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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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406g | 140*210*20mm |
ISBN13 | 9788954684200 |
ISBN10 | 8954684203 |
발행일 | 2021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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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406g | 140*210*20mm |
ISBN13 | 9788954684200 |
ISBN10 | 8954684203 |
MD 한마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했던 문유석 저자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주목한다. 불평등, 분열로 갈라진 한국 사회.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가치가 필요한지 법학적 관점에서 경쾌하고도 예리하게 고찰해냈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프롤로그 1부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 _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왜 헌법인가 법도 위아래가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약속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사형제 사람답게 산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은 감수성이다 2부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 _우리는 서로를 볼 때 흐린 눈을 뜨고 볼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라는 사고방식 ‘자유’의 연대기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나 인간이라는 이름의 공해 3부 선의만으로 충분치 않다 _세상의 갈등 중 많은 경우가 선의와 선의의 부딪힘이다. 정의 vs. 자유 도대체 왜 법은 범죄자들에게 관대할까 법치주의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것들 성폭력은 자유에 대한 죄 과잉금지의 원칙 아름다운 판결과 냉정한 판결 4부 공정도 공존을 위한 것이다 _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게 뭘까? 다양하겠지만 가장 보편적인 답을 찾자면 ‘날로 먹는 꼴’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지옥 언더도그마와 약자 혐오 인공지능 시대의 평등 에필로그_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 |
개인주의자 법관 문유석(이제는 법관직을 그만뒀지만)은 법이란 “최소한의 선의”라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조금 바꾼 말이다. 법이란 도덕에 기초한 것이지만,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에서, 문유석은 조금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다(적어도 ‘선의’는 ‘도덕’보다 따스하다. 그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거나 쉽지는 않지만).
헌법에서 시작하고 있다. 헌법과 법이 현재의 모습을 취하게 된 역사적 과정, 그것들이 목적하는 바, 그리고 적용되는 현실을 통해 ‘헌법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헌법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고민은 헌법이 하위로 두고 있는 법의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헌법과 법이 지키고자 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관과 사회에 대해 법을 고리 삼아 짚어본 제안이다.
법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문유석 전 판사이자 작가가 가장 강조하는 얘기는 헌법, 법이란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이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도 않았다. 주로는 유럽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이만큼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피가 뿌려졌다. 솔직히 그가 인용한 우리 헌법 1~2장을 읽으며 그처럼 나도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이 몇 문장을 얻기 위해 뿌려진 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완전하지 않다(그래서 선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법이란 최소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문유석은 그럼에도 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의 혼란을 생각해서도 그렇지만, 법의 정신을 생각해서도 그렇단다. 물론 이 부분은 법은 전공하고 오랫동안 법을 다루었던 이에게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법치주의란 법만을 들이대는 태도가 아니라, 그와 가장 관련 깊은 태도가 바로 ‘자유주의’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법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자유에 대해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를 언급하는 데서 그가 생각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보장이 법의 정신이라면 그 다음 닿아야 하는 지점은 ‘공존’이다. 문유석은 에필로그의 제목을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로 했을 만큼, 이 공존이야말로 법이 다다라야 할 목표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법 조문으로 때려 박는 차원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기대는 것은 ‘사고방식’이다. 법이야말로 타협의 기술인데(사실 많이 잊히고 있지만), 극단적인 대결만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법이 그 대결을 부추기는 상황을 안타까워 한다(그래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강조한다).
사실 최근에 법, 혹은 재판과 관련해서 조금 깊게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진로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 내지는 재판이 판결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진로에 관한 것은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조언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범위와 관련된 것은 판사가 재판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혹은 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해당 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없는 판사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겠지만, 그 의견도 서로 상충되는 상황에서 (법이 아니라, 법 조문을 적시하지도 않았으니까) 자신의 상식에 맞추어 판결하는 것이, 과연 전문가 집단의 토론에 맡기는 것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스스로 판단을 유보하고 법에 맡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도 깨달았고, 또 우려스러웠다.
잘 모르겠다. 일반인들은 법을 몰라야, 법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지 않아야 편안한 사회라고 하는 글도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그렇지 않다. 세세한 법 조항이 우리 삶을 옥좨기도 하고, 혹은 숨통을 틔우기도 한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손해만 가져올 것이 뻔하다. 그래서 법조인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냥 잘 모르는 일이라고 손을 놔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헌)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 이게 중요하다고 개인주의자를 선언한 전 판사이자 현 작가 문유석은 강조하고 있다. 상당히 공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류가 공유해온 타협의 기술이다” 저마다의 가치관이 부딪히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누가, ‘모두의 약속’을 위반하는지 따져보면 된다.
