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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름
가을
겨울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17

가가노 지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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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賀千代女

에도 시대의 여성 시인. 50대에 출가한 후 많은 하이쿠를 남기며 활약해 하이쿠 교류에 기여하기도 했다. 1763년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 때 사절에게 하이쿠를 헌사하기도 했다.

고바야시 잇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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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a Kobayash,こばやし いっさ,小林 一茶

고바야시 잇사는 일본 에도 시대에 활약했던 하이카이시(俳諧師, 일본 고유의 시 형식인 하이카이, 즉 유머러스한 내용의 시를 짓던 사람)이다. 본명은 고바야시 미타로(小林?太?), 배호(俳?)를 잇사(一茶)라 하였다. 열다섯 살에 고향 시나노를 떠나 에도를 향해 유랑 길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소바야시 지쿠아로부터 하이쿠 등의 하이카이를 배웠다. 잇사가 서른아홉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계모와 유산을 놓고 다투는 등 어려서부터 역경을 겪은 탓에 속어와 방언을 섞어 생활감정을 표현한 구절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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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타 만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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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aro Kubota,くぼた まんたろう,久保田 万太郞

시인,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으로 에도 시대의 옛 정취, 도쿄 서민들의 정서와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하이쿠를 많이 남겼다. 문인 하이쿠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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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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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u Nagai,ながい かふう,永井 荷風,본명 소키치

1879년 12월 3일 도쿄 고이시카와 구에서 태어났다. 1894년 병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학업을 잠시 중단한 가후는 병원과 요양지에서 에도 시대의 통속 소설인 희작 문학을 탐독했다. 반년 후 복학했지만 학업에 흥미를 잃은 가후는 퉁소와 한시를 배우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897년 엄격했던 아버지가 일본 우선(郵船)의 상해 지점장이 되어 집을 비우자 유곽에 출입하면서 한학자의 아들답게 에도 음악, 만담, 우키요에 등에 빠져 지냈는데,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 있던 한문 서적을 내다 팔기도 했다. 1898년에 히로쓰 류로의 문하생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이와야 사자나미의
1879년 12월 3일 도쿄 고이시카와 구에서 태어났다. 1894년 병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학업을 잠시 중단한 가후는 병원과 요양지에서 에도 시대의 통속 소설인 희작 문학을 탐독했다. 반년 후 복학했지만 학업에 흥미를 잃은 가후는 퉁소와 한시를 배우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897년 엄격했던 아버지가 일본 우선(郵船)의 상해 지점장이 되어 집을 비우자 유곽에 출입하면서 한학자의 아들답게 에도 음악, 만담, 우키요에 등에 빠져 지냈는데,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 있던 한문 서적을 내다 팔기도 했다. 1898년에 히로쓰 류로의 문하생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이와야 사자나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에밀 졸라에 심취했다.

