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무척 심심한 사람이었다. 몇 년 전만해도 취향도, 개성도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확고한개성과취향을가진사람들이부러웠다. 무채색 옷을 좋아해 옷장이 온통 흑과 백으로 가득한 사람, 촌스러운 듯 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으로 과감하게 드러내는 사람, 무언가에 빠져 진심으로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그들처럼 드러내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수줍은」중에서
단정하고 싶은 날에는 아이보리골지양말, 허세를 부리고 싶은 날에는 글리터나일론양말, 따스한 날에는 꽃 패턴양말, 코 끝 시린 날에는 파스텔앙고라니트양말을 신곤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계절과 기분에 따라 고른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선다. 양말에 따라 기분이 바뀌고, 특히나 애정 하는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서면 덩달아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도 난, 수줍지만 사적인 취향을 은은히 드러내 본다.
---「수줍은」중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온갖 짐과 속옷, 세면도구, 비닐로 뒤섞인 백팩에서 노트북과 태블릿을 꺼냈다. 그런데 갑작스레 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태블릿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웹툰작가가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절대 의식하진 않았지만, 등을 더 꼿꼿이 세우고 긴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넘기며 사각사각 그림을 그렸다. 이상하게 이 날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 라며 나만의 스타일을 지키며, 자기일을 해내는 사람같았다.
---「별난」중에서
하지만 이렇게 미래를 모른 채 살아 갈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희망을 품고 꿈을 꿀 순 없을 테니까 모르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또한 앞으로의 인생에서 쫄깃함을 맛보며 살아가려면 모르는 게 약 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불투명한 미래가 현재를 지나 선명한 과거가 되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미래가 과거가 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겪고 나면 우린 투명한 과거로부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미래가 불투명한 건, 더 나은 미래를 바라며 더 나은 현재를 살 수 있도록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일지도 모르겠다.
---「불투명한」중에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나라 전통 양말까지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복의 단짝 ‘버선’이다. 톡톡한 천에 버선코가 살짝 올라가 있으며, 발목을 넓게 두르고 있는 버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버선이 아닌 현재 일반적으로 신는 양말을 신게 되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태의 양말은 개화기 이후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원래 한국의 버선을 한자로 ‘말’襪 이라 불렀는데, 서양에서 온 양말 이라는 뜻에서 서양 ‘양’洋을 붙여 ‘양말’洋襪 이 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양말이 한자 인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양말의 어원만 알게 되었을 뿐인데, ‘양말을 좋아 할뿐만 아니라 양말을 잘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제법 똑똑해진 기분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알아간다면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걸 더 잘 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궁금한」중에서
“고무줄을 갖고 노는 게 고무줄놀이인 것처럼,공기를 갖고 노는 게 공기놀이인 것처럼 ‘런던놀이’는 런던을 가지고 노는 것.”
그러다『두나’s 런던놀이』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노는데 불안하고 긴장 하 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거대한 꿈으로 포장하지 말고, 놀이하듯 꿈을 가지고 놀아보자. 그냥 여행가서 사진 찍으며 놀고 글 쓰면서 놀자는 거다. 그렇게 놀다 보면 작지만,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망하나를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다혜’s 놀이”를 시작해보자.
---「꿈꾸는」중에서
앞으로 내게는 마라톤코스보다 훨씬 긴 인생의 여정이 남아있고,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완주해 낼 것이다. 달리는 동안 같은 페이스로 보폭을 맞춰 함께 달리는 사람도, 같은 곳을 향해 달리는 사람도, 나보다 더 어려운 짐을 지고 달리는 사람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도, 물 한 컵과도 같은 선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올 테지만 잠시 속도를 늦춰도 되고, 쉬어도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새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