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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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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43위 | 국내도서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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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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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년 12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06g | 140*210*20mm
ISBN13 9788954684200
ISBN10 895468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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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했던 문유석 저자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주목한다. 불평등, 분열로 갈라진 한국 사회.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가치가 필요한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고찰해냈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인터넷 포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건사고 소식이 올라온다. SNS나 유튜브에서는 저마다의 비판과 성토가 쏟아지고 찬반 여론은 극렬하게 부딪히지만 어느새 사건은 금세 잊히고 서로에 대한 분노의 앙금만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풍경이다. 각자의 옳음과 그름이 상충하고, 이해관계가 다층적으로 얽힌 만큼 판단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를 느끼지만,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만큼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작아지는데 장기화하는 코로나 팬데믹마저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켜 서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건강한 가치 판단과 공존을 위한 타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최소한의 선의』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통쾌하게 비판한 문유석 작가가, 한 사회의 개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짚어보는 책이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권리선언이자 모두의 약속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색해지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시대.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경기 침체로 너나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오징어 게임’이 아닌, 지혜로운 공존을 위한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1부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
_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왜 헌법인가
법도 위아래가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약속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사형제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은 감수성이다

2부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
_우리는 서로를 볼 때 흐린 눈을 뜨고 볼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라는 사고방식
‘자유’의 연대기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나
인간이라는 이름의 공해

3부 선의만으로 충분치 않다
_세상의 갈등 중 많은 경우가 선의와 선의의 부딪힘이다.


정의 vs. 자유
도대체 왜 법은 범죄자들에게 관대할까
법치주의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것들
성폭력은 자유에 대한 죄
과잉금지의 원칙
아름다운 판결과 냉정한 판결

4부 공정도 공존을 위한 것이다
_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게 뭘까? 다양하겠지만 가장 보편적인 답을 찾자면 ‘날로 먹는 꼴’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지옥
언더도그마와 약자 혐오
인공지능 시대의 평등

에필로그_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애초에 다른 존재들끼리 한집에 살기 위해 최소한의 타협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 자체를 싸움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약속 위반을 따지는 게 낫다. 그 모두의 약속이 헌법이다.
--- p.20

재판에서 이기는 당사자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거나 다짜고짜 우는 사람이 아니다. 빼도 박도 못할 계약서 조항을 들이미는 사람이 제일 강하다. 권리를 가진 자는 그걸 당당하게 주장하면 된다. 은혜를 베풀 것을 호소할 필요도 없고 힘으로 윽박지를 필요도 없다.
--- p.23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코끼리 몸의 부분부분만을 만져보고는,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어느 부분만을 떼어서는 ‘이것만이 코끼리다!’라고 단정하는 말[은 위험하]다. 원래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그리고 진짜 나쁜 건 알 만큼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 p.28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존엄한 것은 대한민국도 아니고, 한민족도 아니다. 인간이다.
--- p.33

평소 포털 기사 댓글에서 보게 되는 국민 여론과 직접 피고인을 눈앞에서 보며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양형의견은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배심원들은 판사들보다 낮은 양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응보 감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에 대해 느껴지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 역시 존중될 필요가 있다.
--- p.58~59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사회는 제도만으로 건설할 수 없다. 밥은 굶지 않게 최소한의 먹을 것은 국가가 지급하고 있지 않느냐, 뭘 더 바라느냐 감사할 줄 알아야지. 이런 마음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무리 사회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급자들을 동냥하는 걸인으로 취급하는 사회다.
--- p.73

사람에게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어쩌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가득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 p.75

법치주의는 법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누구든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p.82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결론을 위해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반칙이다. 반칙에는 대가가 따른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열정은 ‘내로남불’이라는 비난과 함께 부메랑처럼 그 대가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_87

‘자유’에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자유는 때로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평등, 존엄성, 공존 등 다른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보완해야지 자유를 재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유란 백지 같아서 다른 것을 덧칠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 p.97

