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출판사인 QA International과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
1. 어느 나라에 이 사전이 출간되었나?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우크라이나, 영국, 미국,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에스토니아, 브라질, 멕시코, 노르웨이, 에스파냐,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크 공화국,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푸에르토리코, 러시아, 슬로바키아, 우르과이, 베네수엘라 등 이미 출간된 나라 25개국을 포함하여 총 46개국에서 출간을 마치거나 출간될 예정이다.
2. 캐나다와 책이 출간된 다른 나라의 시장 반응은?
퀘벡의 경우, 그림사전은 베스트셀러다. 책이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으며, 출간된 모든 버전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그림사전은 8백만 부 이상이 지난 20년간 팔렸다.
3. 이 독특한 프로젝트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림사전은 전통적 사전과 백과사전이 가지고 있는 큰 결함을 보충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물에 대해 모습이 어떠한지 정확히 묘사하거나 우리가 읽고 듣는 단어에 대해서도 그 그림을 떠올리기 힘들 때가 많다. 그림사전은 그런 부분을 메꾸어줄 수 있다.
이 사전은 우선 자세한 차례와 주제, 부주제 별로 구분된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아무리 어렴풋한 개념이라도 그 대상의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다른 모든 사전들이 내용을 알려면 우선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에 반해 그림사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세세한 찾아보기는 어떤 단어가 무엇에 해당하며 그 정확성을 확인하도록 그림을 보면서 파악하게 해준다.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특징과 구조에 입각해서 대량의 정보를 가져다 주면서 단어에 시각적 정의를 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림사전은 개인적이거나 전문적인 여러 가지 이유( 모르는 단어 찾기, 단어의 의미 확인하기, 번역, 광고, 언어교육, 교육자료등)로 명확하고 확실한 용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들을 정리하여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현대 세계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모든 용어들을 한 타이틀로 묶어낼 수 있었다.
1986년 초판이 나온 이래로 그림사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가지 가치의 진보를 인식하여 수차례 교정되고 살이 덧붙여져 왔다.
4. 사전의 장점은 무엇인가?
그림사전은 이미지와의 완벽한 결합을 통한 용어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를 설명하고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그림사전의 약 6,000컷의 이미지들의 장점은 이 타이틀의 가장 큰 장점들 중 하나이다.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대상, 과정 이나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중요한 구성 디테일들을 명확하게 해준다.
전문용어 그룹 별로 섬세하게 구별되어 있는 32,000개 이상의 단어들을 모두 그림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그림들은 관련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정확하고 엄중한 용어들은 다양한 대상들을 명명할 뿐만 아니라 같은 주제로 분류된 다른 대상들과 더불어 각 부분과 구성요소들까지도 그 정체를 알게 해준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림사전은 세 가지 목적을 겨냥하고 있다. 이해하기 위해 보기, 알기 위해 보기, 그리고 표현하기 위해 보기.
5. 세밀화를 구현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변은?
우리의 숙련된 일러스트레이터 팀은 자료전문가들에 의해 모인 다양한 시각 자료를 비롯하여 최고의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 사진보다는 그림을 사용함으로써 객체와 과정의 주요한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작품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어떤 특정의 방식이나 색깔 혹은 디자인에 종속되지 않는 그림들을 착상하게 된 것이다.
● 나는 어떻게 『세계만물그림사전』을 기획하였는가 ―기획자 노트
1. 결정
사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둘러보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책제목을 발견한다. The Macmillan Visual Dictionary : Multilingual Edition. 비주얼 사전에 다국어라? 도대체 어떤 사전일까? 비주얼이니 그림이 들어가 있을 터이고, 물론 이런 사전은 이미 접해본 적이 있다. 호기심을 끄는 것은 다국어라는 말이었다. 하나의 그림과 그것을 지칭하는 여러 나라 언어라. 재미있겠는 걸. 적지 않은 가격이지만 클릭해 주문을 넣는다. 책이 도착했다. 그림이 참으로 훌륭했다. 기존의 여러 비주얼 사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DK에서 나온 비슷한 사전도 보았지만 그것은 사진이었지 이런 섬세한 그림은 아니었다.
감탄한 나는 이 책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간다. 혹시 한국어판을 낼 수 없을까 해서. 하지만 온갖 용어들을 번역할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번역해 온 것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데 드는 품, 제작비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 나는 결국 그 책을 자신이 기획일에 참여하는 출판사에 들고 간다. 그곳 대표 역시 처음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에이전시를 통해 그 책의 개정판이 실린 팸플릿을 보고서 결정을 내린다. 결정의 변은 다음과 같다. “남들은 그림까지 그려 만든 건데, 번역조차 못하면 되겠는가.” 그렇게 그림사전의 대장정은 시작된다.
