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장 조선 중기 여성들의 상호 교류 네트워크-미암일기를 통해서 보다
1. 여성들의 인적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여성학이 유입되고 정착하면서 근현대 여성들은 물론 조선시대 여성들의 일상적 삶도 연구 대상이 되었다. 조선시대 여성과 관련한 제도와 법, 그녀들의 법적 지위,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 속에서 차지하는 여성들의 위상, 여성 교육 실상, 여성들의 창작품과 그녀들이 저술한 각종 텍스트들도 연구되었다. 미시적 차원에서는 일기 속에서 여성들의 일상생활과 양상을 찾아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비해 조선 전기에 살았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집안 살림을 '경영'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도 해야했고 그것이 윤리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반면, 한 인간으로서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살아갔던 그녀들의 인적 관계망은 거의 드러나지 못했다. 조선시대는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근간으로 삼았다. 가족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위계를 분명히 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규정도 남성을 중심으로 파악되었다. 여성의 경우 '집 안'이라는 사적 영역의 구성원으로만 파악되었고 김세서리아, 「조선 유학의 가족 서사를 통한 관계적 자아의 정교화: 송덕봉의 서간문에 나타난 부부서사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25, 한국여성철학회, 2016, 10쪽.
집 밖의 인간관계에서는 '남성'에 의존하여 파악되었다. 즉 여성들은 가족 관계에서 며느리, 아내, 어머니와 같은 정체성으로만 규정되었고, 집 밖에서는 아버지나 남편, 아들의 이름을 앞세워야 했다. 그래서 '누구의 딸, 아내, 지칭되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여성의 인적 관계망은 주로 '가족 안에서'만 파악되었다. 그 너머에 있는 관계망에 주목하는 일이 쉬지 않았다.
특히 남성 가부장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의 인적 관계는 '시집'의 관계 안에서 파악되고 언급되는 경향이 강했다. 친가, 인척, '집 밖' 영역에서 생겨나는 여성들의 인적 관계망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이를 테면 '효'에 대한 표창에서 남성의 효는 그의 친부모를 잘 섬긴 사례가 거론되었지만 여성은 친정 부모를 잘 모신 사례보다 '시부모'를 잘 섬긴 사례만 대상으로 하는 '효부(孝婦)'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삼강행실도』의 '효' 항목에서 여성이 친부모를 잘 섬긴 '효녀' 사례는 희소하다. '열'에서는 당연히 '남편'에 대한 여성의 열(烈)이다. 딸로서의 '효녀'보다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열부' '효부'라는 정체성을 더 강조한 것이다. 그만큼 여성들은 '집 밖'의 공적 영역의 구성원으로 공인하지 않았으므로 여성의 인적 관계망은 '남편을 중심으로 시집 가족 내' 것만 다루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관점을 좀 달리해서 본다면, 여성이 집안 살림을 '경영'하면서 실제 어떤 일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집 안' 및 '집 밖'에 있는 인적 관계망에 의존해야 했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인적 관계망에 대한 연구는 주로 남성 사대부 관료에 한정되었다. 남성의 공적 영역 활동만이 '공적'으로 인정되던 시기였으므로 그들의 인적 관계망이 중요한 것을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의 '집 안' 활동도 사회적 관계에 기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인적 관계망에 대한 고찰은 필요하다. 여성들이 누구와 어떤 성격의 인적 관계망을 만들어갔는지, 인적 관계망의 규모는 어떠했는지, 그 관계망 속에서 여성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 일들은 어떤 의미를 띠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일상적 삶의 모습들이 상세히 재구성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암일기』에서 유희춘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눴던 대화, 물건을 보내 준 사람과 물품 내역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특히 만났던 사람들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히 썼다. 그러므로 『미암일기』는 당시 인물들의 인적 관계망을 파악할 수 있는 긴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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