1902년부터 『야심(野心)』, 『지옥의 꽃(地獄の花)』, 『꿈의 여자(夢の女)』를 발표했는데, 특히 『지옥의 꽃』은 모리 오가이(森?外)의 극찬을 받아 인기를 끌었다. 1908년 가후는 8월에 『미국 모노가타리(アメリカ物語)』를, 이듬해 3월에는 『프랑스 모노가타리(ふらんす物語)』를 출간했지만 퇴폐적 내용과 일본에 대한 모욕적 표현 등이 문제가 되어 발매 금지를 당한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아사히(朝日) 신문에 『냉소』를 연재하면서 신인 작가로 주목을 받게 된다. 1910년 모리 오가이와 우에다 빈의 추천으로 게이오대학 문학부 교수가 된다. 불어와 불문학을 가르치는 한편으로 대문호들과 친분을 쌓는다. 1916년 대학과 심각한 의견 대립을 겪은 가후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신주쿠의 요초마치(余丁町)로 이사하는데, 자기 집을 단초테이라고 부르고 1917년 9월부터 여기에서 이름을 따 『단초테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단초테이 일기』는 1959년까지 40년 이상 계속되어 가후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이후 가후는 『힘겨루기』를 비롯해 『에도 예술론(江?芸術論)』, 『오카메자사』, 『장마 전후』, 『그늘의 꽃(ひかげの花)』, 『묵동기담(?東綺譚)』 등의 작품을 남긴다. 1952년 에도 문학 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아 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뽑힌다. 말년에 두문불출하고 홀로 살다가 1959년 4월 30일 새벽 서재 겸 침실에서 피를 쏟고 쓰러져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향년 8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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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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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불화가 이어졌는데 그때의 경험은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 작가로, 일본에서 소위 ‘국민 작가’로 불리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며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일본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가 9세에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청년 시절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의 불화가 이어졌는데 그때의 경험은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 등장하기도 한다. 도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제1고등학교 시절에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를 알게 되어 문학적, 인간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도쿄고등사범학교·제5고등학교 등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을 영문과를 졸업하고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영국 유학 중 신경 쇠약에 빠진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예민하고 우울한 자아를 남겼으며,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일했지만 다시 정신 질환을 앓는다. 그는 치유의 한 방편으로 1905년, 다카하마 교시의 권유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1905년 『호토토기스(두견)』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1906)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로 소설 창작을 시작했지만, 소설가이기 전에 그는 이미 뛰어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고 영문학자였다.
교직 생활과 소설 창작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 데에 고충을 느끼던 소세키는 아사히(朝日)신문사의 전속 작가 초빙을 받아들여 교직을 떠나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907년에 교직을 사임하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사에 입사하여 『우미인초(虞美人草)』를 연재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草枕]』(1906)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대부분의 저작은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는 초기의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서 출발하여 점차 인간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20세기 초 근대적 주체와 삶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하고자 했다.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며 템포가 빠르고 리듬감이 있는 문체로 자연스레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소설 외에도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의 작풍은 당시 전성기에 있던 자연주의에 대하여 고답적인 입장이었으며, 그후 『산시로[三四郞]』(1908), 『그후』(1906), 『문(門)』(1910)의 3부작에서는 심리적 작풍을 강화하였고, 다시 『피안 지나기까지』(1912), 『마음』(1914) 등에서는 근대인이 지닌 자아·이기주의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반복적인 위궤양, 당뇨 등을 앓았던 그는 1916년 12월 병이 악화되어 『명암』 집필 중 49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으며, 1984년, 영국에서 그가 살았던 집 맞은편에는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대표작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坊っちゃん)』, 『풀 베개(草枕)』, 『산시로(三四?)』, 『마음(こころ)』, 『노방초(道草)』 『명암』(미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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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마 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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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시인. 소설가. 마사오 시키의 영향으로 언문일치의 사생문을 썼으며, 소세키에게 자극을 받아 사생문체로 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여유파의 대표적 작가로 유명해졌다. 대표적인 소설로 『풍류참법風流懺法』(1907),『배해사俳諧師』(1908),『조선』(1912),『감 두 개』(19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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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愚良寬,다이구 료칸

에도 시대의 승려이자 시인. 무욕의 화신,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시승이다. 시승이란 문학에 밝아, 특히 시 창작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불교 승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섯 줌의 식량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라는 말이 뜻하듯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욕과 무소유의 최고 경지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료칸은 살아가는 방도로 탁발, 곧 걸식유행(乞食遊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일본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 역시 대개 탁발을 하는 형상이다. 료칸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행복을 유지하며 청빈을 실천했고, 그의 철학관은 시에 그대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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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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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ku Masaoka,まさおか しき,正岡 子規

하이쿠시인, 수필가. 근대 하이쿠 예술을 집대성한 인물. 시키 혹은 호토토기스라 불리는 두견새는 목에서 피를 토하도록 운다는 중국설화 때문에 폐결핵을 상징하는 새가 됐다. 대학시절 폐결핵이 발병한 이래 줄곧 병상을 멀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필명을 시키라 짓고 하이쿠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그가 만든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는 하이쿠시인을 위한 창작의 장이 됐고 시키와 평생의 벗이었던 소세키의 작품이 처음 발표되기도 했다. 수필집 「병상육척」은 고통스런 일상을 위트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낸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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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네 도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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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根東洋城

마쓰야마 중학교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였다. 소세키의 소개로 마사오카 시키를 알게 되었고, 시키가 창간한 잡지《호토토기스》의 동인으로 활약했다.

