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론: 칸트윤리학에서 덕의 의미
칸트가 제시하는 덕개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의 덕론을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다. 칸트의 덕개념은 그의 여러 윤리학 저서들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해간다. 먼저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살펴보면, 칸트는 덕을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씨”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법칙에 대한 존경에서 오는 합법칙적인 마음씨”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는 “자기의 의무를 정확히 이행하는 확고하게 기초 다져진 마음씨”로 서술된다. 이처럼 덕을 의무로부터 행위하는 윤리적 마음씨로 정의하는 것은 『윤리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그리고 『도덕형이상학』을 관통하는 칸트 덕개념의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윤리형이상학 정초』 이후의 저서들에서 이 윤리적 마음씨에 대한 보다 구체화된 설명들이 등장한다. 먼저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간이 놓일 수 있는 도덕적 상태는 덕, 다시 말해 투쟁 중에 있는 도덕적 마음씨이지, 의지가 완전히 순수한 마음씨를 소유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된 신성성이 아니다.”고 말한다. 칸트가 덕을 단순히 윤리적 마음씨가 아니라 투쟁 중에 있는 윤리적 마음씨로 이해하는 이유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의 다음 구절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도덕적으로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인류 안에 놓여 있는 선의 싹을 한낱 방해 없이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 안에 있으면서 대립적으로 작용하는 악의 원인을 무찌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옛적의 모든 도덕가들 중에서도 특히 스토아주의자들은, (그리스어에서도 라틴어에서도) 용기와 용맹을 지칭하며 그러므로 하나의 적을 전제하는 덕이라는 그들의 표지어[標識語]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칸트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한 본성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이러한 선에 대립적으로 작용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악의 원인을 무찔러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인간의 자연본성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 자연본성 안에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동물성,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성,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귀책능력이 있는 존재로서의 인격성이라는 3가지 선의 근원적 소질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그는 취한 준칙 일반을 준수함에 있어서 인간 심정의 허약성, 비도덕적인 동기들과 도덕적 동기들을 뒤섞으려는 불순성, 악한 준칙들을 채택하려는 악의성이라는 악으로의 세 가지 성벽이 인간 자연본성 안에 존재한다고 본다. 인간의 자연본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일종의 투쟁으로 간주하게 하며, 적에 저항하는 용기나 강함을 의미하는 스토아적 덕개념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이러한 투쟁을 잘 알려준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덕은 감성적 충동이나 경향에 따른 장해물과 투쟁 중에 있는 마음씨인 것이다.
덕이 방해하는 적과 투쟁 중에 있는 윤리적 마음씨로 구체화되지만, 본격적으로 덕론이 제시되는 『도덕형이상학』에서 이 마음씨는 두 가지 차원에서 좀 더 발전된 형태를 갖추게 된다. 먼저 덕은 적과의 투쟁보다 이 투쟁에서 적에 저항하는 용기나 강함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된다. 칸트는 “강력하지만 부당한 적에 대항하여 저항하는 능력과 숙고된 결의가 용기(힘)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 있는 도덕적 심정의 적에게 저항하는 능력과 의지는 덕(도덕적 힘)이다.”고 설명하면서 덕을 의무를 준수하는 인간 의지의 도덕적 강함으로 정의한다.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덕의 강함은 장애를 매개로 해서만 인식되며 그 강도는 우리가 경향에 따라 만들어내는 장애물의 크기로만 평가될 수 있다. 의무를 준수하는 인간 의지의 도덕적 강함은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덕론을 대표하는 덕의 정의이자 덕에 대한 최종적 형태의 정의에 속한다.
방해하는 장애물과 투쟁하면서 의무를 준수하는 윤리적 마음씨라는 덕개념이 발전되는 또 다른 차원은 의무를 준수하는 도덕적 의지규정의 형식적인 부분과 실질적인 부분을 구분하여 덕을 이해하는 다음의 인용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무의 원리에서 실질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을 (즉 합법칙성과 합목적성을) 구별하는 일이 문제될 경우, 덕에 대한 의무지움(윤리적 의무지움)이 곧 덕의무(윤리적 의무)는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법칙 일반에 대한 존중은 아직 하나의 목적을 의무로 근거 짓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데 이 후자만이 [즉 의무로 근거지어진 목적만이] 덕의무다. 덕에 대한 의무지움은 오직 하나뿐이지만, 덕의무에는 많은 것이 존재한다. 우리 목적이 되고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의무인 많은 객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의무를 충족하는 주관적 규정근거인 유덕한 마음씨는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마음씨로서의 덕개념이 덕을 우리의 마음씨 내지 심정에 근거하여 의지와 의무가 일치하는 데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설명한다면 덕에 대한 의무지움과 덕의무라는 이중적 덕개념은 이러한 덕을 덕에 대한 의무지움에 근거하여 덕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기술한다. 칸트는 의무를 충족하는 주관적 규정근거이자 의지규정의 형식적 부분인 윤리적 마음씨 내지 도덕적 심정을 덕에 대한 의무지움으로 칭한다. 덕에 대한 의무지움은 “(예컨대 의무에 적합한 행위가 의무로 말미암아 일어나야만 한다는) 도덕적 의지규정의 형식적인 부분에만 관여하는 의무”로서 하나뿐이고 동일하며 모든 행위에 타당한 의무이다. 그리고 위의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법칙 일반에 대한 존중이 이 덕에 대한 의무지움에 해당한다.
덕에 대한 의무지움과 달리 덕의무는 우리의 선택의 실질적인 부분인 목적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의무를 충족하는 객관적 규정근거이자 의지규정의 실질적 부분에 해당한다. 모든 행위는 각각 목적을 갖고 우리는 자신의 선택의 대상을 스스로 목적으로 삼을 때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 의무의 수행 역시 목적의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으로 선한 유덕한 사람은 마땅히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그런 목적, 즉 그 자체로 의무인 목적을 자신의 목적으로 세운다. 이처럼 의무로 근거지어진 목적, 동시에 의무인 목적이 바로 덕의무이다. 우리의 목적이 되면서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객체들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덕의무는 하나가 아니라 다수가 존재하며 마찬가지로 덕목들도 다수가 있게 된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 덕론 편의 많은 부분을 덕의무의 설명에 할애한다. 기본적으로 덕의무는 구속력이 넓은 불완전한 의무이자 공적 있는 의무에 해당하는데, 덕론의 윤리학적 요소론 편에서 칸트는 덕의무를 자신의 완전성과 타인의 행복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논의한다.
한편 덕을 구분지어 이해하는 것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칸트는 덕이 의무에 맞는 행위들에서의 습성일 때 현상체 덕으로, 그리고 의무로부터 행위하는 항속적인 마음씨, 즉 도덕적으로 선한 마음씨일 때 예지체 덕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전자는 그 적법성의 면에서 즉 경험적인 성격에서 덕으로, 후자는 그 도덕성의 면에서 즉 예지적 성격에서 덕으로 일컬어진다. 현상체와 예지체 그리고 의지규정의 질료와 형식이라는 두 이분법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고려할 때 현상체 덕이 덕의무에, 그리고 예지체 덕이 덕에 대한 의무지움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대응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