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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귀를 기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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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128*188*20mm
ISBN13 9791198393005
ISBN10 119839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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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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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한 소비심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타인의 불행을 소비할 만큼 저열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내 안위를 확인하지 않았던가. 최소한 저들보다는 낫다는 알량한 믿음. 나보다 더 못한 처지인 사람을 보며 안도하는 것. 비록 치졸한 방식일지언정 불행에 잠식되는 것보다야 나을지도 몰랐다.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지탱해주기만 한다면야.
---「그곳에 살고 있다」중에서

가난과 불행의 파급력은 상상력을 발휘해도 모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불행의 얼굴은 다채로운 나머지 현란할 지경이며, 가난의 증식은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장담컨대 그것 또한 몰락의 길이 분명했다. 그럼 대체 어떤 길을 택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의 선택이 간섭을 일으킬 때」중에서

규식은 그날 들었던 수십 마리의 날갯짓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연했다. 하늘빛 날개와 꽁지가 아름다운 물까치였다. 검은색 머리가 모두 올곧게 한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구름이 하강하는 듯했다. 기이하고도 전율이 이는 장면이었다.
---「땅굴지기」중에서

인경은 차 문을 열고 아이를 향해 뛰어갔다. 잡히지 않을 것이다. 손을 내뻗었다. 까끌까끌한 옷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옷자락이 자신의 손안에 있었다. 순간 소름이 끼쳐 옷을 놓쳤다. 이게 어떻게 손에 잡힐 수 있지? 그녀는 경악했다. 이 세계가 살아 있었다!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중에서

한규는 아버지라고 인지한 순간부터 줄곧 기이한 박자로 심장이 뛰었다. 어쩌면 바라던 대로 아버지를 발견한 것임에도 한규의 심정은 복잡했다. 이론과 현실은 달랐고, 이성과 감정도 달랐으며, 상상과 실전도 달랐다. 그는 양옆으로 날뛰는 모순적인 생각에 당황했다. 불현듯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어진 그가 소리쳤다. “아버지! 거기 계시죠?”
---「그러니 귀를 기울여」중에서

거창하고 대단한 각오를 다지고 등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몹시 피곤해서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했을 따름이다. 생을 놓고 싶은 마음은 죽고 싶은 마음과는 결이 다르다. 그건 엄연히 다른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등대 난간 밖으로 두 팔을 쭉 뻗고, 몸을 반쯤 내밀었다.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은 무모하고 대담하다. 삶은 때때로 그리 다루어야 편하다는 것도 알았다.
---「사몰하는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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