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집에 가면 비록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디선가 나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그 집에서 어느 날 흘러 나오는 음악 때문에 기정사실로 여겨지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의 웬 더 리브 브레이크스가 문밖으로 흘러나왔을 때 분명히 그랬다. 전주는 역시 둔중한 드럼 소리다. 거기에 맹렬한 하모니카 소리가 이어진다. 무려 1분 10초가 지나도록 두 악기만 조응하다가 기타 소리가 합류하면서 로버트 플랜트의 울부짖음이 시작되는 그 곡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대문 밖으로 아득하게 들려오는 그 곡을 더 잘 들으려 문 틈서리에 귀를 댄 채 서 있던 나를, 나는 또 다른 내가 그 모습을 등 뒤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집 앞」중에서
- 창문 밖에 사나운 바람이 불어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흔들린다. 언제든 전등을 꺼버릴 바람, 그러나 바람이 잦아들면 언제 그 랬느냐는 듯 전등은 전선을 수직으로 세우고 방 안에서 빛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밥 딜런의 노랫소리는 바람의 변주곡이다. 공연 때마다 자신의 노래를 달리 부르는 까닭은 바람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그의 노랫소리는 빛과 어둠 사이를 넘나드는 바람이지만, 이 세상에 바람을 직접 그려내고, 거기에 색깔까지 입힐 화가가 어디 있겠는가. 바람 속에서 검은 레코드가 돌아가고, 트랙에는 피가 고여 있을지 모른다.
---「바람의 목소리로 세상을 변주하다_ 밥 딜런」중에서
- 87년 자서전 ‘And a voice to sing with’를 출판하고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를 여행했다. 또한 카네기 홀에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반대하는 자선콘서트를 열었다. 이처럼 성실하고도 투철하게 현실 문제에 관여하여 몸으로 행동하고 저항한 뮤지션이 조안 바에즈 말고 또 있을까. 반전, 군비축소, 인종차별 반대, 환경보호, 빈곤과 기아로부터의 탈출, 인권……. 이렇듯 전선을 확대하면서 그녀는 말뿐인 지성이 아니라, 실천하는 감성으로 불의와 싸웠다.
---「천사는 아직도 지상에서 노래한다_ 조안 바에즈」중에서
- 흐느낌은 비통을 관통한다. 흐느낌은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지배하는 슬픔이고, 발버둥 쳐 벗어나려 해도 제자리를 맴돌 뿐인 몹쓸 운명이다. 그녀의 노래 어디를 들어도 흐느끼고 있는데, 어디를 가도 집요하게 길을 막아버리는 거울 때문이었다.
---「거울, 겨울_ 제니스 조플린」중에서
- ‘Riders On The Storm’의 종결부는 불협화음이 극치에 달한다. 감정을 고조시켜야 할 부분에서 느닷없이 무성 영화관 분위기를 풍기는 짐 모리슨의 굵고 나직한 읊조림은 섬뜩한 종말감을 풍겨온다. 그래선지 이 노래는 왠지 파도가 가까이에서 세차게 몰려오는 느낌이라기보다 아주 먼 수평선 쪽에서 검은 구름이 느리게 이동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끝내 문학에 이르지 못한 방랑자_ 짐 모리슨」중에서
- 조지가 갈구한 인간애와 평화를 위해서라면 힌두교와 불교를 변별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오쇼 라즈니쉬는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를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심지어 조지의 솔로 앨범 ‘All Thing Must Pass’의 수록곡 ‘My sweet lord’에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할렐루야’와 ‘크리슈나’를 함께 찬양한다. 인도는 조지에게, 어디에도 국경이 없는 드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조지 해리슨_ What Is Life」중에서
- 닐 영의 설탕산은 들으면 소설가 하성란이 쓴 '웨하스'란 소설이 떠오른다. 바삭바삭하고 달콤하며 틈새에 바르는 잼에 따라 여러 가지 맛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웨하스. 가지런히 정렬된 웨하스는 속포장지가 찢기는 순간부터 부스러기를 날리기 시작한다. 부스러지며 사라지는 시간을 상징하는 웨하스는, 흘러가버린 과거인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고, 현재라 명명하는 순간 과거가 되어버리는 소멸의 시간, 텅 빈 실체인 것이다.
