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압하欺上壓下 : 간신은 권력을 오로지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콤 한 말로 권력자를 홀리고 속인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면 자신과 생각이 다르거나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때 동원하는 수법이 ‘기상압하’다. ‘위를 속이고 아래를 억누른다’ 는 뜻이다. 이 ‘기상압하’의 모략을 잘 써먹었던 자가 조고趙高이다. 그는 ‘사구정변沙丘政變’에서 호해와 이사李斯를 회유와 협박으로 동참시켜 호해胡亥를 꼭두각시 2세 황제에 앉혔다. 이후 조고는 ‘지록위마指鹿爲馬’로 호해를 농락한 다음 결국 그를 해쳤다. 실권을 쥐면 간신은 예외 없이 ‘기상압하’한다. 애당초 간신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 「조고」 중에서
동한시대 최대의 간신 양기梁冀는 그 마누라와 환상의 커플을 이루며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부부 간신으로 기록에 올라 있다. 이들 부부의 기상천외한 이중주와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호화사치 경쟁 쇼를 한번 감상(?)해보자.
우선 양기는 재산 축적을 위해 정말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자신의 봉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편히 앉아서 챙긴 것은 기본이었고, 나라 금고에 손을 대서 막대한 자금을 빼돌렸다. 나아가 관작官爵을 팔아 돈을 챙기고, 뇌물을 받아 배를 불리고, 부호들에게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고 떼먹는 방식으로 금고를 채우는 등 상상을 뛰어넘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양기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가 중국 역사상 10대 거부의 하나로 이름을 올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마누라 손수孫壽라는 여자는 사채놀이 따위로 돈을 불리는 것은 기본이고, 사치의 여왕에다 장안의 유행을 주도하는 사교계의 큰손이었다.
--- 「양기」 중에서
동탁董卓은 정말이지 철두철미 권력욕에 사로잡힌 ‘무간武奸’이었다. 모든 것이 권력에서 나오며, 그 권력은 무력에서 나온다고 확신했다.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자 그는 이리와 같은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자신이 그토록 맹신하는 권력을 향해 무한 질주를 시작했다. 조정 대권을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작위를 늘리고 높였다. 태위太尉에서 상국으로 다시 태사까지 보탰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옛날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이 건국에 절대적인 공을 세운 강태공 강상姜尙을 ‘상보尙父’로 높여 부른 것에 착안하여 황제인 헌제에게 자기를 ‘상보’로 부르게 했다.
--- 「동탁」 중에서
기생충 같은 소인배들 외에 우문호宇文護는 자기 자식들에게도 관작을 수여했다. 우문훈, 우문회, 우문지, 우문정, 우문건, 우문건기, 우문건광, 우문건울, 우문건조, 우문건위 등등이 모조리 높은 자리와 작위를 받았다. 문제는 이 자식들이 죄다 백성의 등이나 치는 망나니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책에는 이 자식들과 우문호의 패거리들이 우문호의 위세만 믿고 정치를 망치는 것은 물론 백성들의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상 간신의 친인척, 즉 족간族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 간신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릴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간신현상이 심각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우문호」 중에서
간신 양소楊素의 간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의 비위를 맞추고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무리한 토목건축 공사를 벌인 일이다.
군대에서 세운 큰 공을 믿고 양소는 수시로 자신을 떠벌였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그다지 볼 만한 것이 없었다. 황제의 신임은 두터웠지만 중요한 정책이나 국가 대사에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당시 좌우 승상을 맡고 있던 고경高?이나 소위蘇威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다. 이는 사서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과시하길 좋아했던 양소로서는 이런 현실이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모든 간신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하면서 공통된 특징이 바로 시기와 질투 아니던가? 양소에게도 선량한 충신이나 보통 관리들에게는 없거나 있어도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시기와 질투심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강렬하게. 시기와 질투는 간신의 힘이자 존재 이유다.
--- 「양소」 중에서
이의부李義府는 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다녔고, 대화를 나눌 때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정말이지 누구라도 감동시킬 정도로 부드럽고 공손한 자세와 상대의 마음을 녹이는 살인 미소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정작 그의 속마음은 음험하고 교활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이글거렸다. 자기 뜻에 따르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쳤다. 당시 조야는 이의부의 무시무시한 보복과 잔인한 행동에 치를 떨면서 그를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의 ‘소리장도笑裏藏刀’라 불렀다. 또 부드러움으로 사물을 해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인간 삵괭이(인묘人猫)’ ‘이씨 삵괭이(이묘李猫)’라고도 부를 정도였다.
--- 「이의부」 중에서
이임보李林甫는 권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전제 왕조 체제에서 권력의 원천은 오로지 한 곳, 황제뿐이었다. 이임보는 오로지 황제(권력자)의 가려운 곳만 골라서 긁어주는 역할을 기꺼이 자임했다. 아니 그 역할 밖에는 할 줄 몰랐다. 황제의 가려운 곳은 단순히 가려운 곳이 아니라 간신이 파고들 수 있는 작지만 심각한 결함이자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독이 묻은 손으로 끊임없이 그곳을 긁어대니 결국은 짓무르고 만신창이 되어 악성종양으로 발전하여 나라 전체를 전염시킨 것이다.