2. 계약
2003년 캐나다 출판사 측과 계약을 한다. 궁리출판사에서 원고를 보내면 그쪽에서 최종 파일을 만들어 싱가포르에서 책을 완성하는 공동제작 형식이다. 처음 궁리출판사 측에서는 3,000부를 제작하기를 원했지만 캐나다 쪽에서 5,000부를 찍으라고 권유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3,000부를 찍기를 원해 그렇게 해 주었는데 이내 2,000부를 더 찍었다며 말이다. 그 결과 제작비용만 늘어났으니, 한국어판은 처음부터 5,000부를 찍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2억 3천만 명이 넘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 아닌가!) 아무튼 한국의 출판사 역시 5,000부를 제작해 들여오기로 했다.
3. 진행
자 이제 이렇게 많은 단어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우선 분야별로 나누어서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기로 했다. 나는 그 전에 한국어로 출간된 분야별 사전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미 좋은 사전들이 나와 있다면 그 분야는 그 사전에 근거해서 항목을 번역하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예상은 했지만 한국어로 된 분야별 사전은 종류도 내용도 빈약했다. 사진 분야 같은 경우는 사전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사전마다 용어가 다 달랐다. 같은 항목인데도 통일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단 몇몇 분야 (의학, 미술, 스포츠 일부)를 제외하고 일단 전문가들에게 1차 번역을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을 찾고 그분들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간혹 들어온 번역어들 때문에 난감해진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개구리의 몸 부분과 관련해 들어온 번역 원고 중에는 전지, 후지 같은 말도 있었다. 전지?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건 가지치기할 때 쓰는 말 아닌가? 개구리랑 무슨 상관? 다시 한번 살펴보고야 그것들이 앞다리, 뒷다리를 뜻하는 말인 것을 알았다. 한자어였던 것이다. 굳이 연원을 따지자면 일본식 용어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서 사용되고 있었다. (에피소드 하나, 패션 분야는 번역을 맡은 자신의 주전공 분야가 아닌 부분을 사람이 주위의 여러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영어를,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은 프랑스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떻게 쓰냐고 물었더니 현장에서는 일본어를 쓴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때 그 낭패감에 대해 나에게 여러 번 호소했다)
문제는 생경한 한자식 용어만이 아니었다. 과학, 기술, 기계, 스포츠 쪽 용어는 외래어를 그대로 발음나는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론 이 사전의 일어판은 영어식 외래어를 가타가나로 전사한 것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한국어판도 그렇게 하기는 꺼려졌다. 되도록 외래어나 한자어 대신 우리말을 쓰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의학 분야는 한글화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실제로는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쓰지만...) 아무튼 외부에 번역을 맡기고 결과물을 받고 검토해 용어를 확정하는 일은 매우 번거롭고도 힘든 일이었다.
한 항목에 대한 우리말이 여럿 있을 경우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 쉬운 우리말 용어가 있지만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 영어나 한자어를 주로 쓰는 경우 어떤 단어를 우리말 항목으로 올린 것인가,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분야에 따라 다른 용어를 사용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실제로 외국판본은 영국식 영어판본과 미국식 영어판본이 따로 나와 있다)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정해나가다 보니 시간을 훌쩍 지나고 캐나다 쪽 출판사와 약속했던 기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특히 한글 조판을 하고 일일이 캐나다 쪽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작업은 더더욱 느리게 지나갔다.
사전의 우리말 용어 선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외래어나 한자어가 아닌 쉬운 우리말을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쉽지 않았다. 기계나 패션 분야는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 다반사였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일지라도 사전에 우리말을 올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터이지만, 이 사전이 우리말 순화 용어집의 기능을 떠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외래어나 한자어 우리말을 두고 벌인 고민은 막바지 교정지를 캐나다 측에 보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참고로 의학 용어는 우리말화가 참 잘되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 실제로 의사들은 어려운 영어나 한자어를 그대로 쓰기는 하지만, 아무튼 학회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전문용어들을 쉬운 용어로 바꾸어 놓았고 학생들이 교재에도 그걸 싣는다고 한다. 전문 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데 모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4. 얻은 것
사전에 관심은 많았지만 실제 작업은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비록 번역이긴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QA출판사 측은 3만 개가 넘는 해당 항목 모두에 각 나라별로 숫자를 붙여 데이터 베이스로 관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나라말 판본으로 다국어 사전을 만들더라도 데이터만 활용하면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국내판 발행 출판사에서도 이 그림 사전을 계기로 사전에 관심이 많아졌고, 향후 또 다른 사전 출판을 고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