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탈진 골목길에 빼앗긴 마음은 이제 그 사진들 없이 한 나라의 크고 작은 사건을 떠올리지 못한다. 흔적은 남아 있어도 더 이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시절과 장소, 인물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 같은 역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라져버린 것들의 흔적을 찾으면 찾을수록 커져만 가는 그리움 속에서 머묾과 떠남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고, 어떻게 풀이할 것인가? 김기찬의 사진은 사라짐을 연출한다. 존재를 되비추고 상황의 ‘이전’과 ‘이후’를 포착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법이 없고, 시선에 순간의 감미로운 격정을 선사한다.
---「골목 풍경을 사랑한 김기찬을 기리며」중에서
도시는 언어와 더불어 태어난다. 성스러운 말이든 세속의 말이든 언어가 이 한정된 공간을 채운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는 골목으로 넘쳐난다. 골목을 거닐고 골목에서 만나고 골목에서 서로 부르고 담소를 나눈다. 대개 원형인 작은 광장에서 단어들이 어우러져 돌고 또 돌아간다. 길은 외로운 이를 맞이하고, 그를 다른 고독에 이어준다. 낱말들이 허공으로 날아간들 어떠하랴. 파도가 되밀려오듯 다음날이면 돌아와 새 힘을 얻을 텐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 2」중에서
나는 옛집이 새 건물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좋았다. 이 꼭대기 층 베란다에서 보이는 판잣집과 개야말로 승리를 목전에 둔 적진의 포위 속에서 최후의 저항을 벌이는 고립지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제 두 발로 서서 살아갈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저 꿋꿋한 인물들을 지켜보았다.
---「의정부의 오막살이」중에서
거리는 아이들 세상이다. 길은 마주 보는 집들을 갈라놓는 경계선에 그치지 않는다. 반대쪽으로 가려면 넘어가야 하는 아스팔트 바닥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맞은편에 가면 내가 있던 곳이 보인다. 길은 사적 공간의 연속이고, 집 문턱의 연장이다.
---「거리는 우리들 세상」중에서
이 책에 주로 소개된 60년대부터 80년대의 사진 속 인물들이 유교문화 탓인지 하나같이 웃음기 없는 굳은 표정을 보인다면, 2000년대의 사진은 이 같은 엄격함에 등을 돌린다. 자유주의 경제의 도래와 함께 몸도 해방된 것이다. 군홧발 소리가 쿵쿵 울리던 암울한 산업화 시대를 지나 레저 산업이 성황을 이루는 소비 시대로 옮겨가면서 전통문화에 갇혀 있던 몸이 이제 매체가 되어 자신만의 담론을 표방하고 나섰고, 성전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잽싸게 이 담론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 그 몸짓」중에서
80년대의 삭막한 풍경, 아무것도 없이 노는 아이, 고된 노동. 조세희의 사진 작업에는 엿보는 듯한 시선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오직 생생한 현실의 포착만 존재할 따름이다. 궁핍을 넘어 비참에 가까운 시절에 근대화의 역군이 되었던 이들의 존엄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달픔이 묻어나오는 일련의 작품에서 한 장 한 장은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것들로, 모든 사진이 감상하는 이의 시선 아래 어우러지고, 내면에서 비로소 그 어떤 관점이 생겨난다. 감상자는 그 관점을 제 것으로 삼아 그것을 지니고 감당하는 것이다.
---「생생한 현실의 포착, 조세희를 기리며」중에서
아이의 오른쪽에는 닫힌 문이, 왼쪽에는 열린 문이 있다. 이 두 문은 근대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80년대 아이 앞에 펼쳐질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찍는 이는 휑한 배경에 당황해 뒤로 물러난 듯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앞에서 피사체가 멀어져간다. 어린 소녀의 외로움, 낡고 허름한 건물, 소녀의 궁핍한 삶이 온 세계를 말없이 나무란다.
---「열린 문, 닫힌 문」중에서
사진은 그것이 고정된 이미지일지라도 실은 움직임에 바치는 한 편의 시다. “흔히 상상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상은 오히려 지각이 제공한 이미지를 변형하는 능력이고, 무엇보다 최초의 이미지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고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다.”라고 바슐라르도 말했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상승의 힘을 상상하지 않고 사진을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공기와 꿈」중에서
이미지로 잠식된 이 시대에, 무엇인가를 보아야만 하는 의무에 시선이 지배당하는 이 시대에 마동욱은 본질에 대한 추억, 가진 것 없는 이들과 우리를 넉넉히 먹이는 들판과 발밑에서 부서지는 파도에 대한 추억으로 이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여행으로의 초대이고, 시선은 드넓은 풍경에서 낱낱의 그리움으로 길을 떠난다. 작품을 통해 마동욱이 우리에게 더해 준 겹눈을 가지고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던가.
---「겹눈의 사진작가 마동욱을 기리며」중에서
안에 있는 기다란 평상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작은 책상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글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 글 쓰는 이라면 그 어떤 몸짓도 무용하기만 한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고요한 배경에서 사진 찍는 이의 눈길이 정물을 살아나게 한다. 부재하는 삶에 시선을 드리워 말 없는 두근거림과 속삭이는 목소리, 사뿐한 발걸음과 고요한 몸짓으로 장면을 채운다. 은밀함을 품은 모든 기호는 상상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게 한다.
---「움직이지 않는 장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