혼자 있을 때 무슨 짓을 하며 사는지 타인들이 엿보고 폭로하려 든다면, 신상털이를 해대며 낙인찍는다면, 너의 생각을 밝히라며 질문을 해댄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약을 하라거나 십자가를 밟아보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사회일까. _102

내심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이를 강제로 알아내려는 시도를 금지해야 한다. 그래서 침묵의 자유가 보장되고, 간접적인 행동을 요구함으로써 내심을 알아내려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를 양심 추지推知(미루어 생각하여 앎)의 금지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 개새끼, 해봐!’ 하지 말라는 것이다.
--- p.103

여름날의 폭염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집단적 분노가 뜨거운 것이 우리 사회다. 권리를 주장하면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하고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돌팔매질을 당한다. 완벽하게 고결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는 한 위선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 p.108~109

이제는 ‘알권리’보다 ‘모를 자유’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인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제발 좀 남들에게 신경 좀 끄고 각자 좀 살자고 이 연사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다.
--- p.128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충분하지 않은 응보야말로 국가보안법 위반처럼 보아 엄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닐까. 응보는 단순히 국민 감정에 휘둘리는 사법 포퓰리즘이 아니다. 오히려 사법이 해야 할 본질적인 기능일 수도 있다.
--- p.158

세상의 갈등 모두가 선과 악의 대결, 또는 정의와 적폐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경우는 선의와 선의의 부딪힘이기도 하다.
--- p.187~188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 p.205

인공지능이 어느 직업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는 테크놀로지의 문제라기보다 가치관의 문제, 정치의 문제다. 인공지능 판사에게 사형까지 가능한 형벌 권한을 줄 것인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긴급 상황에서 운전자를 희생시킬지 보행자를 희생시킬지 매뉴얼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 p.237

인류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인간에게 인류 문명의 성과에 대해 최소한의 유류분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참조하여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보다 인간의 시민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래의 인권선언이자 헌법이 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위력이 압도적일수록 인문학적 상상력이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생명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 오랜 역사의 산물인 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성도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 p.240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류가 공유해온 타협의 기술이다”

저마다의 가치관이 부딪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누가, ‘모두의 약속’을 위반하는지 따져보면 된다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작가가 말하는 ‘법치주의’라는 타협의 기술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할수록, 그걸 지탱해왔던 기둥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명 세계를 떠받들어온 기둥이다. 단순히 위반하면 안 되는 규칙이나 강제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법은 문명 세계의 기둥이다. 그 기둥이 세계 도처에서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끼던 2020년 봄의 어느 날, 나는 법에 대해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_「프롤로그」에서

극심한 갈등과 날 선 증오에 상처받고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

인터넷 포털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건사고 소식이 올라온다. SNS나 유튜브에서는 저마다의 비판과 성토가 쏟아지고 찬반 여론은 극렬하게 부딪히지만 어느새 사건은 금세 잊히고 서로에 대한 분노의 앙금만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풍경이다.

각자의 옳음과 그름이 상충하고, 이해관계가 다층적으로 얽힌 만큼 판단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를 느끼지만,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만큼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작아지는데 장기화하는 코로나 팬데믹마저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켜 서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건강한 가치 판단과 공존을 위한 타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최소한의 선의』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통쾌하게 비판한 문유석 작가가, 한 사회의 개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짚어보는 책이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권리선언이자 모두의 약속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색해지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시대.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경기 침체로 너나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오징어 게임’이 아닌, 지혜로운 공존을 위한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차마 함부로 남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는 마음, 인간이 존엄한 이유

대한민국의 모든 법률은 최고법인 헌법에 의거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어떤 특정 부류나 계층이 아닌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이 무참하게 훼손당하고 모욕당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접한다.

