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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네우마 시편

예서의시-026이동
이상규 | 예서 | 2023년 12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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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28*210*20mm
ISBN13 9791191938562
ISBN10 1191938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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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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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노을은 갑자기 밀어 닥친다.
황홀한 색상의 혼합으로 된 바탕 그 위에는
미세한 겨울 나뭇가지나 전선
지나가는 바람의 흔적까지
도드라지게 드러낸다.
때로는 그 경계가 일순 다 지워지고
보석 같은 별빛과
늘 기다려지는 출렁이는 달빛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달성군 구지면 장터 양지다방
창문 너머 병풍처럼 둘러싼
신도시 아파트 불빛이 스러진
황혼녘 서쪽 하늘을 둘러칠 무렵
금속성 별빛 장석이 총총 달린
미니스커트에 흰 부츠를 신은
예쁜 청회색 한 마리 노새 닮은
양지다방 여주인

등에 짊어진 무거운 삶의 짐 보따리
내려놓을 땐 가끔 눈물이 섞여 있다.
그녀가 걸어온 삶은 굽고 기울어진 능선, 그
가파른 시간 금방 사라지는 양지다방
지금 황홀한 저녁노을이다.

채소 난전과 대장간 건너
창원에서 올라온 나전칠기
담양에서 올라온 대소쿠리
낙동강 타고 올라온 소금기에 삭은
비린내 나는 생선 난전
얽음배기 박서방, 혀짜레기 허서방
오일장 파장 길에 들러
쌍화차 한 잔 시켜놓고 손목
슬쩍 한 번 잡아주고 훌쩍 떠난
지난 사람의 그리움에

노을이 눈물방울에
붉은 보석같이 박혀 있는
양지다방 미즈 리
그녀는 삶의 답으로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눈물 쏙
빼놓는 여태 걸어온 능선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구지 장터 양지다방」중에서

넓은 네거리
하늘이 좁아진 높은 빌딩
가득한 어둠
점멸하는 불빛이
시들해질 무렵

교차로 푸른 신호등 불빛
달빛이 내려오고
별빛 쏟아진
푸른 강줄기
도심 네거리를 헤치며
저 먼 끝자락에 닿는
고요와 절멸

한낮동안 붐비던 차량과 사람들
흩어놓은 소음이
월인천강에
뜬 무중력의 네온사인

그 불빛 흐려지는 끝자락에
이어진 어둠이 서서히 잿빛
기지개를 펼치고 있다.
---「불타는 월인천강」중에서

6.
눈이 참 어리석다.
이 땅에 내린 적설량과 강수량을
눈으로 헤아려내지만
잠자리 날갯짓에서 번지는
파동과 내 폐 속의 얼룩은
엑스레이를 거쳐 읽어낸다.
지난 시간 내 귀를 애무하던
여자의 지워진 잔상을
바람의 파동으로는 판독하지 못한다.
없는 세계를 보게 할 수 있는
활성화된 시제와 공간 속
정물화 같은 소나무 녹색 바늘이
존재의 눈금이다.
---「프네우마 시편」중에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는 위대한 그림을 보게 되면 벅찬 감동과 동시에 ‘나도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납니다. 장엄하게 떨어지는 감동의 폭포수를 맞은 저는 그길로 캔버스 앞에 다가가 광활한 대지 위를 달리는 말처럼 붓을 타고 시공간을 아우르는 예술가의 특권을 누리며 행복에 젖어 들곤 합니다. 이번에 출판되는 이상규 시인의 ‘프네우마 시편’을 읽고 대지를 달리는 말이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나르는 상상의 희열감을 맛봤습니다. 질박한 시골 뚝배기 같은 텁텁함이 쨍하는 5성급 호텔의 샤베트처럼 변모하고 무문토기에 담긴 삶의 애환이 첨단공학의 결과물과 비견되며 공존과 초월을 넘나드는 시어의 향연 말입니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되는 사건처럼 사실이라 믿던 것까지도 다시 한번 본질의 근원적 물음으로 접근하여 사람을 ‘人間’이라 쓰는 이유를 알게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인간, 그 사랑과 포용의 정신을 일깨워줌에 벅참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가 곳곳에 조각된 이상규 시인의 시어는 오벨리스크처럼 당당히 서서 시대를 아우르게 될 것 같습니다.
- 전완식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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