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관’ 등인데 이들은 구분도 어렵지만 무얼 하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거기에다 행사장소가 대개는 지하 3층이니 4층이다 보니 어디를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지 나 같은 사람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입로도 가파르고 구분도 불명확한 명칭에다 불편한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매몰차다 하시겠지만 아문당에 관한 한 지금까지 그 누구의 칭찬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시민들이 이곳에 와서 차 한 잔이라도 곁들이려다가 6,000원을 상회하는 찻값에 발길을 돌리는 일도 있다.
아문당은 국립기관이라 해도 각종 문화행사가 광주지역을 기반으로 하기에 일단 소비자는 광주시민이 대상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라 해도 광주시민의 애정과 관심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문당 자리가 어떤 곳인가. 광주의 중심이면서 5·18이 발발하여 가열차게 전개되던 역사의 현장이고 그 보상책으로 무려 2조원의 국비를 투입하여 우리 시대가 이룩한 미증유의 공간이다.
아문당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문제는 프로그램이다. 콘텐츠를 살펴보면 여기가 과연 아시아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이 맞는가 하는 것이다. 전시, 공연, 행사, 투어, 강좌 등이 안내되어 있지만 무료이든 유료이든 그걸 보고 몇 사람이 찾아올까 하는 점이다. 극소수의 관람자를 위한 진행에다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팬데믹 상황이니 체험관이나 단체관람객 방문 등이 순조롭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자. 프로그램 진행은 컨셉에 맞게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공유한’ 예술창작인의 취지에 맞춘다 치자. 그러나 문화라는 게 소리 뒤에는 추임새가 있고 흥을 동반하는 법인데 메아리 없는 객석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비대면이라 하여 과연 몇 사람이나 접속하고 향유하는가가 의문인 데도 전문예술인 몇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하기엔 예산은 입이 쩍 벌어지게 막대하다. 2022년도 아시아문화전당 운영에다 765억 원에다 콘텐츠 제작 및 운영비로 498억 원이 확보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런 까무라칠 예산을 모두 광주시민에게 쓰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림의 떡으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은가.
그래도 금년 프로그램 중에는 ‘2021 아시아문화포럼’에서 ‘아시아의 삶과 상처를 입다’를 주제로 잡아 거둔 성과는 자평할 할 수 있다. 아시아문화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4번째로 올린 행사는 시민과 관계자들에게 홍보하고 나름의 의도를 유도할 수 있었다. 글쓰기에 관심 갖는 시민들이 상당하기에 홍보만 잘하면 향유와 창작의 양면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강의와 토론방식으로 진행된 문학아카데미는 최근 거대 이슈로 떠오른 미얀마의 인권문제를 문학적 담론으로까지 다룰 수 있었다. 종전처럼 몇 사람끼리만 콩치고 팥치고 했다면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 했겠지만 이번에는 광주시민정신에 바탕을 둔 우리 지역의 자유정신과 민주화, 인권, 저항 등의 주제를 문학이 어떻게 수용하고 승화시킬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다루었던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문학의 힘으로 광주의 빛이 아시아 국가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와 오랜 시간에 형성된 지역의 문화와 아시아 문학의 공통적 가치를 찾아가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점은 광주의 문인들에게 분외의 풍요를 제공하는 일이고 문인들의 가치창조에 새 지평을 열어가는 일이었다.
한 예를 언급했지만 아문당은 거듭나야 한다. 공룡처럼 공간은 넓은데 프로그램마다 지역민들과 겉돌거나 무관심 속에 진행된다면 아시아문화를 주도해 가는 아문당은 예산이나 축내는 돈 먹는 하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