책의 1부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에서는 인간 존엄성 개념이 확립되어온 역사를 조목조목 살피며 이를 중심으로 한 헌법적 가치를 망각한 듯한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 존엄성은 감상적 휴머니즘이 아니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합의해온 가치이자 우리나라 법 체계의 출발점이고 헌법의 핵심이다. 만일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 삶 속에 체화되지 않았거나 위선적이고 공허한 소리일 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진 자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그 모든 ‘갑질’과 횡포와 폭력이 만연한 나머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간성을 허상처럼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법이 왜 인간 존엄성을 최상위의 가치로 두는지, 누군가 반사 이익을 얻더라도 왜 ‘모두의 인격’이 법으로써 존중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글들로 이루어진 1부에서는 23년간 법관으로서 법을 공부하고 실제에 적용해온 문유석 작가의 송곳 같은 논리가 유려하게 펼쳐진다.

헌법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평소 늘 도덕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만을 골라서 존엄하다는 것이 아니다. 신이 부여한 특성이든 진화의 결과이든, 모든 인간에게는 최소한 이성과 양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존엄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능력이 있음에도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보편적 인권의 근거가 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에 그의 인종·성별·종교·지능·재산 등과 관계없이, 또한 그가 선한지 악한지, 성인군자인지 범죄자인지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_본문 41~42쪽

인간이라는 이름의 공해 속 우리는
제각각 달라도, 불편해도, 타협하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지구상의 인간 군상과 세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자신을 전시하기도 하고 남들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부러워하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미처 소화되지 못한 날것의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넘치는 공간에서 사생활 침해와 인격 살인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그러한 무분별한 비방과 혐오를 강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못마땅하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할 권리는 애초부터 그 누구에게도 없을뿐더러, 인간에게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천부인권적’ 자유가 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이는 누군가가 눈엣가시처럼 보일지라도 함부로 그를 비난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는 무엇일까. 이동하고, 직업을 갖고, 학문을 추구하고, 뭔가를 표현하고 등등 멋진 무엇을 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자유. 그것은 그저 홀로 있는 내 공간 안의 자유, 내 머릿속 생각의 자유일 것이다. 뭘 거창하게 하기 이전에, 태어난 내 모습대로 그저 있을 자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구동매가 슬프게 되뇌던 독백 같은 대사처럼 말이다. “아무것도요. 그저 있습니다, 애기씨.” (…) 자유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고결하고 도덕적이고 훌륭한 생각만 보호하지 않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생활만 보호하지 않는다.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가 있다. _본문 100~101쪽

도대체 왜, 법은 피해자를 외면하고 범죄자들에게 관대할까

모든 사회적 이슈마다 여론은 팽팽하게 갈리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흉악범죄에 대해서만큼은 온 국민이 분노와 슬픔에 치를 떤다. 범죄자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뉴스 기사 댓글에 줄을 잇는다. 그러나 최종 판결은 그러한 정의로운 분노를 달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태는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문유석 작가는 우선 우리 헌법질서에 내재한 ‘인본주의’와 ‘공리주의’가 형벌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법이 인간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라면 형벌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의’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치주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법감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렇다 하더라도 법이 ‘인간’ 그 자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법이 인간의 감정과 편향을 너무 쉽게 간과하는 나머지, 법적 효능에 대한 시민의 신뢰마저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예전부터 피고인의 호소를 잘 경청하고 선처를 잘 베푸는 법관은 ‘생불’ 소리를 듣곤 했다. 반면 법정구속을 칼같이 하고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법관은 모질다, 모났다는 소리를 듣는다. 왜일까. 법관이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사무적인데 반하여 피고인과 그 가족, 변호인 들은 목숨을 걸고 판사만 쳐다본다.

게다가 판사의 인간관계는 협소하다. 동료였던 법관도 선배였던 법관도 언젠가는 변호사가 된다. 판사 주변에는 시간이 갈수록 변호사만 가득해진다. 그리고 변호사는 피고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선처 잘하는 판사를 싫어할 변호사는 없다. ‘인간을 이해하는 법관’ ‘생불’이라고 칭송하며 그 재판장에게 자기 사건이 배정되기를 바랄 것이다. 칭송에는 돈이 들지 않지만 판사의 선처는 변호사에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_본문 155~156쪽

공정한 경쟁은, ‘사회적 배려’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인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를 평등이라는 헌법의 핵심 가치와 연결해 풀어가는 책의 4부는 이 책의 백미다. 현대적 평등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존 롤스의 『정의론』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적 화제를 모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르는 논의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기도 하고, 공정한 경쟁을 두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논의가 지닌 의미와 문제점을 예리하게 진단해보기도 한다.

