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는 촬영감독, 디자이너, 작가, 오디오 감독 등 다양한 포지션을 조금씩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중 단연코 중요한 것은 ‘아이템을 고르는 능력’(기획)과 ‘글쓰기 능력’(구성)인데, 내 안에 남아 있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훨씬 수월했다. 기획안 한 장을 쓰더라도 학교에서 배웠던 문장력과 통찰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_김혜림 | MBC PD
부모님은 내가 지방에서 국문과를 나와 안정된 교사를 하길 원했는데(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모르시고!), 나는 안성에 있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고집했다. “어디 감히 딸내미가 집을 떠난다카노!” 대로한 아버지보다 내 목소리가 더 컸다. “아부지가 내 인생 살끼가!”
_노혜영 | 시나리오·드라마 작가
그곳은 강의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고, 파격적이며, 필사적인 동시에 300분 연속강좌는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철야로 이어졌다. 동서고금의 온갖 작가와 문학사, 2400년쯤 도래할 문예사조와 예술론까지 설파하고, 돌아가며 부르는 가창과 특강으로 쉴 틈이 없었다. 흡사 무예경연과도 같은 과목으로 채워진 할머니집 야간 강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강도 없었다.
_이시백 | 소설가
문창과 70주년을 맞이하여 에세이를 써 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는 “굳이 왜 내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어쩌다 보니 문창과에 들어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딴짓을 더 많이 했더라도, 놀랍게도 언젠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어서다.
_김경애 | 동화작가
고교 시절, 전국 백일장을 누비던 문학소녀가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 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수업의 영향이 컸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찾아가 글을 쓰는 논픽션 수업을 들을 때면 심장이 뛰었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가. 누군가 물을 때 늘 답하는 말이 있다. ‘사람을 향한 글을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것.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현장에, 오래 서 있는 기자가 되고 싶다.
_서상희 | 채널A 기자
한 저녁 모임에서 문학박사 도정일 교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도정일 교수님께 인사드렸다. “제가 교수님 덕분에 드라마로 밥벌이하고 삽니다. 고맙습니다.” 도정일 교수님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예전에 제가 00문예지에 시를 응모했는데, 교수님이 저를 떨어뜨리 고 문태준 시인을 뽑으신 바람에, 제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겁니다.”
_정형수 | 드라마 작가
문창과를 졸업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사회로 나왔지만 나름 잘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서 나를 포장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전공은 지금 꽤나 유용하다. 소설 쓰듯 마케팅 전략 장표를 만들 때가 그렇고 후배들 의 카피에 훈수를 둘 때도 그렇다.
_김대영 | 메가존 펜타클 캠페인 부문장
46명의 동기들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문창과에 입학했다. 재학 시절,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죽어라 글만 쓴 친구들도 있고, 단 한 편의 글도 내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부어라 마셔라, 내리에 더 자주 출몰한 나 같은 아이들도 꽤 많았다. 그중 누군가는 꿈꾸던 작가가 되었고, 누군가는 편집자나 기자가 되었다. 글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꿈을 이룬 쪽이다. 그러니 성공한 것인가? 혹은 행복한 것인가?
_정지아 | 소설가
수능이 끝난 후, 글 써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창과를 지망했다. 학교를 졸업하며, 평생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책이 명리학 책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안성 교정을 걷는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첫 번째 선택이 있었기에 명리학자로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_초명 | 명리학자
문창과생이라면 누구든 어김없이 거쳐야 하는 합평 수업. 멋모르고 문창과생이 되었던 나에겐 신세계이자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난생처음 긴 분량의 글을 써야 하는 건 둘째 치고, 학우들의 글을 뜯어보며 평가해야 한다는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외에도 문창과를 다니며 체득한 것들이 많다. 소설 수업을 통해 서사의 원형부터 스토리텔링의 기본기를 익혔고, 영상매체 실습을 통해 영상 제작의 흐름을 이해하고 기초를 다졌다. 이 모든 게 내재화되어 방송계에서 일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_유범상 | 스튜디오드래곤 PD
내가 문창과에서 배운 ‘창작’이라는 것이 방송을 만들 때도, 인생을 설계할 때도 적용될 때가 있는데 어떤 큰 기술이 아니라 이런 마인드에 가깝다. 안주하는 삶이 아닌 실험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 끊임없이 새로운 진입로가 나타나는 시대에 불안을 페달 삼을 줄 아는 마음을 배웠기에 어떤 시대가 와도 변주해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_김현영 | 방송작가
요즘 따져보니 명함이 여러 장이다. ‘우즈베키스탄 전문가’라는 직함이 요즘 가장 잘 팔리는 명함이다. 금년 봄에 펴낸 『우즈베키스탄에 꽂히다』란 인문기행서 때문이다. 덕분에 뒤늦게 차린 ‘도서출판 라운더바우트’ 대표라는 명함도 잘 팔린다. ‘문학TV’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유튜버’라는 꼬리표도 얻었다. 그리고 이를 모두 아우르는 영상제작사 ‘씨앤씨플랫폼 대표’라는 명함도 갖고 있다. 문어발식 사업인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모두 문학과 책과 작가라는 큰 주제 안에서의 작업이다.
_최희영 | 문학TV 대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학부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순수문학에 몰두했던 나는, 석사 이후 방향을 틀어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를 창작하는 작가가 되었다. 방현석 선생님 말씀대로 스토리 만드는 능력이 있으면 밥은 굶지 않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개의 필명을 쓰며 웹 소설, 장르소설, 게임, 드라마, 동화, 애니메이션 등 매체에 맞는 다양한 스토리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다.
_황유정 | 스토리 창작자
‘한국문학 1번지’라는 말은 그저 공허한 레토릭으로만 남은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과연 지속가능한 상징이 될 수 있는가. 학생들은 떠나도 학교 현장에 남아 있는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7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전에 아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_박신규 | 시인
『범도』를 준비하고 쓴 13년은 내가 홍범도부대의 부대원으로, 항일무장투쟁전선의 종군작가로 산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쓴 소설이 내가 문학을 익히던 시절과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독자들을 만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문자 매체는 결코 낡지 않는다. 새로운 매체가 더 새롭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나는 문자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매체의 더 눈부신 성장을 확신한다. 그래서 문자 매체의 힘을 더욱 굳건히 확신한다.
_방현석 | 소설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