--- 「이임보」 중에서
양국충楊國忠의 위세는 조야를 울렸다. 양국충과 양귀비楊貴妃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양씨 집안이 너나 할 것 없이 부귀영화를 누렸다. 졸지에 권력과 돈을 움켜쥔 이들은 앞을 다투어 세상에 둘도 없을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집과 별장들을 짓는 등 끝 간 데를 모를 탐욕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양씨 집안의 위세를 두렵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사방에서 뇌물이 대문 문턱이 닳도록 넘어들었고, 인사 청탁을 위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대문 앞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양씨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항간을 떠돌았다. 기록에 따르면 양국충 한 집에 쌓인 옷감 한 품종만 3천만 필에 달했다고 하니 나머지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양국충과 괵국 부인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 날뛰었는데 정말이지 눈 뜨고는 못 봐줄 지경이었다.
--- 「양국충」 중에서
노기盧杞로 보자면 그는 위장술의 대가였다. 거친 음식과 해진 옷을 먹고 입으면서 얼마나 검소하고 간소한 사람인가 꾸며 낼 수 있는 자였다. 간사함은 깊숙이 감춘 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덕종은 그를 충성스럽고 청렴한 신하라고 여겼다. 여기에 노기는 또 말을 잘 꾸며 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황제의 마음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감칠 맛 나는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덕종은 못내 그를 잊지 못했던 것이다. 남녀만 서로에게 홀딱 빠지는 사이가 아니다.
물론 자신의 뜻에 순종하는 신하를 좋아하는 봉건 제왕의 근원적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덕종의 자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때문에 덕종은 못 배워먹은 노기의 가장 큰 결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여겼다.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자신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언제나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마냥 예뻐했던 것이다.
--- 「노기」 중에서
채경蔡京의 일생은 죄악의 일생이었다. 이자는 변법이란 깃발을 들고 모든 일을 개인의 이익을 사취하고 권력을 다지는 수단으로 삼았다. 나라와 백성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악행을 일삼았다. 그와 짝을 이룬 휘종의 썩을 대로 썩은 통치는 북송 강산을 끝장냈고, 백성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이 생존을 위해 도적이 된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동관을 깨버리고, 채경을 씻어내면 좋은 인간 세상이 오겠지!’라는 노래로 간신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채경은 화려한 팔색조로서 수시로 보호색을 바꿔가며 고관대작으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네 차례나 국정을 좌우하는 남다른 수완을 보였다. 또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고 좌천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재기하는 놀라운 능력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국은 지방관으로 좌천되어 가는 도중 쓸쓸히 죄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 「채경」 중에서
역사상 간신들의 간행을 분석해보면 간신들이 관심을 가진 대상은 거듭 말하지만 오로지 둘 뿐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권력의 원천인 권력자(황제)이고, 또 하나는 사욕私慾이다. 사욕을 위해 나라와 백성을 깨진 기왓장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외적들에게 자신의 영혼과 나라까지 기꺼이 팔아버리는 자들이다. 대외적으로 북방 민족들에게 계속 끌려만 가던 송 왕조가 주변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중원을 수복하고 중흥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성사시키지 못한 데는 자기 배만 불리려는 황잠선黃潛善 등과 같은 간신배들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었다.
간신이 권력을 사취하는 방법을 보면 권력자의 심리 상태나 기질, 그리고 기호와 취향 등을 귀신같이 알아내어 그것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한다. 흔히 권력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일을 짜고 처리하는 사람을 능력 있다고들 평가하는데, 그 실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 「황잠선」 중에서
진회秦檜는 명장 악비岳飛를 죽이고 금과의 화의 성사시킨 공으로 고종에게 또 다른 간신 채경보다 더 높은 상을 요구했고, 고종은 그를 태사 위 국공 진국공에 봉하는 한편 그 어미에게도 진 ·위국부인을 그 처에게는 한·위국부인이라는 작위를 내렸다. 그 자손들에게도 일일이 봉작을 수여하니 진회 일가의 명예와 영광은 더이상 갈 데 없는 극에 이르렀다.