‘약자는 무조건 선하다는 인식의 오류’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언더도그’라는 용어를 동원하며 차별시정 조치에 반발심을 품는 전 세계적 약자 혐오 현상에 대한 글, 인간의 노동력의 많은 부분이 로봇으로 대체될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서 변화될 평등 개념을 논하는 글 또한 탁월한 논리 전개를 따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오래 공유하고 지켜온 가치들을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적용하고 변화시켜갈 것인지에 관한 작가의 질문과 답은 혼탁한 우리 시대에 내리는 또하나의 명쾌한 처방전이다.

헌법에 있는 평등에 관한 조항이 무엇인지 물으면 거의 대부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대답한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법 앞에’ 평등하기만 하면? 우리는 거기에 머물지 말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평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다.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사회는 평등하다고 부를 수 있다. 모두에게 똑같은 분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 앞의 평등’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에 의한 평등’이 필요하다. _본문 232~233쪽

회원리뷰 (35건) 리뷰 총점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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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최소한의 선의 리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t****x | 2022.09.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쾌락독서,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 전 판사님의 최소한의 선의 리뷰입니다. 이전 출간작들을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구매해서 읽었어요. 최소한의 선의라는 책 제목에 딱 어울리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해요. 법은 우리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또 가장 먼 존재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책은 법에 대해 가장 쉽고도 명쾌하게 해석해주고 있어서 그 거리감을 확 좁혀;
리뷰제목
쾌락독서,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문유석 전 판사님의 최소한의 선의 리뷰입니다.
이전 출간작들을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구매해서 읽었어요.
최소한의 선의라는 책 제목에 딱 어울리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해요.
법은 우리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또 가장 먼 존재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책은 법에 대해 가장 쉽고도 명쾌하게 해석해주고 있어서 그 거리감을 확 좁혀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느끼고 실천해야 하는 부분들을 콕 집어서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설명해주어서 특히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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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말로 존엄한가, 질문하게 될 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2 | 2022.08.0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였나. 아니면 다른 성인 교양 프로그램에서였나. 어느 법조인이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형사법은 어떤 피해자의 마음도 후련하게 해주지 못한다고. 그날 내가 본 프로그램은 성폭력에 대한 사건이었고,나는 여자로, 엄마로, 누군가의 친구로 그 문제에 제법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피해자라면, 피해자의 울분이 가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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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에서 였나. 아니면 다른 성인 교양 프로그램에서였나. 어느 법조인이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형사법은 어떤 피해자의 마음도 후련하게 해주지 못한다고. 그날 내가 본 프로그램은 성폭력에 대한 사건이었고,나는 여자로, 엄마로, 누군가의 친구로 그 문제에 제법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형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피해자라면, 피해자의 울분이 가실 수 없는 법이라면, 정말로 법은 약자의 편인지, 인간은 정말로 존엄한 존재이긴 한지, 그냥 거대 시스템의 작은 존재들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불현듯 그런 불만이 질문의 형태를 빌어 마음에 싹텄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될 확률이 더 높은 세상에서 사는데, 어째서 법은 항상 약자를 대신해주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법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걸까.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그런 질문을 했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그런 삶들이 눈에 보였다. 조금은 부끄러웠다. 인간은 존엄하다고 누가 규정했는지, 그 존엄이 지켜지고 있기는 한 건지, 나는 정말로 존엄한 존재인지, 나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름의 대답을 해보려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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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이 있는, 한 직업을 오랫동안 지속한 이야깃꾼의 글은 귀하다. <최소한의 선의>가 그렇다. 작가가 이 책의 서두에 썼듯이 <최소한의 선의>는 "나라도 헌법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저자의 의도가 가득하다. 법을 영업하겠다니, 아마도 법의 원리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삶에 수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법의 세부 조항들은 아주 구체적일테지만, 이 책이 가진 담론들, 법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는지, 21세기의 법이 아직 해내지 못한 역할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지, 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세계적인 화두인 정의, 공정, 혐오와 차별 같은 가치 대립은 어떻게 법과 연결되는지 등의 질문에 20년이 넘는 판사가 자신의 내공을 펼친다. 추상적담론이 될 말들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사건들을 꿰는 작가의 글을 읽어나가며 훌륭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하고 새삼 알았다. 나같은 시니컬한 독자의 의심에 반박하되 공감해주는 작가의 마음과 오랜 시간 법과 함께한 사람으로서 내놓는 의견도 좋았다.