---「닐 영_ Sugar Mountain」중에서
- 1988년 탈주범 지강헌도 신청곡을 건넸다.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가 문득 듣고 싶은 곡이 있다면서 쪽지를 경찰에게 전달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은 데이비드 구달처럼 애청곡을 들으면서 죽고 싶었던 것일까. 권총을 인질과 자기 머리에 겨누며 날뛰는 지강헌을 진정시키느라 경찰은 부랴부랴 야외전축을 빌려왔을 것이다. 지강헌과 경찰이 대치한 현장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비지스의 홀리데이 말고도 70년대 하드록 밴드 나자레쓰(Nazareth)의 곡도 포함됐다고 한다. 제목은 Please Don't Judas Me.
---「나자레쓰_ Please Don't Judas Me」중에서
- 신촌의 록카페 마운틴에서 가게 문을 닫고 밤새 록을 들었다. 역시 지미 헨드릭스야. 새벽에 지미의 음악을 듣고서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지미가 연주하는 와일드 씽(Wild Thing)을 들으니, 그 이전까지 들었던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 블라인드 페이스의 음악들이 순식간에 무효가 돼버린다. 지미의 발아래서 울려오는 노이즈가 진공청소기처럼 그들의 음악을 쓸어버렸다.
---「지미 헨드릭스_ All Along the Watchtower」중에서
- 겨울이 닥쳐와 가난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겠지만, 낡은 히터를 고치고 담요를 둘러쓰면 걱정 없다고 노래하는 제니스 이안의 달관이야말로 내 마음을 금세 따뜻하게 덮어 주는 난방장치다. 음악이란, 그리고 문학이란 가난할지언정 결코 비루하지 않아야 한다.
---「제니스 이안_ In The Winter」중에서
- 묘역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폴 매카트니란 전설적 인물은 지금도 살아서 묘역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도 묘역을 돌다가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링고 스타가 살아있으니까 나는 비틀스가 반만 살아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폴 매카트니_ Eleanor Rigby」중에서
- 어쩌면 우리의 삶도 저 아메리카 흑인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이 실패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 어머니를 잃은 고아와 같은 상실감에 편히 잠들 수 없는 밤에는 말이다. 마할리아 잭슨의 절묘한 가성과 허밍은 그처럼 원초적인 체념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위로하는 소리다. 나를 높여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것.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스펠이 바로 그녀가 부른 블루스 가스펠이다. 마할리아 잭슨은 동정녀 마리아처럼 노래 부른다. 마할리아 잭슨은 관세음보살처럼 노래 부른다. 마할리아 잭슨은 삼신할미처럼 노래 부른다.
---「마할리아 잭스_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중에서
- 사람들은 왜 푸른색을 보고 우울을 이야기할까? 어느 해 나는 남해의 바닷가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뜨자 붉은색이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지만, 내가 넋을 놓고 바라본 풍경은 일출 이전의 검푸른 하늘이었다. 그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든 내 눈엔 슬픔이 산란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바닷가 절벽 위에는 오래된 절이 있었다. 아마도 그 절 주지 스님과 전날 밤 주고받은 법담 가운데, 삶의 본질은 슬픔이라는 말을 들은 데서 파생한 감정인지 모른다.
---「조니 미첼_ Blue」중에서
- 길음동 산동네 집에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면 서울 하늘에 별들이 총총했다. 별들이 멀리서 보내오는 주파수를 별표전축은 수신했다. 스피커는 별의 입술이었다.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든 밤에도 나는 레코드점이 많았던 청계천을 거닐 듯 별들 사이를 여행했다. 눈을 떠보면 신기하게도 카트리지 바늘이 대기상태로 되돌아와 LP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별의 정거장에 서 있는 고독한 여행자가 떠올랐다.
---「별의 정거장」중에서
- 나는 누구일까. 어리석게도 별처럼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지 아닐까. 나를 들여다본다. 내 삶의 풍경화에서는 아주 미미한 흔적으로만 뜨거움과 고독이 어른거린다. 나는 일찍이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지만 철저히 전념하지 못했고, 범속함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에 생활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어떤 삶에도 편입하지 못한 원초적 방랑자에게 결혼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가장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수면제나 진통제를 꺼내는 대신 신새벽에 이 글을 쓴다.
---「별의 정거장」중에서
-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세상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지만, 행복은 어디서든 깜깜무소식이니 말이다. “형, 우리에겐 황금기가 없었던 걸까요? 70년대 록의 황금기처럼 말예요” “왜 없었겠냐……”나는 사촌이 무얼 얘기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듣고 싶었다. “바로 그 록을 들었던 때가 우리들의 황금기지.” 사촌과 나는 탁자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괸, 똑같은 자세로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들의 황금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