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것같지만 매순간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나자신을 위하여 오늘도 여러 마을과 거리모퉁이에서 살아낸 시간들을 기억키시고싶다.
--- p.150--작가의 말 중에서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보면, 상둣도가 마당 앞에 울긋불긋한 단청에다 희고 붉은 띠와 깃발과 색실이 주렁주렁 늘어진 상여가 놓여 있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죽어서 알 수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간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상여를 꾸미는 사람은 언제나 삼봉이 아저씨다. 그는 아이들 말대로 한쪽 눈이 없는 깨꾸였는데 손재주가 비상해서 작은 장도칼 하나면 온 세상의 물건들을 무엇이나 깎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77
'모랫말 아이들'은 젊었을 적에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해주려는 마음으로 썼던 것들이다. 사실은 더 쓰고 싶은 얘깃거리가 많건만 여러 가지 일에 쫓기다 보니 그만 중도에 그쳐버리고 말았다. 내 아이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 제 식구들 거느리게 되었지마는.
--- p.149
마을 사람들의 질책이 이 불쌍한 부부에게 쏟아지고, 아이들이 움막 주변 갈대밭에 피운 불에 흥분한 꼼배 부인이 불길 속에 뛰어들어가 뒹굴다가 목숨을 잃는다. “야 이놈들아, 느이만 사람이냐, 느이만 사람이야?” 울부짖던 꼼배는 움막 앞 샛강에 혼자 힘으로 다리를 놓고는 자취를 감춘다. ---소외되어야하는 설움이 눈에 보이기때문에
--- 본문 중에서
나는 아이들과 차츰 친해져서 비행장 근처로 메를 캐러 갔고, 고사떡을 얻어 먹으러 다녔으며, 밭고랑에 뒹굴로 있는 제웅의 속을 빼먹는 짓도 알게 되었다. 태금이는 나를 데리고 신기한 곳만 찾아다녔다. 굿거리 구경을 가서 나는 태금이의 무릎에 앉아 무당이 작두 위에서 춤추는 것도 보았다. 시장에 가면 진창 위에 서서 소라나 우묵을 사먹었고 원숭이를 놀리는 약장수도 구경했다.
"너는 똑 꾀주머니여 히힛"
어머니가 돌아오면 시치미를 떼는 내 모양을 보고 태금이는 속삭이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태금이의 펑퍼짐한 등이나 투실투실한 넓적 다리께를 쥐어질렀다.
"아이구... 왜 쌔리냐, 왜 쌔려"
킥킥 웃으면서 그네가 내 코를 쥐어 비틀었고 나는 그게 더욱 재미가 나서 태금이를 때려주곤 했다.
오줌밥이 끼어서 내 고추가 퉁퉁 불었던 적이 있었는데 태금이는 나를 함지에 세워놓고 씻어 주었다.
---p.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