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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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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30*200*20mm
ISBN13 979119296806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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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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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털의 색, 얼굴 모양, 사료를 먹을 때의 습관. 그런 사소한 것들로 생기는 것이 호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과 사람, 생명체와 생명체의 관계가 그런 얄팍한 호감들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승마교본」중에서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만 확실하게 알려주면 당신을 밟거나 차지 않을 거예요. 그 이야기는 당신을 일부러 공격할 리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일어나는 사고 대부분은 사람과 말 쌍방 실수입니다. 말에게 복수나 증오라는 감정은 없어요.
---「승마교본」중에서

다리가 역관절로 태어난 녀석은 사람을 태우기는커녕 정상적으로 자라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고기를 보며 세 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했다. 사장은 고기를 비육마처럼 살을 찌워 잡아먹으려고 생각했겠지만, 고기는 좀체 살을 찌우지도 못했다.
---「안녕, 지금이순간」중에서

장사 말 대부분이 등이나 복대가 닿는 배에 가죽이 벗겨진 상처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었다. 억지로 하루종일 여러 사람들을 태워야만 하는 장사 말들을 보면 가끔은 일종의 포주가 된 것만 같았다. 단 한 명의 교감할 대상을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한 말들을 볼 때면 언제나 안타까움이 늘어갔다.
---「안녕, 지금이순간」중에서

준희는 마지막에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왜 있을까. 세계는 조금 변했을까.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림 속의 화재」중에서

일반 손님들이 줄어들수록 순례자들이 내는 금액이 점점 높아졌고 5천 원짜리 커피를 팔면서 몇십만 원 더 크게는 몇백만 원의 금액을 현금으로 내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그 상황을 나 자신이 점점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는 피곤했을 뿐이에요」중에서

왜 나에게 이런. 유리를 닦고 싶었다. 지금 당장 차를 멈추고. 걸레로 닦고 싶었다. 그 얼굴이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벌레의 얼굴. 빌어먹을 당신의 얼굴. 그런데 잠시만 과연 나를 괴롭히는 게 벌레들인가?
---「단지, 그는 피곤했을 뿐이에요」중에서

눈이 아주 많이 내린 어느 날, 아니 사실 아주 맑은 초여름일 수도 있어. 기억은 믿을 수 없으니. 흉터가 눈썹 위였는지, 입술 아래였는지 항상 헷갈리는 것과 비슷해. 오히려 거짓말은 기억해야 하니 오류가 없지.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아버지는 광산에 출근한 뒤 돌아오지 않았어.
---「스위치백」중에서

회색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어쩌면 내 나약함의 인정이었다. 동반자가 필요했다. 사실 난 당신들을 존경한다. 타인과 같이 살아갈 생각을 하다니. 서비스업에 1년만 종사해보면 알게 된다.
---「스위치백」중에서

마치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악몽이 사라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2호선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일거리를 거절했던 곳들에 다시 연락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나를 다시 받아줄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렸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집에 돌아오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스위치백」중에서

그곳에 어머니는 없었다. 쪼그려앉아 도로에 손을 댄다. 검은 도로는 하얗게 얼어 있었다. 가드레일 너머 그리운 사람이 보이는 것은 유혹일까 경고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차와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을 수 없다면, 그것을 비행이라고 불러도 될까.
---「검은 얼음 속에서」

그녀와 거무내미를 따라 걷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모든 어머니들처럼 남편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었다. 그리고 매일 밤 갱도가 무너지길 빌었다. 갱도가 무너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어머니를 응원했다. 타인의 불행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행복일 것이다.
---「검은 얼음 속에서」중에서

무너진 흙더미 아래 사람의 손이 빠져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잘못 본 것인가 눈을 비볐지만,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불과 조금 전만 해도 살아 있었을 것 같은 손이었다. 그는 그 손이 너무나 반가웠다.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여기에 같이 있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아 그 손을 꼭 붙잡으며 갱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숨, 기다리는 죽음」중에서

하지만 떠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남자는 확실히 알았다. 자신은 소모품이었다. 남자에게 남은 것은 필터에 검게 낀 죽음의 찌꺼기뿐이었다. 남자는 그들의 삶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 애써 폄훼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절망들도 찌꺼기가 되어 남았을 때는 더이상 사소하지 않게 변한다. 그것이 결국 오랫동안 남을 공감이라는 것일지 모르겠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중에서

당신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 상황이 몇 달이 될지 혹은 몇 년이 될지 지금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살아오면서 당신이 겪은 어떤 상황과도 다를 것이며 가이드라인도 정답도 없다는 것입니다.
---「질병보고 2―코로나 레거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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