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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아포스트로피(생략부호) / 머묾 / 양끝 맞추기 / 코덱스(책자본) / 3차원성 / 들여쓰기(1) / 들여쓰기(2) / 윤리 / 사철제본 / 색 / 볼드체 / 왼끝 맞추기 / 판형 / 각주 / 줄표 / 구체성 / 회색도 / 손 / 수작업 / 이데올로기 / 침투 / 인쇄 정판 / 상온 아교 / 신체 / 종이결의 방향 / 편집 /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읽기 쉬운 / 합자 / 크기 / 규칙 / 착시 / 종이(1) / 종이(2) / 품질 / 사방 여백 / 릴리프(돋을새김) / 글자 크기 / 글자체 선택 / 표제지 / 겉표지 / 커닝 / 책임 / 출판사 / 여백 / 단어 간격 / 엑스하이트 / 음양(농담) / 부호, 특수부호 / 글줄 번호(행수) / 2단 조판 미주 |
저롤란트 로이스
관심작가 알림신청역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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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책의 두 가지 미덕Les deux vertus d’un livre』에서 가치 있는 고서와 신간 도서에 대한 소개글을 쓰면서 날카로운 분석력과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두 가지 통찰을 제시했다. 책이란 한편으로는 생리학적 광학 규칙과 그 절차에 따라 합리적이고 정확하게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완벽한 읽기 기계’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한 정신이 새겨진 데다 균형잡힌 질서를 갖추기 위해 많은 의식적 노력이 깃든 사물이자 예술품이라는 설명이었다.
---「서문」중에서 책의 특징은 물질적인 몸체를 가진, 매우 유연한 머묾이다. 즉 책은 모든 존재가 자신과 생생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인쇄된 글은 단기 혹은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효한 출판물이 된다. ‘유효한’이라는 말은 전달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우연성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책이 단 300부만 인쇄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한다. ---「머묾」중에서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읽는 것은 병리학적으로 평면적인 읽기이고, 이를 위해서는 키클롭스처럼 눈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평면적인 읽기로는 심도가 부족하고, 체계가 없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강요한다 한들 누구도 평면적인 읽기를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방어하고 저항할 것이다. ---「3차원성」중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종이에 선명하게 인쇄되어 전 세계 각지의 사립 혹은 공립 도서관에 흩어져 있는 300부 가량의 책보다 텍스트를 더 견고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물건은 없다. 지구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책에 쓰인 내용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계속해서 보살필 필요 없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화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성질은 그것의 견고한 구체성에 달려 있다. ---「구체성」중에서 고전적인 조판 규칙은 결코 추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단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명확한 역사적, 미학적인 인식을 담고 있었으며 실제 일처리를 하는 데 유용한 조언을 제시한다. 우선은 로마자 문자체의 철자를 조정하는 일이 두 개의 근본적인 문자 체계인 로마자 대문자체와 카롤링거 소문자의 시각적 균형을 맞추도록 최적화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수작업」중에서 성공적인 타이포그래피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비예술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모든 작은 디테일을 꿰뚫지만 절대로 전면으로 밀고 나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타이포그래피의 가장 큰 효과는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발휘된다. ---「이데올로기」중에서 넉넉함이란 낭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인간 덕목이자 미적 요소로서의 덕목이며, 그것이 나타나는 모든 맥락에 자극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려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책 제작 분야에서는 책의 펼침면의 여백에서 그 효과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여백」중에서 글자체를 선택할 때 발생하는 달갑잖은 부작용을 예측하고 자신의 결정이 미칠 영향을 역사적 인식의 관점에서 상상할 수 있으려면 책 디자이너에게는 많은 경험과 판단력, 취향이 필요하다. 책을 출판하는 사람은 파일을 재빨리 온라인에 올리는 사람과는 다른 시간의 프레임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인은 자신이 현재 살아가는 시대에 통용되는 유행을 전제로 미래의 독자, 즉 50년 후에 그 책을 펼쳐 볼 미래의 독자들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독자들이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유행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편향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책은 조용히 앉아 명상하는 장소, 신성한 침묵의 공간이다. ---「글자체 선택」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