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뭔가 이상한 게 떠 있으면 절대 안 되고, 색이 흐릿하다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 와인의 외관은 와인의 나이와 스타일을 알려주는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젊고 심플하며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은 빛깔이 매우 연하고, 종종 초록빛을 띠기도 한다. 좀더 진하거나 숙성된 화이트와인은 금빛을 띠고, 스위트한 화이트와인은 대부분 진한 황금색을 띤다. 반대로 레드와인은 숙성될수록 색이 흐려진다. 어린 레드와인은 자줏빛을 띠다가 점차 진홍색, 검붉은색, 황갈색 순으로 변해 간다. 풀보디의 복합적인 와인은 색이 매우 짙어서 와인을 투과해 볼 수 없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글라스 바닥이 보인다면 다소 라이트보디의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에 관한 기초상식」 중에서
보르도는 샤또 라뚜르, 샤또 라피뜨 로쉴드와 같이 전설적인 최상급 와인들로 유명하지만, 사실 대다수 보르도 와인은 지극히 평범한 축에 속한다. 특히 레드와인의 경우가 그러한데, 실제로 날씨가 유난히 서늘한 해에 생산된 값싼 보르도 레드와인은 쓰고 떨떠름한 풋포도 냄새가 풍기는 끔찍한 와인일 확률이 높다. 서늘한 날씨에는 포도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늘하고 음습한 기후에는 포도 재배자들이 포도가 잘 여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가슴 졸이기 일쑤다. 그래도 화이트와인인 보르도 블랑은 레드와인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만약 드라이한 스타일의 와인이 좋다면, 보르도 섹이나 뱅 섹 드 보르도라는 라벨의 화이트와인을 마셔보기를 권한다. 소비뇽 블랑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면 더더욱 좋다. 또한 보르도의 로제와인은 크림과 자두, 산딸기 등 여러 과일의 풍부한 맛과 향을 품고 있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다. --- Chapter 1「보르도」 중에서
만약 잠깐 멈춘 곳이 엑 상 프로방스의 어디쯤이라면, 미식가들을 위한 그 지역 대표 요리들을 한번 먹어보자. 예컨대 팡 바그나는 바게트에 참치, 토마토, 고추, 블랙올리브 등을 채워 넣은 것으로 모든 재료에 올리브 오일과 화이트와인 식초, 디종 머스터드, 마늘 드레싱을 듬뿍 바른 요리다. 이 요리와 함께 샤또 시몬 화이트와인 한 잔을 마셔보자. 샤또 시몬은 인근의 울창한 알레뽀 소나무 숲에 위치한 빨레뜨 아펠라씨옹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하지만 그곳의 레드와 로제 와인에는 현혹되지 말기를. 그 와인들에서는 포도밭 바닥에 흩어져 있는 솔잎의 송진 맛이 나기도 한다. --- Chapter 3「프로방스」 중에서
론의 레드와인은 파워풀하고 향긋하며 과일 맛이 가득한 조화롭고 복합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화이트와인도 입을 가득 채우는 풀보디의 캐릭터를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와인에는 힘차고 강한 요리들을 조화시켜야만 제대로 어울릴 것이다. 아무리 육질의 고기를 주재료로 쓴다 해도 섬세하고 미묘한 질감을 요구하는 요리들은 자칫하면 와인 맛에 압도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요리에서 본다면, 레드와인에는 이른바 ‘텍스 멕스’라고 불리는 텍사스와 멕시칸 스타일이 혼합된 요리들, 즉 비프 캐서롤, 너트 로스트, 속을 채운 피망, 간과 베이컨, 비프 카레, 칠리 콘 카르네(다진 쇠고기와 강낭콩을 넣은 매콤한 스튜), 소시지, 콘비프 해시(절인 쇠고기인 콘비프와 양파, 감자에 육즙 소스를 넣어 볶은 요리), 비프 스트로가노프(쇠고기에 양파, 버섯 등을 넣고 볶다가 크림을 넣어 마무리한 러시아식 쇠고기 볶음 요리), 스파게티 볼로네즈(간 고기와 토마토 소스를 넣은 스파게티), 코티지 파이(다진 고기를 짓이긴 뒤 감자로 싸서 구운 일종의 고기만두) 등이 잘 어울린다. 에르미따주와 꼬뜨 로띠 같은 최고급 와인은 사슴고기, 뿔닭, 제비, 양 사태, 토끼고기 등과 함께 즐기기 위해 아껴두는 게 좋다. 론의 화이트와인인 경우에는 와인의 크리미한 캐릭터가 닭 요리나 송아지 요리에 잘 어울리고, 크랩 비스크(게살을 넣어 만든 진한 크림수프), 꿀 바른 오리고기, 베트남 요리 등과도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 Chapter 4「론 계곡」 중에서
제임스에게 샴페인이 주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일이 쉬울 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가 잘하는 유일한 짓이라곤 부자들을 즐겁게 하는 와인, 1병에 5파운드가 아니라 자그마치 100파운드쯤 되는 가격에 팔리는 와인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가슴을 치면서 여행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와인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사치스러운 친구들인 까닭에 나까지도 호된 공격을 받았다. 그래, 좋다고. 그래도 나는 제임스에게 약간의 호사를 제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로트와일러의 턱 밑을 장난삼아 간질이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그는 확실히 슈퍼마켓 선반 불빛은 전혀 보지 못할 와인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내 사치스러운 친구들의 값비싼 독주를 몇 잔 받아 마시자마자 이 성미 까다로운 계급 투사께선 시인이자 철학자로 돌변했고, 알코올의 기쁨에 싸여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더 많은 사치스러운 와인들을 목구멍에 콸콸 쏟아 부었다. 나는 그를 영영 망쳐놓은 것 같은, 희미하나마 진심 어린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사치스러운 와인 한 통 더요.” 그는 사치스러운 친구들의 환대에 완전히 매혹되어 비틀거리며 침실로 가기 전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그를 위한 장소를 마련했다. 바로 샹파뉴였다. 허위의 고향. 아무리 비싸도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싸게 팔면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곳. 물론 제임스는 샴페인을 혐오했다.
--- Chapter 6「알자스에서 샹파뉴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