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언제나 그 시대 심상을 반영하고, 그러므로 인지人智는 날로 지혜로워져야 하건만, 실로 인간은 속물인가 보다. 지위가 높을수록 임기 후에 줄줄이 감방행이 아니면, 자식들이 대신 설쳐 산송장에 다름 아닌 역대 권좌의 주인공들, 심지어 동심이 뛰놀던 고향 뒷동산 바위에서 자살로 치부를 숨기는가 하면, 수많은 중신들을 대동해 가며 기내에서 읽겠다고 [목민심서]를 챙겨 갔다는 전직 대통령은 그 귀한 인물들 다 죽이고 혼자 살아 와 이제까지 미련을 떠는 흉물, 그야말로 귀태鬼胎가 아닌가 ! 다산 선생이 통촉하실까? 안쓰럽다. _‘제1편 현대인의 풍요로운 언어생활’에서
중국 5천 년 문학사는 매 왕조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가 있어서, 동양 문학의 기저라 할 시문학은 [시경詩經] 이래 당唐나라, 특히 성당 때가 백가쟁명하던 절정기였고, 이 성당 시문학의 마루에 이백과 두보가 있었으니, 장히 라이벌 중의 라이벌이었다. 11년을 사이한 동시대에 동일 장르로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통칭되기까지 그들의 선의의 경쟁 관계, 그 아름다운 라이벌로 교유해 온 자기 성찰의 미학을 가늠해 볼 일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744년 이백의 나이 44세, 두보 33세 때니, 이백은 시도의 난숙기요, 두보는 막 개화의 오르막 때였다.
두보는 이백을 따라 산서山西와 하남何南 사이에 있는 도가道家의 성지 왕옥산王屋山에 올랐다가, 변새시인 고적高適(678?747)을 만나 이들 삼대 시인은 시주로 연락燕樂을 갖고 헤어진 후, 가을 다시 이백을 만나러 연주?州로 갔다. 그 당시 두보가 이백에게 보낸 시 ?증이백贈李白?은
秋來相顧尙飄蓬 가을이 왔건만 아직도 떠도는 신세,
未就丹砂愧葛洪 단사를 못 이뤄 갈홍 보기 부끄럽소.
通飮狂歌空度日 술이다 노래로 나날이 건성 보내며
飛揚跋扈爲誰雄 거세게 설침은 누굴 위한 위세런가.
라 했다. 한 평생 떠도는 나그네萬里常作客이면서도 정작 단사丹砂를 달여 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갈홍葛洪이 되지 못함을 한하나, 실은 이백의 풍류에 대한 흠모리라. _‘제4편 고전의 향기’에서
동양 사유의 패러다임은 데카르트Descartes나 뉴턴Newton식 이분법이기보다는 ‘연기론에 의한 생명현상의 전일적全一的 연속성·순환성·관계성’ 하에서 관념해 온, 이른바 일원론적 동일체로 출발한다. 혹자는 ‘유가적 합리주의가 인간의 자연성을 파괴하여 명리에 집착하거나, 국가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인간형을 창출하였다면’ 도가 사상가들은 ‘생명의 내적 질서에 순응하는 자유롭고도 자율적인 지인至人의 인간상을 동경’했다며, ‘생명의 시스템식 활동’과 무관한 듯 피력하고 있으나, 다소 속단일까 싶다. 원전 유학 및 조선 후기 낙론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은 도가의 ‘무위자연’이나, 불가의 ‘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법자연道法自然’, 혹은 ‘동체대비적同體大悲的’ 수양은 물론, 그 덕목을 실천해 왔다. 물론, 장자莊子의 「소요유」나 양주楊朱의 ‘생명주의’ 및 불가의 연기와 동체대비는 서구의 반성적, 혹은 대안적 녹색운동 이전의 생활철학이자 실천덕목이었다. 예컨대, [도덕경]의
“이름과 몸은 어느 것을 더 친히 할 것인가. 몸과 재물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어느 것이 더 나를 병들게 하는가? 그런 까닭에 지나치게 재물에 연연하면 반드시 크게 허비하게 되고, 많이 저장하면 반드시 많이 잃을 것이다. 족한 것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쳐야 할 곳에서)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아 장구할 것이다.”
라는 노자의 일갈一喝은 자못 우리 유가의 잠언으로 ‘지지헌止止軒’이란 재실명에 회자되기도 였으니, 대저 뜬구름과 같은 ‘명리’며, 원성과 증오를 헤아리지 않고 쌓아둔 ‘재화’가 아닌가.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는 욕되지 않다. 억지로 명리를 구하지 않으니 비굴할 까닭이 없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니 앗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원망도 공격도 없을 뿐 아니라, 언제나 마음은 편안하다. 저 서구의 근대화 이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자연환경은 물론, 다른 생명체에 행사해 온 온갖 폭력, 필요에 따라선 조건 없는 희생을 강요하며, 저들의 탐욕 충족에 혈안이 되어 무분별한 살생·환경오염 및 파괴는 물론, 끝내 자원 고갈의 현실을 초래한 것과는 실로 대조적이다. _‘제7편 고전 산책’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