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주로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였던 많은 지역이 신생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은 1945년에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을 쟁취하였다. 해방 직후 한국의 경제 수준은 매우 열악하였다. 1960년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80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더욱이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생산시설마저 대부분 파괴되었다. 휴전 후에는 정치적 소요 사태가 지속되어 사실상 경제성장은 불가능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매우 빈약하다. 약간의 석탄, 석회석, 금 외에 산업화에 필수적인 주요 자연자원은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다. 특히 현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인 석유나 천연가스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강대국의 영향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이 보여 준 경제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시다고 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당당히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에 진입하게 된 시점은 1962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된 이후이다. 6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의 산업화를 선도하였다. 특히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중화학공업의 육성이 중요한 기폭점이 되었다. 이 기간에 설립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현대중공업 등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여 지금도 한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1980년, 정치적 격변기를 거친 한국경제는 안정적 성장 단계에 들어서서 세계화(globalization)와 자유화(liberalization)를 추진한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였다. 그러나 준비 없이 너무 조급하게 세계화를 추진하는 바람에 1997년 말에는 외환위기(currency crisis)를 당하게 된다.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파산, 실업의 폭증, 고금리의 부담 등 승승장구하던 한국 경제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1998년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었으나 강력한 구조조정정책의 추진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제공으로 위기를 빠르게 벗어나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은 때마침 세계적으로 붐을 이룬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성장과 함께 본격적인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2000년대 초반의 세계경제는 지속적인 호황을 구가한다.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도 있었으나 유동성의 과다 공급 때문에 발생한 주택시장의 활황으로 ‘대완화(the Great Moderation)’라고 부르는 유례없는 호경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붕괴되며 2008년도에는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온다. 2011년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까지 겹치게 되어 세계 경제는 큰 침체에 빠지게 되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 역시 타격을 받아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 시기의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도 한다. 경기 부양을 위해 각국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와 같은 대대적인 유동성 확대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그 후 10년 동안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평균 3퍼센트 수준에서 안정된다. 한국은 2018년도에 ‘30-50 클럽’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으로 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국가는 한국을 포함하여 7개국에 불과하다. 1945년 해방 이후 70여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를 벗어나서 가장 잘 사는 경제 대국의 하나로 성장한 한국의 사례는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성공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매우 중요하다.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미래의 성장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본서는 한국경제의 성장이 ‘한강의 기적’으로 간단히 넘길 만큼 그저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성장 이론에 비추어 볼 때 한국경제의 성장은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에 한국경제의 성장이 기적이라고 하면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한국경제의 성장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이 명확한 이유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라면 그 몰락도 충분한 이유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본서는 한국경제의 성장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으며, 따라서 미래에도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이론은 성장의 원천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투입물의 증가 또는 생산성의 향상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다. 투입물이 증가하면 당연히 산출물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투입물의 증가에 의존한 성장은 곧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투입물을 계속 증가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투입물을 계속 늘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생산성이 향상되어야 한다. 생산성은 투입물 대비 산출물의 비율을 의미한다. 동일한 크기의 투입물을 투입해서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다. 생산성의 향상이 지속적 성장의 관건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효율성 증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동일한 크기의 노동이나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생산량이 증가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만으로 오늘날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의 소득 차이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최근에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의 또 다른 결정 요인으로 경제체제의 효율성에 주목하고 있다. 똑같은 기술을 채택하더라도 더 효율적인 체제일수록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경제의 효율성이 성장에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다들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효율성이 매우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있다. 경제체제, 법 제도, 개방성, 금융발달 수준, 사람들의 정신 자세, 문화 등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너무 많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