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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장을 합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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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27*188*18mm
ISBN13 9791197093869
ISBN10 119709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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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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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진 어둠 사이로 빠져나온 하얀 빛 결이 그녀의 올림머리 목 아래로 난 솜털과 잔머리들을 밝게 물들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 빛이 햇빛이 아니라 달빛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책을 낚아채면서 살짝 스친 그녀의 손톱이 낮에 뜬 하얀 초승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깟 여자가 그 여자로 바뀌는 낮밤이었다.
---「투명」중에서

“어휴, 하기 싫어.” 신은 만년 과장의 귀찮은 톤으로 말을 내뱉으면서도 마치 노년의 마에스트로처럼 교향곡을 지휘하듯 두 손을 휘휘 저으며 분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지휘는 같은 곡조인 것처럼, 분리 방법은 매번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분리수거」중에서

벌써 올해만 해도 면접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네요. 하긴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 서류전형을 거의 다 통과한 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거의 모두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면접이었습니다. 너무나 아이러니한 일이죠.
---「자기소개」중에서

조빔은 눈을 떴다. 밤이 깊어 달을 든 하늘이 바다를 담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지, 하늘과 바다가 당최 구분되지 않았다. 한때는 웅장했던 물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것으로 보아 아까 떠 있던 곳과 크게 위치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어둠이 바다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조용한 바다 위, 조빔은 여전히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했다.
---「표류(漂流)」중에서

자, 한번 맞춰 보시라. 나는 어떤 장소에 있을까. 혹 누군가 듣고 있다면 다양한 장소가 튀어나올 듯하지만, 이 장소의 정답은 어쩌면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이 장소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면 같은 특징을 지닌 다른 장소의 또 다른 나와 영혼을 공유하는 것만 같다.
---「미용(美容)」중에서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현재 삶이 여전히 어두운 것에 반해 현재 그녀의 삶은 더욱 밝아 보여서였을까. 그녀가 떠난 뒤, 마음이 불안해 샀던 베스트셀러 힐링 도서의 홍보문구가 순간 광고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두운 곳에서 별은 가장 빛나니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이 문장의 별은 지금의 그녀를 연상케 했다. 물론, 그 별이 자신의 빛을 반사한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지만.
---「토」중에서

그가 혼잣말을 더듬자 괜히 벌써 여름이라도 온 것처럼 온 주변이 습기로 가득 차는 듯했다. 이내 그는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를 기나긴 독백을 시작했다.
---「MAY,DAY!」중에서

병원 조명이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왜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달은 것일까. ‘단 한 번도 병원 조명을 제대로 관찰해본 적이 없군. 아마, 엄마 뱃속에서 갓 나온 아기 시절을 제외하고는 없겠지?’ 진표는 속으로 생각하며 병원 의자에 살짝 굽은 허리를 기댄 채 공상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황혼기념일」중에서

하하, 시인이냐고요? 글쎄요,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영혼이 정해진다는데, 저는 아직도 제 영혼은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어떤 한 시인이 말하길 지금은 시 문학이 죽었다잖아요. 그런데, 만약 시 문학이 정말 죽었다면 시인들은 죽은 것을 좇으며 사랑하려 하는 사람들일까요. 정말 모르겠네요, 저는.
---「즐거운 토요일」중에서

둘은 분명 동시에 하나의 세계를 잡았다. 종종 우리의 삶에서 예상치 못했던 작은 일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지곤 한다. 시우는 그 책을 잡았던 순간, 오늘 하루 자신의 일상을 빠르게 되돌아보았다. 물론 이 생각은 찰나처럼 지나갔지만, 끄집어 길게 늘어뜨리면 웬만한 단편영화 분량만큼은 나오리라.
---「우리 책장을 합치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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