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중순, 후덥지근한 공기가 밤까지 이어졌다. 더위를 식힐 겸 수박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길다란 의자에 반쯤 누워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하늘에서 빛줄기가 쏟아졌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걸맞게 많은 유성이 궤적을 죽죽 그으며 존재를 드러냈다. 빛 기둥이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근사한 풍경이었다.
-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이 오로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가 더 가지고 덜 가지고 할 것이 없다. 동이 터 별빛이 지는 순간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다운 행동. 거대하고 찬란한 빛이 셈할 수 없는 시간을 달려와 내 눈 속에 들어오는 순간. 그 순간은 주변이 어떻든 나라는 우연한 존재가 여기 있음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아름다움 중에 별빛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겨 우주가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내 진로는 대기과학을 거쳐 지구과학교육이 되었다.
- 지구가 가장 가까운 별인 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기다리던 계절을 맞이하듯 부모인 나는 그렇게 진리처럼 아이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매해 새롭게 설렌다. 나의 따뜻한 계절처럼 아이는 성큼성큼 커서 나를 기대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많은 예술 작품에서 계절 예찬을 하듯이 나에게 아이는 계절이 오는 향기가 주는 위안과 행복 같다.
- 아기 말고 내가 울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 때면 나도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났다. 이윽고 아기가 진정되면 다시 생각했다. 아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울음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했다. 아기가 울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웠고 내가 잘하지 못해 우는 것 같아서 자신에게 화가 나 힘들었다.
- 아기가 밤잠을 자기 시작하면 그제야 아기가 놀다 남긴 흔적을 치운다. 거실에 나와 보면 아기가 놀고 난 모든 이야기가 보인다. 조막만 한 손으로 잡고 두드리고 했던 장남감들, 혼자 사생활을 즐겼던 소파 구석 자리와 텔레비전 장 옆, 재미나서 꺄르르 웃었던 그 모든 자취를 볼 때마다 오늘 하루도 아기는 행복하고 재미있었겠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 당분간 천체 관측을 갈 수 없겠지만 그토록 올려다본 별이 사람이 되어 내 속에 왔나 보다. 아득하게 먼 반짝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최선인 아름다운 동경 그 자체인 별이 나에게 왔다. 쓰다듬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할미는 캔디가 너무 예뻐 달에서 왔다고 했다. 나의 엄마는 정답은 없지만 진심을 다해 기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치는 한마디에 가벼운 따뜻함과 사랑을 담아.
- 모유에서 본격적인 이유식으로 넘어 가는 시기의 가장 큰 화두는 이유식 먹이기다.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클지언데 내가 주는 이유식을 거의 즐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맛이 없나 콧잔등이 시큰할 때도 있다. 새끼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데 든 내 노력보다 입에 맞지 않는지 잘 먹지 않는 미안함이 더 컸다. 처음 보는 새로운 음식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난 뒤에 준비한 식사를 끝까지 먹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푸성귀에 묻은 흙을 씻어내는 것, 가족들 입에 맞게 재료를 고르는 것, 장만해온 생선을 씻는 것 등 모두가 한결같은 수고로움이다. 이런 기억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잊히지 않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한다. 사랑은 배우는 게 아니라 온기처럼 닿으면 스미는 것이다. 밥을 먹으며 웃음 짓는 내 딸과 살이 찔까 투정하면서도 수저를 못 놓는 엄마의 딸은 오늘도 새벽에 지어진 수고로운 무지개 밥상 앞에서 피가 되고 살이 오를 엄마 밥을 먹는다. 본가에 온 며칠 새 얼굴이 포동해져 거울을 보고 울상 짓는 나에게 엄마는 “예쁘지 우리 딸.” 하신다.
- 하루에도 몇 번씩 바람이며 기온이며 구름이며 체감 온도까지 셀 수 없이 변한다. 그 모든 변화가 지구상 많은 이에게 대수 없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 어느 순간 멍하니 멈춰서 이 모든 것이 신기해서 재미있고 경이롭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 나는 그것을 알려주고 싶다. 지금 네가 느끼는 이 모든 게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너무나 복잡한 유기체의 선물들이며 기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동화같이 다정하게.
- 숱한 삶 중에 나도 오늘 하루가 처음인 것을. 한 번 밖에 없는 귀중한 우리의 하루를 망쳐버리지 않게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6개월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매일 쓰다듬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먼저 아이의 입장에서 말하려고 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운다.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사람 하나를 길러 내기로 작정한 것이니 어찌 편할 수 있을까.