마츠오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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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ho Matsuo,まつお ばしょう,松尾 芭蕉,마쓰오 바쇼, 무네후사(宗房)

일본의 하이쿠 작가,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던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대표 시인. 아명 긴사쿠(金作), 본명 무네후사(宗房). 호는 처음에 도세이(桃靑)였다가, 후에 바쇼로 했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 전기에 이가의 우에노에서 태어나 하이쿠를 대성한 유명한 인물이다.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이가우에노에서 농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바쇼는 하이쿠를 접하면서 시문에 관심을 지닌 무사나 문인들과 교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662년 무렵 기타무라키긴의 데이몬 하이카이(俳諧: 하이쿠, 렌쿠의 총칭)를 배우고
일본의 하이쿠 작가,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던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대표 시인. 아명 긴사쿠(金作), 본명 무네후사(宗房). 호는 처음에 도세이(桃靑)였다가, 후에 바쇼로 했다. 일본 에도시대(1603∼1868) 전기에 이가의 우에노에서 태어나 하이쿠를 대성한 유명한 인물이다.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이가우에노에서 농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바쇼는 하이쿠를 접하면서 시문에 관심을 지닌 무사나 문인들과 교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1662년 무렵 기타무라키긴의 데이몬 하이카이(俳諧: 하이쿠, 렌쿠의 총칭)를 배우고 본명인 무네후사(宗房)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1666년 요시타다가 죽자, 교토에 가서 고전을 배우고 1672년에 에도로 가서 담림 하이카이를 배웠다. 스물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당시 새로운 도읍지였던 에도에 정착하였고, 인생의 전기를 맞아 하이쿠를 읊고 가르치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1680년 에도의 후카가와의 바쇼암(芭蕉庵)에 살면서 호를 바쇼로 바꾸고 독특한 풍의 하이카이를 만들었다. 1684년에는 에도에서 고향인 이가를 오고가며 기행문과 하이카이집을 편찬하였다. 서른일곱 살 젊은 나이에 돌연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암자에 은거하며 고전을 탐독한다. 마흔한 살에 그때까지 고전에서 얻은 감동을 하이쿠에도 담아내고자 방랑의 길에 나선다. 여행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소박한 서민들의 삶과 자연을 노래했으며, 최소한의 상징적인 언어와 여백으로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였다. 1687년 가시마, 스마, 아카시, 1688년에는 사라시나, 1689년에는 호쿠리쿠를 여행하며 바쇼풍의 하이쿠를 완성하게 된다. 1694년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오사카에서 객사했다.

그는 한적하고 고담한 경지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읊는 하이쿠를 즐겨 지었다. 또한 변화하는 것 속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읊는 '불역유행(不易流行)'을 근본이념으로 삼았다. 바쇼의 문학은 여정을 중시한 중세적인 상징미를 근세적인 서민성 속에 살린 것으로 평가 받으며,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바쇼의 방랑 여정을 따라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 옥타비오 파스 및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하이쿠의 예술성을 높인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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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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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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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타 히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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杉田久女

메이지, 쇼와 시대의 여성 시인, 소설가. 다카하마 교시의 제자로 《호토토기스》의 동인이었다. 여성 하이쿠 시인의 진출이 늘어난 다이쇼 시대 이후 여성 하이쿠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관찰한 일상, 낭만적 풍조의 시를 많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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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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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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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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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구치 노부아키

1716~1784. 에도 시대의 하이쿠 시인. 본명 다니구치 노부아키. 요사 부손은 고바야시 잇사, 마쓰오 바쇼와 함께 하이쿠의 3대 거장으로 분류된다. 일본식 문인화를 집대성한 화가이기도 하다. 1716년 오사카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20세에 그림과 하이쿠를 배우기 위해 에도로 갔다. 1742년 스승인 하야노 소아(早野宗阿)가 세상을 뜬 후, 에도를 떠나 유랑의 길로 접어들었다. 약 10년에 걸친 방랑 생활을 접고, 1757년 교토로 와 많은 작품을 남겼다. 1783년 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생전의 희망대로 마쓰오 바쇼 옆에 묻혔다. 《부손 칠부집》, 《야한라쿠》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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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다코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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飯田蛇笏

