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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수 일지

: 갑자기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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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53g | 135*200*13mm
ISBN13 9791198334312
ISBN10 119833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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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고단한 와중에도 나는 변하고 있다는 걸
이나영 에세이 PD (nyshiny11@yes24.com)
2023-08-17
무지 덥던 몇 년 전 여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은 어느새 내 방 바닥에 고여 하루가 머다하고 물을 닦아내야 했고, 그 해 여름 나는 내내 모든 불행들을 그 누수과 엮기 시작했다. 집에서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물이 새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물이 떨어질까봐 내내 살피게 되고, 집의 단점들을 하나씩 더 찾아내게 되었다. 나의 신경은 곤두섰고, 어디에서나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으며, 혼자 사는 집에 관리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탓에 불안감도 커졌다.

그런 내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벅찼던 상태라 모든 데에서 지쳐 있었다. 아니, 사실 누구에게 알려도 반가워 할 리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도 속풀이할 데는 필요했던 거였는데 그걸 제대로 풀어놓지 못해 마음은 하루하루 더 무거워졌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났고, 그 집을 떠났기에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때 내가 내 속을 잘 풀어냈더라면 그 해 여름이 조금 덜 힘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게도 천장에 물이 새는 최악의 여름이 있었던 터라, '여름 사람' 김신회 작가가 '나의 누수 일지'라는 제목으로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 이 책을 반가이 펼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끼리는 통하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마음 먹고 산 집에서 불안을 키우던 그가, 집의 누수로 인해 일상의 무너짐을 겪게 되고, 지킬 게 있어 더 악착같이 살아야 했던 작가로서의 이야기까지. 그의 15번째 에세이집에는 그간 보기 어려웠던 그의 축축한 감정들을 집의 누수라는 사건과 함께 담아냈다. 이제 김신회 작가의 여름을 떠올릴 때 『아무튼, 여름』의 사랑스러움만이 아니라, 이 책의 축축한 위로도 떠올리게 될 테다.

책을 읽고 나면 누수 때문에 결국 살았다는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누수를 해결하는 과정은 성가시고 울적하지만, 누수를 해결하는 그 과정 속에서 그는 조금씩 변화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싫은 소리도 하기 어려웠던 자신에서, 현실의 문제를 헤쳐나가려 나설 줄 아는 사람으로. 삶이 줄줄 새는 그 와중에도 사람은 변하더라는 것을 그는 발견한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우리에게도 다가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각자의 방법이 저마다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작가 특유의 위트와 코믹한 문체로 중간 중간 웃겨주는 것 역시 그만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니었던가. 울기만 하란 법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김신회 작가의 또 다른 여름 에세이집이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집이 생겼다는 사실을 즐기기보다 집이 생겼다는 변화에 허둥댔다.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집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같았다. 나는 낯선 걸 두려워하는 사람. 새로운 걸 즐기지 못하는 사람. 걱정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는 사람. 불안이 큰 사람은 현재를 살지 못한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지금을 놓친다. 새로이 갖게 된 돈과 집은 내가 가진 불안을 더 크게 불려놓았다. 매일 집구석에 틀어박힌 채, 이 집이 나의 불안과 나를 동시에 집어삼키는 상상을 했다.
--- p.40

살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애쓰는가 아니면 최대한 열심히 도망치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다. 냄비에 상한 찌개가 있는데, 그걸 처리할 엄두가 안 나면 뚜껑을 덮으면 된다. 그러라고 뚜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인생에 크고 작은 뚜껑이 엄청 많아서 이건 이 뚜껑으로 덮고 저건 저 뚜껑으로 막으면서 살아왔다.
--- p.53

“누수 피해 있으니까, 밑에 와서 확인해주세요.” 그러자 날아드는 한 마디. “왜요?”
내가 잘못 들었나.
“네?”
“그러니까, 왜요.”
가슴이 웅장해진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예상치 못한 반격을 대할 때마다 나는 말문이 막힌다. 얼굴은 불타오르는데, 몸은 차갑게 식어 덜덜 떨린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기에 애써 침착을 가장한다. “선생님 댁에서 누수가 돼서 저희 집 천장이 다 젖었다고요. 피해 상황을 보셔야 보상을 하죠.” 그는 대꾸한다. “무슨 보상이요?”
--- p.54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어’라는 말만큼 폭력적이고 납작한 말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우리 중에 인생을 선택해서 살아온 사람이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인생에 놓여버린 것 아닌가. 그걸 그 사람의 선택이 잘못된 거라고, 또는 선택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 p.62

몰라도 되는 삶은 안락하다. 계획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일상은 순조롭다. 그런 인생을 잘 굴러가게 한다고 해서 과연 어른일까. 지금껏 알던 세상이 무너졌을 때 잿더미를 털고 일어나, 몰랐던 걸 하나하나 깨치며 단단해지는 게 어른 아닐까.
--- p.105

지킬 게 있는 사람은 강해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연약해진다. 그리고 각박해진다. 행여나 더 큰 불이익을 볼까 봐 날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그게 과연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마음의 여유는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온다.
--- p.173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직관을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 ‘해야 할 것 같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마음의 소리’는 직관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라면, 직관적인 선택의 기준은 ‘나’.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일은 고집이나 뒤처짐이 아니다. 살면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온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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