우리는 약속, 규칙, 양보, 거래, 상호이해, 자제, 존중의 힘으로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날 수 있었고, 한밤중에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 힘이 제도화된 것이 법이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냥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게 아닐까.
도덕적으론 이미 무너져버린 이 시대.
거짓과 호위와 위선과 날조와 비방고...
그 어떤 말로도 담아내지 못할 이 시국의 추악함은 극을 달해 이미 한계점을 넘어선지 오래 된 듯 싶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린 자들의 외침이 우습다. 가련하다. 침 뱉어주고 싶다.
이 책이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마음 뿐이다.
작년에 출간된 문유석 판사의 <최소한의 선의>를 진작 읽어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해를 넘겨 올해 들어서야 만나보게 되었다. 믿고 읽는 문판사의 책은 전작 <개인주의자 선언>과 <쾌락독서>를 통해 그 진가를 알아보고 믿고 읽는 작가로 일찌감치 올려져 있었다.
날카로우면서도 힘을 뺀 유머가 담긴 문체는 읽는 이들을 편안하게 이끌면서도 정작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허투루 지나가지않도록 꼭꼭 집어서 분명하고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글은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끔 만드는 책들이다.
저자는 법관생활을 마치고 이미 퇴직하였지만 이 책 <최소한의 선의>를 가지고 본연의 업이었던 법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치주의와 헌법의 이념에 담긴 진정한 의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법의 다양한 부분들과 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공정, 평등에 대해서까지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역시 샌델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떠올려보게 된다. 법과 관련하여 정의를 빼고 논할수 없기에 다양한 정의론에 대한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며 공정성과 평등(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능력주의에 대한 이야기까지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이어진다.
그런데 역시나 문유석 저자의 비유와 예시는 탁월하다. 어떤 어려운 이론도 초등학생도 이해할만큼 쉽고 기기막힌 예시를 끌어와 너무도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수 있게 돕고 있다. 게다 이번엔 법이다. 헌법의 근본 가치들을 논하는 이 책은 전작인 <쾌락독서>처럼 개인적 독서취향을 논하던 에세이나 개인주의자로서 이 사회의 갑갑증과 문제점을 사이다처럼 짚어나가는 <개인주의자 선언>같은 에세이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역시 힘빼고 유머러스하게 쓰는 책을 좋아하기에 이 책을 쓰면서 그 무게감과 어렵고 지루할 주제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개인주의자 선언과 완전히 무관한 책은 아닌것이 각기 다른 개인들을 존중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울수 있으려면 '법치주의'의 사고 아래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존해 나갈때 그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는 이야기이다.
"법치주의는 법이면 뭐든 다 할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누구든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가 진정한 법치주의 사회다"
'법치주의라는 사고방식'의 주요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첫째는 신중함이다.
주장보다는 증거, 신념보다는 과학, 감정보다는 이성에 무게를 두고 유보적이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논쟁적인 이슈에 접근해야 한다. 답답하고 어렵지만 보다 안전한 길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상대주의다. 절대를 고집하지 않는다. 법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다. 법은 인간사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세번째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이는 분쟁 당사자 모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옳고 그름, 선악, 피아의 흑백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전쟁의 논리이거나 종교의 논리지 법의 논리가 아니다. 법치주의는 어느 한쪽을 악으로 몰아 청산하려는 태도와 맞지 않는다.
법은 기본적으로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선, 전쟁이 아닌 평화, 굴복이 아닌 타협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p.86)
최근 우리나라의 갈수록 심각해지는 정치적 대립, 세대간, 남녀간, 지역간 그외에도 각종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혐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끝을 볼둣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각종 혐오단어들로 도배하며 조롱하는 댓글은 갈수록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해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속에서 다시 헌법으로 돌아가 헌법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헌법의 기본 이념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헌법이 갖는 한계성까지 조목조목 짚어본 이 책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볼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고 방식'에 대한 이야기 이다.
때론 선과 악이 아닌 선의와 선의가 부딪히는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사고하며 나아갈 것인가. 법은 최소한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선에서 최선의 결론을 내리지만 그 결론이 때론 우리에게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책속에는 다양한 예시를 들어 우리가 평소 법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때 논쟁이 붙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가져와 설명하고 있다.
사형제 폐지가 맞는것인가? 코카인을 하다 잡혀온 사강이 자신의 변론으로 말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 말은 옳은것일까?
왜 법은 범죄자들에게 관대할까? 법치주의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것은 무엇일까?
약자 혐오(언더 도그마)는 왜 만들어지는것이며 이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이런 흥미진진한 주제들을 법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인문학적, 역사적 지식도 풍부한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이 한권의 책에 잘 녹여 정리해놓았다.
