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는 1792년 2월 12일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농촌 레삭 마을의 농가에서 열한 번째 자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1815년 사제품을 받고 카르카손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10년간 봉직한 후 27세에 교구 명예 참사위원이 되었다. 1825년 아시아에서 전도하려는 열망으로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선교사 훈련을 받고 1827년 태국 방콕에 부임했다. 이곳에서 조선 교우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와 자금의 부족과 박해 등의 여러 이유 때문에 조선 선교를 회피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러한 이유들에 반박하면서 조선 선교를 자청하였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뜻을 받아들여 1831년 9월 9일 조선 교구를 설정하고 초대 교구장 주교로 브뤼기에르를 임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2년 8월 4일 조선을 향해 즉시 떠났고, 이후 3년 동안 페낭, 마닐라, 마카오를 거쳐 중국 대륙을 종단하면서 조선을 향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었다. 그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도적과 박해자들의 위협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조선 선교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앵베르 신부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와 같은 훌륭한 조선 선교사들을 발탁했고, 조선 선교사들의 안전한 입국로를 확보하기 위해 만주 땅에 교구를 설정해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겨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했다. 이렇듯 조선 입국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나 조선 땅을 눈앞에 둔 1835년 10월 20일, 무리한 여정으로 쇠잔해진 그는 네이멍구 마찌아즈에서 조선 선교의 꿈을 가슴에 품은 채 선종했다.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받았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70년 성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광주가톨릭대학 부교수, 안동교구 청송본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종교신학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주석판 시리즈인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가 복음서』와 『이스라엘 성지/이영현 공저』, 『마르코 복음 이야기』, 『네 복음서 대조/김윤주·배은주 공편』,『바울로 친서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