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이완 유학 시절, 그러니까 3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약 6년간 삶의 고통에, 그것도 배가 고파서 눈물을 제법 흘렸다. 굶어 보지 않으면 배고픔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인지 알 수 없다. 삶이 고통스러워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동의한다.
--- p.40
그래서 내가 바로 순식간에 오른손으로 급소인 그의 목울대를 꽉 거머쥐고선 “니샹부샹후어?(?想不想活, 너 뒈질래 살래?)”라고 저음의 단호한 어투로 외쳤다. 차 안은 순식간에 살벌한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차장은 놔달라며 켁켁거렸다. 나는 계속 욕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차장이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치앤먼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도 이 차장은 못 간다고 했다.
--- p.69
그때는 이 같은 비리가 비일비재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아마 지금도 여전할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든, 회사 경영진이든, 언론인이든 하나같이 인간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의 본질적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노동자가 죽고 여러 사람이 크게 다친 사고를 자판기에서 일회용 커피를 빼먹고 버리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무원의 관료주의, 보신주의, 편의주의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생명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으니 정의감이나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이 생겨날 리 없는 것이다.
--- p.87
나의 목적은 분명했다. 명시적으로는 연구원장에게 자신의 비리를 인정하게 만들고 연구원들의 연구 편의를 봐주도록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도덕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자신의 무능함을 자각하도록 함으로써 연임 시도를 스스로 포기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 p.107
불교는 나에게 종교나 철학에 그치지 않았다. 삼베옷을 입고 안갯속을 지나가면 자연스레 안개가 옷에 스며들듯이 불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몸이 아플 때도 그것은 내가 부주의했거나 상황이 여의치 못해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증이나 불편함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런 연유로 나는 매 순간 자족감을 갖고 살아가는 편이다. 심지어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도 추상적 법구(法句)로 이해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마주할지 모르지만 죽음을 두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 p.132
철두철미하게 의심하고 끊임없이 사유하라. 실천과 행동은 그다음 일이다. 더욱이 변증법적 수정은 실천 후의 과제다.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리 행동과 실천을 가열차게 한다 하더라도 사안의 맥을 잘못 짚고 좌표를 잘못 찍으면 그런 열정은 오히려 또 다른 문제만 만들어낼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본질을 깊이 생각하고 사색하는 인간형이 돼야 할 소이연이다. 생각이 깊을수록 사회도 중후해지고 정치인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가 견실해진다.
--- p.165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지. 기쁨, 슬픔, 고통, 성냄, 화남, 분노, 가난, 고생, 부귀, 영화, 권력, 지위, 명예 등과 같은 현상도 영속적으로 존재하거나 지속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물질적 혹은 정신적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가 그 조건이 해소되면 사라지잖아. 인과 연이라는 조건의 결합으로 잠시 상(相)을 이루는 건데, 각각의 상은 모두 각기 다른 조건에 의해 존재하다가 사라져. 이를 연기하는 거라고 해.
--- p.167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왕은 ‘무조건 항복’은커녕 ‘항복한다’라는 말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항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다. 히로히토가 공표한 담화문의 정식 명칭은 ‘종전 조서’였다. 그것은 미국, 영국 등의 연합국에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간접적으로 ‘항복’ 의사가 내포돼 있긴 하지만,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담화 형식의 ‘종전 선언’이란 의미가 더 컸다.
--- p.181
우리가 ‘종군 위안부’, ‘정신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도리어 일본의 부녀자 성 유린 범죄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정신대는 ‘나라(일본)를 위해 몸을 바친’ 조직이며, 종군 위안부는 ‘황군을 위안하는 부녀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전적으로 일본을 위해,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다.
--- p.186~187
그런데 법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헌법이 본보기로 삼은 지난 세기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는 실상 양심 조항이 없다. 바이마르 헌법에는 “법관은 독립으로서 다만 법률에 따른다”(제102조)라고만 돼 있을 뿐 ‘양심’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21세기 현재 독일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법 제20조 제3항에도 ‘양심’을 규정해 놓은 조항은 없고, 법관은 “법(헌법)과 법률에 구속된다”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즉 독일의 옛날 법에서나, 현행법에서나 모두 법관의 양심 조항이 없는 것이다.
--- p.229
외치와 내치는 상호 연동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태민안의 지속성과 안정감 있는 내치는 외치에서 힘의 결집과 국민과 국가지도자의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나타난다. 내치가 바르지 않은 외치는 힘을 받을 수 없고, 세계전략의 구사는 내치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다. 시대와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세계전략이라는 마인드로 대외 문제에 접근하고 사고해야 한다.
---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