역시나 설득당할수밖에 없다. 너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니까. 그리고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좀더 공존을 위한 지혜를 발휘할수 있는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나의 모습들도 돌아보게 되고.
다소 무겁고 진부한 주제를 다룬것 같은 이 책의 프롤로그의 첫 구절은 그가 글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_아르미안의 네딸들에서
아니....아니...지금 심각한 법치주의와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의 첫 구절에 이런 순정만화에서 따온 구절이라니!!!
이 구절을 읽으며 시작부터 책에 대한 부담과 긴장을 던져버리게 된다. 얼핏보면 법에 대한 책 프롤로그에 너무나 안어울리는 듯한 구절인데 퇴임후 자신이 한달살기 같은 여행책을 쓰려고 했다 코로나 시기에 모든 여행길이 막히면서 어쩌다 법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는 상황에 대해 묘하게 또 어울리는 구절 이기도 하다. ㅋㅋㅋ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인 전쟁의 신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에 빠지면서 나오는 그 구절을 인용해오다니... 정말 상상초월의 문유석판사라는 생각이 들며 이 허를 찌르는 인용에 다시한번 탄복하게 된다.
(사실 나는 중고생시절 저 만화에 흠뻑 빠져서 저 구절에 가슴찌릿찌릿한 감동을 받았기에...여러모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지식인 문유석 판사지만 저 만화인용구 한마디에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ㅎㅎㅎ)
책의 1부에서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도덕교과서에서 배울법한 내용만이 아닌 인간이 진정 존엄하긴 한건가에 대한 질문부터, 헌법상의 의미를 넘어선 존엄이 의미하는것은 무엇인지, 왜 인간의 존엄성이 양보할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가 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제도를 넘어서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법치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이념으로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결국 쉽게 말하면 인간을 특별히 귀한 존재로 취급하겠다, 특별한 대우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범죄자도 인간의 한사람으로서 그 반사적 이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 체제가 치러야 할 세금같은 것이다.
범죄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누가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지에 대한 '인간결정여부'를 국가에 맡겨도 괜찮은가?
소년법체벌의 강화에 대한 의견도 그렇다.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관점에서 사회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기에 실제로 교화가능성이 높은 소년범들을 장기복역시키는것보다 재범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도록 낮게 벌하고 처벌보다 교회를 원칙으로 한다.
사람이 죽든 말든 정해놓은 매뉴얼과 절차가 더 즁요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제도는 있을지 모르되 인간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에게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어쩌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가득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p.75)
2부에서는 법치주의 아래에서의 다양한 자유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야말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적 물의가 없다면 어떤 행동의 자유도 보장받을수 있다는 건데, 극단적 예로 저자는 유별날 자유, 비루할 자유, 불온할 자유를 언급하고 있다.
3부에서는 세상의 수많은 갈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상의 갈등중 선의와 선의가 부딪히는 많은 경우들에 대해 살피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정의가 무엇인지, 우리가 바라는 공정에 대한 생각들, 인공지능 시대의 평등에 대해서까지 확장해서 생각한 글을 담고 있다.
법치주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
정의가 강처럼 넘치지만 위험한 '사이다' 사회보다 분통은 터지고 답답하지만 안전한 '고구마'사회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있다. 기존의 법치주의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다. 인본주의, 합리주의, 공리주의를 토대로 형성되었다지만 법치주의 시스템은 정작 '인간'자체를 놓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두가지 점에서다. 인간의 편향,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다.
'시스템'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 법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 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 입장, 주관에 따른 편향이 있고 그런 자신의 편향을 과소평가하는 편향마저 가지고 있다.
완벽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인간은 없다.
인공지능조차 학습과정에서 인간들의 편향을 학습하는 마당에 어떤 인간이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있을까.
(p.153)
현대 뇌과학은 감정이야말로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며,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판단 과정을 패턴화하여 마치 인터넷 즐겨찾기처럼 빠르게 처리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본다. 이런 매커니즘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법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과 그 관점들을 헌법정신과 비교하며 다양한 우리 주변의 사례를 들며 조용히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판사였던 저자역시 어느 지점에서는 법에 대한 울분을 살짝 드러내기도 하고 부당함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치우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중립적 가치를 가지고 헌법을 바라봐야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 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속에 실마리가 담겨있다. 우리모두는 각기 다른 존재들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합리적으로 다른이들과 타협하고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며 타인의 개별성과 자유를 존중할줄 아는 마음과 개인의 힘으로 바꿀수 없는 부분들의 해결을 위해 타인들과 연대하는 사회, 이러한 모든 사회 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이고 이러한 사고방식의 토대가 법치주의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사회로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인 우리 각자가 이러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고를 통해 행동하고 실천할때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며 성숙한 사회로 한발 가까이 다가갈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