진회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죄와 간행에 대해 후세 사람들이 욕하고 침을 뱉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재상의 신분으로 국사를 편찬하는 일에 가담하는 동시에 그 아들과 손자들에게 고종 재위 이래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을 책임지게 했다. 이렇게 해서 진회는 자신의 행적과 죄악의 역사를 감추려 한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진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에서도 자신의 죄악을 모르도록 하기 위해 문인과 백성들이 야사, 필기, 시문 등을 편찬하지 못 하도록 금지했고, 동시에 사소한 문장이나 문자를 트집 잡아 많은 백성과 문인들을 죽이거나 박해하는 ‘문자옥文字獄’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 「진회」 중에서
가사도賈似道는 뇌물수수, 소인배 기용, 재물욕, 정적 모함, 적과 내통, 음탕함 등등 간신의 나쁜 점을 한 몸에 다 지녔던 간신의 대표 선수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간신의 장점(?)을 한 몸에 갖춘 종합 세트와 같은 존재였다. 이런 가사도가 당시 백성들로부터 ‘귀뚜라미 재상’이란 별난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귀뚜라미처럼 잘 울어서 붙인 별명이 아니다. 거기에는 정말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예로부터 닭싸움 ‘투계鬪鷄’, 소싸움 ‘투우鬪牛’, 개싸움 ‘투견鬪犬’ 등 생명체를 이용한 잔인한 놀이들이 적지 않았다. 가사도는 이런 싸움과 도박뿐만 아니라 귀뚜라미까지 싸움을 붙여 이를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도박을 했다.
--- 「가사도」 중에서
유근劉瑾과 ‘팔호八虎’의 간행 수법 가운데 아주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훗날 청나라 때 사람 심덕부 沈德符의 《야획편野獲編》에서 이 수법을 ‘이읍수간以泣.奸’으로 요약했다. ‘눈물로 간사함을 판다’는 뜻이다. 천박하고 떳떳하지 못한 자가 울고불고하는 수단으로 사람(권력자)을 속여 그 간사한 계략 등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유근은 이 수법으로 어린 황제 무종武宗의 연민을 불러일으켜 속임수로 황제의 신임을 얻은 다음 사사로운 욕심을 채웠다. 무종이 어릴 때부터 곁에서 돌본 사람이 유근과 환관들 집단인 ‘팔호’였기에 이 수법이 주효할 수 있었다.
--- 「유근」 중에서
세종의 총애를 듬뿍 받으면서 나랏일을 자신의 말 한마디로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력과 능력을 지닌 하언夏言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차라리 오만이었다. 엄숭嚴嵩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엄숭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은 저녁 식사에 하언을 초대하는 방법을 생각해내고는 아주 정중하게 초대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이쯤 되고 보니 엄숭은 초조해져 조바심이 났다. 식사 초대 같은 일도 성사시키지 못하면 모든 문이 막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라앉힐 수 없는 엄숭은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엄숭은 직접 초대장을 들고 하언의 집을 찾았다. 하언의 콧대는 정말 높았다. 대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엄숭은 오기가 발동했다. 눈썹을 한껏 치켜뜨며 엄숭은 하언의 집 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절한 목소리로 자신이 하언을 찾아온 까닭을 읊조렸다. 그 목소리가 하도 진지하고 애절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을 녹일 정도였다.
--- 「엄숭」 중에서
위충현魏忠賢은 또 궁중의 주요한 태감들을 모두 자기 측근과 자신에 게 충성하는 앞잡이들로 바꾸었다. 위충현과 객客씨가 이렇게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설치는 동안에 철없는 황제는 여전히 놀이에만 빠져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노는 데만 정신 팔린 희종이야말로 정말이지 팔자 편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백성들이야 굶어 죽던 지 맞아죽던 지 내 알 바 아니었다.
위충현이 권력을 휘두른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이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위충현은 이 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고자당’을 결성했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 일당들을 전국 각지로 보내 국가의 각 부문과 지방 행정까지 장악하게 만들었다. 정이지 조정의 대권은 물론 천하를 오로지 하겠다는 위충현의 야심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 「위충헌」 중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수보 자리에 오른 온체인溫體仁, 하지만 그도 대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수레에 함께 탄 처지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자는 뭐 먹을 것이 있다고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황제를 기만하고 백성을 괴롭혔다. 오죽했으면 온체인이 집권한 8년 동안 “나라에 이로운 일이라 곤 단 한 가지도 하지 않았고, 나라에 해로운 일도 단 하나 제거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얻었겠는가?
당시 대신들이 올린 온체인에 대한 탄핵 상소를 보면 “허구한 날 은혜와 원수만 찾고, 누가 곁눈질로 째려보기만 해도 기어코 보복했다”고 했다. 수백에 이르는 문무대신이 죽거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온체인은 황제의 총애만 믿고 시체처럼 염치없이 자리나 지키면서 국록을 축냈다. 온체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음모가의 못된 놀이밖에는 없었다.
--- 「온체인」 중에서
화신和?은 재물을 잘 거두어들여 건륭의 눈에 들었다. 황제가 말만 하면 하얀 백설 같은 은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화신은 마술사가 아니었다. 돌을 금으로 바꾸는 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우선은 훔치는 것이다. 그는 재정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국고의 수입과 지출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결정되었다. 원래 국고로 들어와야 할 항목이 그의 교묘한 조작을 거쳐 마치 ‘변장술’을 부린 것처럼 모습을 바꾸어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비자금 금고로 흘러 들어갔다.
--- 「화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