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은 가장 먼저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졌고, 이후 20~30년에 걸쳐 경제적 통합이 추진되었으며, 끝으로 사회적 차원의 통합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머릿속의 장벽’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독일 사회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통합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통일은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인에게 하나의 중요한 모델이 되어왔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된 지 이미 30년이 넘었지만, 독일통일과 관련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일부 오해가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독일 내에서도 통일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점들은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미래 설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 p.11, 「머리말」중에서
이 우파운동의 대변자, 지지자, 참여자는 동독 중산층과 시민사회의 취약점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그들의 강점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더욱 자신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세력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사람들이 동독에서 더 많이 이탈할수록, 이들이 동독의 선거구와 지자체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무게는 더 커진다. 이는 더 나아가 우파의 득세를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탈출’하도록 종용하는 마지막 계기가 되며,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 p.27, 「1장 독일통일 30년과 남아 있는 문제들」중에서
동독지역의 체제 수용성이 낮고 동독 주민 사이에서 ‘2등 계급’이라는 감정이 확산했다는 것은 새로이 발견된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한 논의도 이미 10년 전에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굳어져 확장됐다는 점이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관찰된 불만족감과 박탈감에 새로운 불을 지핀 것은 무엇보다 독일대안당의 부상이었다.
--- p.36, 「2장 결속보다 분열?」중에서
독일통일을 추동한 내적 동력은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민주정치와 가장 부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서독과의 통합을 통해 정치적·경제적 체제전환을 단기간에 이루어내고 그 혜택을 즉시 누릴 수 있으리라는 동독 주민들의 환상에 있었다. 그러나 동독 주민들이 환상에서 깨어나 환멸을 경험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독 체제를 단기간에 동독지역에 이식한 체제전환 방식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아 동독 주민들의 삶을 한순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 p.36, 「3장 사라지지 않은 ‘머릿속의 장벽’」중에서
동·서독 통합을 어렵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동독 출신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다. 경제적·구조적 불평등 못지않게 사회·문화적 지위와 위신의 차별과 불평등은 통합의 걸림돌이 되었다. 먼저 통일독일의 지도적 지위에 동독 출신 인물들은 현격히 부족했다. …… 독일 대기업 500개 중 서독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이 478개에 달하고, 나머지 22개만 동독지역에 있다. 또 현재 독일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이 16명인데, 56%에 달하는 여성 중 동독 출신은 한 명뿐이다. 동독 출신 여성 이네스 헤르텔(Ines Ha?rtel)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된 것도 2020년 7월이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 p.73, 「4장 동독인의 관점에서 본 독일통일」중에서
2019년 9월에 치른 주 의회 선거에서 좌파당의 득표율이 눈에 띄게 추락했다는 점이다. 이는 2017년 연방하원 선거에서 좌파당이 브란덴부르크주에서 얻은 지지율 17.2%보다도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이전 선거에 비해 8% 정도 낮은 득표율을 보인 좌파당과 달리 새로 등장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은 무려 23.5%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다.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변화하는 구동독지역 정치 지형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p.98~99, 「5장 구동독지역 정치 지형의 변화」중에서
독일과 달리 한반도는 이 적대관계를 극복하는 것이 향후 통일을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 서독은 인구와 면적에서 동독을 압도했고, 동독이 서독의 연방제 체제로 편입됨으로써 통일에 이를 수 있었다. 반면에 남·북한의 물리적 조건은 경제적·군사적 조건을 감안할 때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압도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독일통일의 과정과 경험을 그대로 한반도 통일의 모델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 있다.
--- p.118, 「6장 독일통일의 경험과 한국의 통일전략」중에서
연방정부의 구채무 정책은 서독 은행들에 엄청난 특혜를 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 후 동·서독 내부의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정책은 서독 납세자들에게 ‘구채무’와 신탁청의 채무를 통일에 따른 실제 채무로 주장하도록 했고, 납세자들을 상속부채상환기금 상환에 동원함으로써 사실상 ‘통일 비용’을 부풀렸다. 반면에 동독 주민은 신탁청의 사유화 정책으로 생존 기반을 상실했다. 동독에 경쟁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서독 기업들이 동독 기업을 인수한 다음 바로 폐업해 일자리를 없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 p.157~158, 「7장 사회주의 경제 청산과 통화통합」중에서
신연방주의 생활수준이 꾸준히 향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연방주와 구연방주 사이의 격차가 지속되는 이유로 먼저 임금 격차를 꼽을 수 있다. 한스-뵈클러재단(Hans-Bo?ckler Stiftung)의 조사에 따르면 통일 30년이 지났어도 신연방주 노동자들은 구연방주 노동자들에 비해 평균 거의 17%나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이 임금격차는 단시일 내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이후 신연방주와 구연방주의 임금 인상이 거의 나란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임금격차가 오히려 약간 확대되었다가 다시 접근하고 있다. 반면에 노동시간은 신연방주가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 p.197, 「8장 통일독일의 경제통합 전략」중에서
동독 주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만족도는 통일 당시에 비해 크게 높아졌으며, 서독 주민들과의 격차도 좁혀졌다. 경제 상황의 개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많다. 그러나 통일과 관련된 기대 충족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늘어났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동독 주민들 중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는 응답이 3분의 2에 달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경제통합의 미진함과 더불어 전환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인정의 부족, 동독지역에서조차 고위직 진출이 소수에 머물고 있다는 ‘제대로 대변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상실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p.210, 「9장 동·서독의 경제통합과 수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