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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78g | 125*204*20mm
ISBN13 9791158966263
ISBN10 11589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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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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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귀가 꾸역꾸역 먹은 말
아침 되자 울컥 게워내는 입
햇빛에 내어 말리기 부끄러웠는데
때마침 비가 온다
때문이라는 말과
형편없다는 말은
햇빛의 찬란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귀가 소화시키기 어려운 말
되새김질되는 말들은
눈물이라든가
식은땀이라든가
자잘한 조각들로 쪼개지기도 하는데
덩치 큰 말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져 목구멍을 막는다
비 온다
소화장애 가진 귀 씻으라고
눈물보다 짠 비가 온다
---「말을 먹은 귀」중에서

남자가 서툴게 여자를 업는다
하얀 블라우스에 오렌지색 핫팬츠를 입은
싱싱한 여자가 남자 등에 업힌다
남자의 목에 긴장을 두르고 귓가에 앵두 같은 말을 넣는다
사뿐한 여자를 업고
긴장한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
얼굴이 붉었다

폭염 경보가 내린 한낮이었다

한 계단씩 걸음 옮길 때마다
뭉클한 가슴이 그의 등으로
그렇게 옮겨 앉았을까
창원터미널 지하도를 다 내려갔을 때
그의 등에 솟은 봉긋한 가슴
몇 날 몇 밤 꺼지지 않는 가슴 때문에
불현듯 생겨난 가슴 때문에
한동안은 엎드려 잠들지도 몰라
박자를 놓쳐 허둥대는 심장과
땀으로 끈적이는 손바닥이 있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중에서

사람들이 다리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내성적인 섬과 그에 못지않은 섬 사이에
덩치 큰 용기 하나가 그어지는 것이다
외따로 있는 그들은
파도의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녹색 머리칼로 눈을 가린다
팔 다리를 표시 없이 말아 넣은 건
감정 드러나는 것을 경계한 까닭이다
호기심 많은 돌멩이들 쉬지 않고 재잘거려
꿈쩍하지 않아도 멍이 드는 섬
안개 짙은 날
조금 더 용기 있는 한쪽에서
접어둔 팔을 재빨리 뻗어
건너편 섬의 주머니 속으로 쑥스러운 미소를 밀어 넣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온 손이
뭉툭한 한쪽 허리 간지럽혀도
못 이긴 척 그 은유를 받는 것이다
수줍고 떨리는 어깨에
긴장한 그의 팔이 둘러지는 것이다
발그레한 두 뺨 기대는 것이다
---「프러포즈」중에서

무심했다는 말이
아주 천천히 날아온 3·15 아침

덩치 큰 침묵은 폭력이라는 사실
마른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온 기침을 통해
영문도 모르고 붉어진 거울을 통해 알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사시나무 떨듯 한다는 말을
죄책감 없이
아무 때나 불러낸 내가
전신의 이파리를 격렬히 떨어대는 사시나무를 마주했을 때
처럼
슬·펐·다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눈동자에 뚫린 동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그날의 눈물을 기억하지 못하는
녹슨 창문도 함께 열었다
---「죽지 않는 나무」중에서

말[言]을 잘못 먹었다

늦은 밤
몸속 배관이 오늘 하루를 낭패로 배설한다
한껏 차려입은
늙지 않는 얼굴 자랑하는 식탁에서
어쩌다 큰돈 번 친구가
아직도 “왜” 그곳에 사냐고 물었다
질문 뒤에 숨은 그녀의 날름거리는 혀와 번들대는 입술
숟가락이 무거웠다
웃어넘기지 못해
꿀꺽 삼키지 못해
상해버린 비위의 되새김질 덕분에
사회성 떨어지는 낡은 집도
몸속 배관도 뒤틀리고 있다

과식보다 무서운 결핍의 배설
깊은 밤 수직 통로를 깨운다
---「배관의 사회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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