다카하마 교시의 제자로 다이쇼 시대 《호토토기스》의 대표적 작가로 활동했다. 야마나시의 산골짜기에서 생활하며 격조 높은 하이쿠를 많이 지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하이쿠를 짓게 된 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히노 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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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野草城

《호토토기스》의 동인. 신선하고 모던한 구풍으로 신흥 하이쿠 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했다. 계어가 없는 하이쿠, 에로티시즘을 그린 하이쿠 등으로 근본적인 하이쿠 혁신 운동을 주장해 한때 《호토토기스》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도쿄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하고 통번역사로 일했다. 전문 번역가로 좋은 일본 문학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번역서로 《풀꽃》, 《책은 시작이다》, 《봄은 깊어》, 《심호흡의 필요》,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 내 마음의 문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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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58g | 127*210*20mm
ISBN13
9791191783094

책 속으로

시를 쓰련다
자네는 먹을 갈게
오늘 아침 봄
- 나쓰메 소세키

또 하나 더
별이 늘어났구나
매화나무꽃
- 마사오카 시키

매화꽃 속에
누군가 살고 있어
희미한 등불
- 나쓰메 소세키

봄옷 색깔 좀
알려주렴 높이 나는
종달새야
- 다자이 오사무

생각해주오
나의 집 매화꽃을
병이 든 나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금색 병풍을
몇 군데나 긁는지
고양이의 사랑
- 나쓰메 소세키

오늘까지의
날은 오늘 버리고
첫 벚꽃
- 가가노 지요죠

땅에 쓰러져
뿌리에 다가가니
꽃의 이별인가
- 마쓰오 바쇼

지는 벚꽃
남아 있는 벚꽃도
이제 질 벚꽃
- 료칸

꽃 핀 흐린 날
버려도 후회 없는
옛사랑이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긴긴 낮이여
서로 닿아버린 손은
닿아버린 채
- 히노 소죠

옛 추억을
어쩔 수가 없는 나
봄날의 새
- 다자이 오사무

가는 봄이여
새가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
- 마쓰오 바쇼
---「봄의 장」중에서

드러누워서
책 읽는 시절이여
오뉴월 여름
- 마사오카 시키

양귀비꽃
그런 식으로 지니
버릇이 없네
- 나쓰메 소세키

매일매일 밤
빗속에 소리 없는
제비붓꽃
- 요사 부손

풀 베고 누운
내게로 쏟아지렴
여름밤의 별
- 마사오카 시키

여름의 강을
건너는 기쁨이여
손에는 짚신
- 요사 부손

오후 두 시의
정적이 머무르네
얼음 빙수
- 마쓰네 도요죠

커피로구나
여름날의 해질녘
길기도 했지
- 히노 소죠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
- 마쓰오 바쇼

집 비워주마
사랑하며 놀아라
초가집 파리
- 고바야시 잇사

너를 보내고
생각나는 것 있어
모기장에서 우네
- 마사오카 시키

고요함이여
불꽃이 사라진 뒤
남아 있는 별
- 히노 소죠
---「여름의 장」중에서

가을이 왔네
책 한 권을 아직도
읽지 못하고
- 나쓰메 소세키

가을이 오면
쓸쓸하고 안 오면
더워 죽겠네
- 마사오카 시키

어지러이 피는
소녀의 마음 같은
들국화구나
- 다자이 오사무

파란 하늘에
손글씨로 써본다
가을 해질녘
- 고바야시 잇사

가을 모기야
죽을 각오를 하고
나를 무네
- 마사오카 시키

들국화 한 송이
수첩 갈피 속에다
끼워두었네
- 나쓰메 소세키

어설프게도
사람으로 태어나
가을 저물녘
- 고바야시 잇사

가을비구나
몸을 옴츠러뜨린
우산 아래
- 다카하마 교시

가을의 비가
멎고 나면 눈물이
마르려나
- 마쓰네 도요죠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두 개의 가을
- 마사오카 시키

