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여자는 도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앞을 가로막는 겹겹의 나무에 도끼질을 했다. 몸은 몸부림쳤다. 진저리치는 나무 꼭대기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튕겨 오른 가지는 달을 겨눴다. 도끼날을 받아먹은 나무는 흉터가 나되 쓰러지진 않았다. 숲이 사라질 때는 까마득했다. 여자는 치마를 벗어 말았다. 치맛자락에 횃불에 댔다. 바람은 불을 싣고 숲을 살라갔다. 타들어가는 숲에서 순록과 늑대, 말코손바닥사슴, 불곰과 흑곰, 스라소니가 튀어나왔다. 덫들이 틉틉, 아가리를 다물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발버둥친들 발목은 끊어지지 않았다.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은 웅성거렸다. 불꽃은 나무를 감싸 하늘로 끌어당겼다. 잎사귀들은 수런수런 몸을 뒤집었다. 줄기 속 수액이 뜨거워지고, 껍질이 툭툭 터졌다. 이글거리는 나무 사이로 아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은 숲 바깥쪽으로 밀려나가고, 숲과 하늘의 경계가 울렁거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 붉은 그림자가 서 있다. - 본문 7~8쪽
울부짖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던 김선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높은 담장 앞에서 우는 여자였다. 담장이라면 부수고 싶었다. 미쳐 날뛰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돌멩이 같은 눈알을 손가락으로 후벼 파고 싶었다. 영영 아물지 않을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아픈 건 나였다. 상처의 실밥이 단숨에 잡아 뜯겼다. 가슴 언저리가 땀땀이 아렸다.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발길질에 쟁반의 그릇들이 내동댕이쳐졌다. 밥공기가 엎어지고 김치보시기에서 국물이 흘렀다. 노란 장판에 붉은 김치 국물이 흘러갔다. 물에 분 밥알들이 흩어졌다. 나는 한 손에 수저를 꼭 쥐고 꺽꺽 울었다. 김선주는 살아 있다. 사진 속의 김선주는 웃고 있었다. - 본문 57쪽
김선주는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소심한 김선주는 내 표정을 끊임없이 살폈다. 내 표정이 어두우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내가 웃으면 기분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되는 대로 대답해주었다. 그림자놀이. 내 마음을 따라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가 있다는 게 재미있다. 건반은 누르는 대로 소리를 낸다. - 본문 178쪽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둬!” 김선주가 내게로 바투 다가왔다. 오른 손에 쥔 칼을 보고 나는 뒤로 물러섰다. 김선주는 바짝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내 가슴 가까이서 김선주의 심장이 뛰었다. 진동수 2헤르츠. 옆구리에 뭔가 날카로운 것이 와 닿았다. 손의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김선주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 희미하게 전해지는 온기가 좋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칼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열기가 온몸에 퍼져나갔다. 나는 김선주의 품에서 미끄러져 운동장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왜 그랬어……왜.” 김선주의 비명소리는 마개를 뽑아낸 욕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바닥에 뺨을 대고 누웠다. 햇빛이 달군 운동장 바닥은 따뜻했다, 이대로 누워서 쉬고 싶었다. 눈앞이 가물거렸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 밝음이, 밝음 속에 어둠이 띄엄띄엄 섞여 들어갔다. 운동장이 저 편 멀리로 사라졌다. 천사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시 눈을 뜨면 나는 분명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다. 뺨에 닿은 바닥이 차가웠다. 음표가 끝나고 긴 쉼표가 이어졌다. 꽃잎 한 장이 사뿐, 건반에 내려앉았다. 꽃잎은 소리 없이 건반 위로 굴러갔다.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어린 시절 친구를 죽이고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아온 윤수인 앞에 어느 날 예순이 넘은 한 여자가 집으로 찾아온다. 죽은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십 년 만에 나타난 그녀는 윤수인의 아들을 유괴한다. 아들을 돌려달라는 윤수인에게 김선주라고 부르는 그녀. 김선주라는 이름은 이십 년 전에 밀봉되었던 끔찍한 사건을 여는 열쇠였다. 비로소 윤수인은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그녀의 이름은 권희자, 자신의 딸 나림이를 내놓기 전에는 아이를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윤수인은 절규한다. 이십 년 전 윤수인은 김선주였던 것이다. 이십 년 전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희망의 손짓이나 구원의 기대도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행복의 씨앗이 사라진 폐허 위에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이 증오와 분노와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멸종 직전의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을까. 그 불편한 질문을 진심으로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멸종 직전의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이 뼈아픈 질문에 온힘을 다해 대답하고 싶다. 아이를 잃은 여자가 복수심에 불타 이 커다란 세상이라는 숲 전체를 불태워버리기 전에. 정여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