- 하지만 나를 살피고 나를 먹이고 나를 응원하고 나를 재우는 일도 중요한 데 엄마 역할이 아닌 자신을 돌보는 삶을 띄엄띄엄 살았다는 사실을 ‘캔디는 잘 자라고 있으니까’란 생각으로 덮어두진 않았나 싶다.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는 일이나 보드라운 거품을 만들어 목욕을 시키는 일은 절대 빼둘 수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줄이자면 내 끼니를 포장된 샐러드 따위로 대충 넘기는 것이 가장 낫다. 그럼 식사를 만드는 일도 차려 먹는 일도 설거지를 하는 일도 줄어든다. 기분이나 말을 살피는 것 또한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어떤 표정으로 말을 하는지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 되었다.
- 옷가지가 얇아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참 좋다. 어찌 되었건 가볍고 나풀리는 옷은 몸의 움직임을 진실하게 나타낸다. 조금 더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에 가까워지면 한낮에 찬 음료가 더 자연스럽고 아이에게 건네는 아이스크림에 서린 걱정도 조금 덜하다. 저녁이 되면 시원한 밤공기가 상쾌하게 해주니, 봄과 여름 사이의 이 시간이 무척이나 귀하다.
- 마음에는 늘 여러 감정과 선택의 순간이 있지만 하루가 마감되는 그 찰나 오늘의 내가 옳은 사랑을 실천했음을 감사한다. 오늘도 소중한 역사를 남겼고 작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나간다. 작년 가을에 그렇게도 우울하던 마음이, 슬프기만 했던 마음이 올해 가을에는 행복으로 많이 채워졌고 시간이 약이 아니라 시간을 약으로 만드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이를 낳고 그 존재가 점점 내 살같이 귀해져 어떻게든 이 감정과 사랑을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했다.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모두 다 다르게 표현할 이 기분을, 우리의 감정을 내 방식으로 기록해두어야 했다. 나는 우리 이야기를 캔디가 언젠가 읽기를 바란다. 미치도록 사랑하고 귀한 네가 우리에게 와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이 기분이 무엇인지 찬찬히 읽어볼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가. 사랑한다.
- 내게 주어진 시간의 끝에 뭐가 남을지 앞으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엄마로서 내 모습을 사랑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매일 생각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마음으로 울었다가 웃었다가 감정이 휘몰아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춘기가 그 시기에 당연하듯 20대의 고뇌가 당연하듯 인생에는 제철에 맞는 고민이 늘 있다는 것이다.
- 밤빛에는 별을 보고 낮 빛에는 걷는다. 함께인 시간이 커가면서 줄겠지만, 줄 수 있는 한 우리의 시간을 많이 준다. 마음에 햇빛 자리가 시시각각 다르겠지만 잘 드리우는 때를 기억해, 속 깊은 곳 어둠이 몰려와 괴물이 올까 무서울 땐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 찾아 안식할 수 있기를, 네 유년기가 반드시 행복하기를 내 인생 최대의 진심을 걸고 바란다.
- 서로를 발견해서 같이하기로 한 시간이 9년이 되었다. 우리 사이에는 귀여운 딸이 생겼고 불같은 사랑이 번졌다. 너무 뜨거워 어쩔 줄 모르던 시간이 가고 활활 타는 벽난로처럼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배워간다. 아직 데기도 하지만 평생 온도를, 거리를 맞춰간다. 꺼질 즘 다시 장작을 넣고 또 꺼질 즘 장작을 넣는다. 캔디가 우리의 딸인 시간에는 아이가 데지 않을 만큼 최대한 뜨끈하게, 언젠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조부모가 된다면 놀다 들어온 꼬마가 몸을 찬찬히 녹일 수 있을 만큼, 불이 꺼지지 않게 둔다. 불씨는 남겨 두되 너무 뜨겁지 않게. 언제고 장작을 넣으면 또 타오를 만큼.
- 끊임없이 양면의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식에게 ‘너 낳아도 되겠니?’라고 물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너에게 좋은 어른이었니?’라고 물을 시간은 온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인생 가장 큰 평가를 위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선택했고 내 선택을 존중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네 살의 나를 본다. 세 살일 땐 세 살의 나를 봤다. 동시에 어렸을 부모님의 모습도 보인다. 그 모든 것을 발판 삼는다. 어른이 되기 싫다고 하는 네 살 딸을 온 마음을 다해 안아준다.
- 아기 등이 조그마하다. 네 살인데 내 한 뼘만 하다. 키는 큰데 마른 체형이라 동그마니 앉아 있으면 머리나 등이나 그 너비가 같다. 내가 안고 자는 데 위에서 보면 이마, 코끝, 볼이 동그랗다. 하얗고 보드랍다. 이마에 송송한 아기 털이 아직도 너무 아기임을 말해준다. 눈썹도 쓸어주고 머리도 쓸어주면 아기는 웃는다. 눈을 초승달로 하고선 “엄마 사랑해요.” 하며 웃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