"인류는 오랜 역사 끝에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인간을 존엄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계약을 이루어냈고, 이것이 문명국가의 헌법이다. 신이 어떤 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떠한 본성적인 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하는 사회가 성립되었고, 이러한 약속은 비록 현실에서 완전히 실천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해도 여전히 소중하다." 

나는 우선 '인간의 존엄'에 대해 명쾌하게 글을 쓴 이 단락이 좋았다.  모르겠으면 그냥 외워, 같은 말처럼 읽히기도 했지만 모든 인간을 존엄하다고 인정하는 사회 계약을 이루어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짐작되었고 이것이 문명국가의 헌법,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우리 모두가 합의 해야 할 최소한의 선의가 바로 이것이라고 규정해주는 듯했다. 나 역시 어쩌면 나의 권리를 옳다고 말하려다가 (물론 선의로)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선의를 이기려고 들진 않았는지, 그럼으로써 나의 존엄을 세우느라 다른 사람의 존엄을 해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키워드는 '공존'이다. 나와 당신이 같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어떤 가이드가 바로 법이라고, 그러니 법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사이를 벌리고 그럼으로써 서로의 안전선 안에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시스템이라고 말해준다고 느꼈다. 

법 없이 살 사람이 없을 수도 있겠다. 사실, 그런 생각을 했다. 따지고 싶어 펼쳐든 책이었는데 나 역시 문득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존심이 센 사람들, 내가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읽으면 겸허해 질 책이다. 

공존하는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에겐 무릎을 탁 치는 지혜들이 글 곳곳에 숨어 있어 반가울 책이기도 하다. 

사뮈엘 베키트가 쓴 <보이 체크>(희곡)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도덕은, 윤리는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은 당신(대위) 같이 따뜻한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는 여유로운 사람들만 생각할 수 있다"고. 워딩이 정확하진 않지만 나는 내가 그런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큰 피해 입지 않았지만, 언젠가 피해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 특히 여성이라면 쉽게 느끼는 감정인데(이 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닫아둬야겠다), 그렇게 나의 존재의 선함을 주장하려다가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들진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집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타와 배려와 관용과 수용과 역지사지, 그리고 현자의 말이 다 들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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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최소한의 선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어**자 | 2022.07.13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라 라고 일갈하면서 샤이맨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던 문유석 작가/판사님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으면서, 전작의 시원한 사이다, 구체적인 표현, 은근한 공감/개그보다는 좀 더 중후해진, 보기에 따라서는 건조해진 인상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의 양상 속에서 최소한의 선(Line)을 지키는 것이 최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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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라 라고 일갈하면서

샤이맨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냈던 문유석 작가/판사님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으면서, 전작의 시원한 사이다, 구체적인 표현, 은근한 공감/개그보다는

좀 더 중후해진, 보기에 따라서는 건조해진 인상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의 양상 속에서

최소한의 선(Line)을 지키는 것이 최소한의 선(착할 선)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 각자가 느끼는 단상들도 모두 다를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 공감하는 팬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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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5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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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추천글이 많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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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g******l | 2022.09.15
구매 평점5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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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t****x | 2022.09.03
구매 평점5점
추천글들이 하도 많아서 구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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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e***n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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