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6월 24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30쪽 | 496g | 130*198*30mm |
ISBN13 | 9791190090018 |
ISBN10 | 1190090015 |
발행일 | 2019년 06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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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30쪽 | 496g | 130*198*30mm |
ISBN13 | 9791190090018 |
ISBN10 | 1190090015 |
MD 한마디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국과학문학상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며 차세대 SF 작가의 화려한 등장을 알린 김초엽의 첫 소설집으로, 그야말로 올해 가장 핫한 작가이자 책입니다. 읽은 분이라면 누구나 "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란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실 겝니다. 한국 SF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작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 소설MD 김도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007 스펙트럼 ·057 공생 가설 ·09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45 감정의 물성 ·189 관내분실 ·21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273 해설 | 인아영(문학평론가)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 ·321 작가의 말 ·337 |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 소설집이다. 나는 7개의 단편중 <관내분실>이 가장 인상 깊어, 이에 대해 감상을 써보려 한다.
인간의 죽음 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을까? 지금의 과학은 인간의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영원한 삶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각각의 사후세계 안에서 영원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문학은 각각의 텍스트 나름의 영원을 추구한다. 예컨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에서 '담'은 죽은 '구'를 먹으며 자신 안에 영원히 살게 한다.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에서 엄마 김은하는 '마인드'의 관내'분실'로 인해 영원히 기억된다.
'영원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거나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초월하여 삶의 상태로 끝없이 이어지는 '마인드'는 영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마인드를 남기는 대신 분실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과는 다른 형태의 영원을 바란 것이라 볼 수 있다. 있음의 상태에서 영원은 엄마에게 의미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로,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기만 할 뿐이니까.
"여전히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은 달라졌다. 타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 이를테면 '그 사람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말해주었을까?' '살아 있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분명 기뻐해줄 텐데' 같은 질문의 답을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225p)
분실의 상태는 실로 애매모호하다. 아예 없음의 상태는 단념으로 이어지고, 있음의 상태는 답을 쥐여준다. 마인드의 분실로 인해 딸 지민은 단념을 할 수도,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지민은 이 모호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의 인덱스를 찾는다. 이 과정을 통해 지민은 엄마를 고유한 존재인 김은하로서 인식되게 된다. 엄마의 '과거'를 '지금'의 지민이 이해하게 되는 것. 엄마가 바랐던 영원은 분실의 상태에서만 가능했기에 분실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있음과 없음 사이의 그 미묘한 상태는 시간을 초월해 이해하고 존재하게 하는, 그 영원을 가능하게 하기도 하니까.
융통합의 시대에 과학자의 소설은 이런걸까
과학적 근거를 알 수 없어도 너무나도 현실적이며 한없이 인간적인 SF소설이라 어렵지 않게 읽혔고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 이세상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류드밀라의행성은 스페인에서 봤던 어느 작가의 섬세한 이야기가 가득한 그림같다.
이렇게나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류드밀라 행성의 존재가 희망이 되어준다.
릴리가 나를 폐기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였다 .
어떤 존재에게 살아갈 권리가 부여되는 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이 모순된 문장속에, 그로인해 그려지는 미래의 모습 속에
우리가 무슨 권리로 어떠한 존재에게 살아갈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만으로 살아갈 권리는 부여되는 것이 흔히 들어온 인권일텐데
분명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 시대가 아닌 다른 행성의 어떠한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무섭게도 쉽게 이해되고 공감이 갔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나누어 원하는 것을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나의 시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
SF소설속의 일만은 아니었다.
난민들, 노숙자들을 비롯해 경제적, 사회적 소외계층 혹은 취약계층..
서울과 같은 도시와 지방으로 불려지는그 이외의 지역들.
몇가지의 다른 이야기들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꽤 닮아있고 분명 닿아있어서
사실 많이 서글펐다.
책표지를 훑어보지 않고 책을 한장 한장 읽어나가는 동안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을 정도의 문장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책의 뒷표지에 적혀있을 만큼, 다른 사람들도 인상깊은 문장이었나보다
사실 이곳에서의 괴로움은 일상이며 행복은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떠나기엔 아름다운 곳이지 라고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게 아닌가"
흥미롭게 읽었고 내 마음은 헛헛했다.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이 더 이상 운행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남편과 아들들은 무엇하고 있었나.
우주 정거장을 혼자 수리할 수 있는 정도라면 우주선 운전법을 금방 배웠을 텐데, 왜 진작 직접 우주선을 운전하려 하지 않았나.
더 먼 우주를 갈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는데 승무원없이 우주선은 운행할 수 없나, 자동운전이나 원격운전이 안되나.
대안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시도하지 않은 건, 어쩌면 그들이 영원히 떠났기 때문인가. 이미 떠났는데 혹시 다시 찾을까, 찾아올까하며 기다린 건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180쪽)
제목을 보고 명랑한 이야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