모든 것을 다
가슴에 묻어두고
가을 저물녘
- 구보타 만타로

달 보러 가는
소세키가 아내를
잊어버렸네
- 나쓰메 소세키

술이 없어서
시가 없어서 달의
고요함이여
- 나쓰메 소세키

글을 읽는다
불빛 속에 갇혀서
달이 뜬 창
- 마사오카 시키

기나긴 밤
베개를 끌어안고
하이쿠 시인
- 이다 다코쓰

사람의 영혼
빗댄다면 가을의
반딧불일까
- 이다 다코쓰

가는 가을의
슬픔을 누구에게
이야기할까
- 료칸
---「가을의 장」중에서

겨울이 왔네
팔짱을 낀 채 책을
쳐다만 본다
- 나쓰메 소세키

초겨울에
하이쿠 하나 없는
하루로구나
- 마사오카 시키

겨울의 하늘
마음속의 가시를
감출 수 없어
- 이다 다코쓰

바람에게 물어라
어느 것이 먼저 질
나뭇잎인지
- 나쓰메 소세키

겨울의 파리
조용하구나 나의
살갗을 밟고
- 히노 소죠

내 가슴속의
찬바람이 기침이
되어버렸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울어버렸네
편지를 읽다 말고
불 밝힌 긴 밤
- 마쓰네 도요죠

잠이 든 문을
첫눈이에요 하며
두드려대네
- 나쓰메 소세키

눈 내리는 밤
홍차의 색깔을
사랑했다네
- 히노 소죠

촛불의
눈물도 얼어붙는
추위로구나
- 마사오카 시키

내 마음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
겨울의 매화
- 구보타 만타로

봄이 온 건가
한 해가 저문 건가
섣달그믐 전날
- 마쓰오 바쇼

허락해다오
새해 첫 아침에는
늦잠 자련다
- 나쓰메 소세키

긴긴밤이여
천년이 흐른 후를
생각한다
- 마사오카 시키

한 해의 고난
새해 첫날이 벌써
감춰버렸네
- 구보타 만타로

---「겨울의 장」중에서

출판사 리뷰

하이쿠(俳句)는 5, 7, 5의 열일곱 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정형시입니다. 에도 시대에 하이카이(俳諧)라고 하는 연가(連歌) 형식이 유행했습니다. 한 사람이 5, 7, 5음으로 첫 구를 지으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이어받아 7, 7음으로 구를 짓고, 또 그다음 사람이 구를 이어가는 시가 형식입니다. 그때 첫 5, 7, 5음의 구를 ‘홋쿠(發句)’라고 부릅니다. 에도 시대 하이쿠의 성인으로 불리는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는 바로 이 ‘홋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홋쿠가 그 후 메이지 시대 마사오카 시키에 의해 하이쿠로 명명되고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널리 사랑받게 된 것입니다. 시키는 기존 하이카이의 진부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하이쿠 창작을 위한 하이쿠 혁신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시키가 주장한 하이쿠 창작의 핵심은 ‘사생(寫生) 하이쿠’로, 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하이쿠는 주로 에도 시대 3대 하이쿠 시인으로 불리는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의 작품들이었습니다. 『하루하루 하이쿠』는 그들을 비롯해 료칸, 가가노 지요죠 등 에도 시대의 시인 외에도, 시키를 중심으로 하이쿠 혁신 운동에 힘썼던 근대 하이쿠 시인들의 작품들도 함께 실었습니다. 주로 시키가 창간한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의 동인으로 활약한 시인들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소설로 친숙한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나가이 가후 등 문인들의 하이쿠도 함께 실었습니다. 소설로만 접해온 그들의 하이쿠를 함께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선집에는 총 16명의 하이쿠 444구가 실렸습니다. 하이쿠에는 따로 해설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사적인 배경 이야기가 담긴 하이쿠도 있지만, 저마다의 방식과 느낌으로 읽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번역은 되도록 원문에 맞춰 열일곱 음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대신 원문과 함께 음독을 병기했습니다. 히라가나를 읽을 수 있는 독자라면 천천히 따라 읽으며 원문의 열일곱 음에서 느낄 수 있는 운율을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이쿠는 원칙적으로 계절을 나타내는 ‘계어(季語)’를 포함하고 있는 시가입니다. 계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학인 만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장을 나누어 한 해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일상의 감정을 떠올리며 느낄 수 있도록 시를 선별하고 구성했습니다. 짧지만, 짧기에 더 깊고 진한 울림을 주는 것이 하이쿠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 쉬운 계절의 표정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하이쿠와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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