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와중에도 나는 변하고 있다는 걸
이나영 에세이 PD (nyshiny11@yes24.com)
2023-08-17
무지 덥던 몇 년 전 여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은 어느새 내 방 바닥에 고여 하루가 머다하고 물을 닦아내야 했고, 그 해 여름 나는 내내 모든 불행들을 그 누수과 엮기 시작했다. 집에서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새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물이 떨어질까봐 내내 살피게 되고, 집의 단점들을 하나씩 더 찾아내게 되었다. 나의 신경은 곤두섰고, 어디에서나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으며, 혼자 사는 집에 관리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탓에 불안감도 커졌다.
그런 내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벅찼던 상태라 모든 데에서 지쳐 있었다. 아니, 사실 누구에게 알려도 반가워 할 리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도 속풀이할 데는 필요했던 거였는데 그걸 제대로 풀어놓지 못해 마음은 하루하루 더 무거워졌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났고, 그 집을 떠났기에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때 내가 내 속을 잘 풀어냈더라면 그 해 여름이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게도 천장에 물이 새는 최악의 여름이 있었던 터라, '여름 사람' 김신회 작가가 '나의 누수 일지'라는 제목으로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 이 책을 반가이 펼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끼리는 통하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마음 먹고 산 집에서 불안을 키우던 그가, 집의 누수로 인해 일상의 무너짐을 겪게 되고, 지킬 게 있어 더 악착같이 살아야 했던 작가로서의 이야기까지. 그의 15번째 에세이집에는 그간 보기 어려웠던 그의 축축한 감정들을 집의 누수라는 사건과 함께 담아냈다. 이제 김신회 작가의 여름을 떠올릴 때 『아무튼, 여름』의 사랑스러움만이 아니라, 이 책의 축축한 위로도 떠올리게 될 테다.
책을 읽고 나면 누수 때문에 결국 살았다는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누수를 해결하는 과정은 성가시고 울적하지만, 누수를 해결하는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조금씩 변화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싫은 소리도 하기 어려웠던 자신에서, 현실의 문제를 헤쳐나가려 나설 줄 아는 사람으로. 삶이 줄줄 새는 그 와중에도 사람은 변하더라는 것을 그는 발견한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우리에게도 다가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각자의 방법이 저마다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작가 특유의 위트와 코믹한 문체로 중간 중간 웃겨주는 것 역시 그만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니었던가. 울기만 하란 법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김신회 작가의 또 다른 여름 에세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