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소통은 공동체의 존망을 결정하는 문제다. 정치와 소통이 잘 이뤄지면 공동체는 위기와 갈등을 해결해 나가면서 마침내 점진적인 진보와 번영의 길로 이끌어갈 것이고, 잘 이뤄지지 않으면 함께 파국으로 가는 공멸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지혜를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인류를 위협에 빠트린 전염병,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국민을 통합하는 좋은 정치와 소통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낸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가면서 K-방역과 K-모델을 만드는 등 선진국의 반열에 대한민국을 올려놓았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 p.15, 「들어가며」 중에서
2020년 1월 19일 낮 12시. 중국 우한에 살던 35세 중국인 여성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발 중국 남방항공 CZ6079편을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중국 최대명절인 춘제를 맞아 한국과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입국 당시 동행자는 가족 2명과 친구 가족 3명으로 총 5명이었다. 이 여성은 입국 후 검문 과정에서 38.0℃의 발열과 오한, 근육통, 콧물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검역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출국 하루 전인 1월 18일 증상이 시작되어 우한시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감기약을 처방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인천공항검역소는 즉각 코로나19 의심환자라고 판단했다.
--- p.34, 「최초 확진자 발생」 중에서
우리는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도 배운다. 당시 국회에서 보건복지분야 전문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던 나는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에 대응하는 정부와 보건당국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전염병은 초동 대응에 실패하거나 늑장 대응을 할 경우 더 큰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고 넓게 퍼진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다소 부산스럽더라도 신속하게 움직이는 과잉 대응이 낫다. 투명한 정보공개도 빼놓을 수 없다. 우왕좌왕하다가 불신만 키우고, 그 불신으로 인해 사태가 커진 메르스 대응의 실패는 나에게는 일종의 교훈이었다.
--- p.42, 「보건복지전문 정책보좌관, 대외협력조정관」 중에서
낙인찍기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감염병에 대응하면 오히려 역효과로 이어진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낙인찍기는 낙인찍힌 대상과 잠재적 질병을 부정적으로 연관시켜 그 대상에게 꼬리표를 달고 편견을 갖게 한다. 이로써 신분 상실이나 차별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낙인찍기는 오히려 병을 숨기려 하고, 치료받기를 망설이게 하며 정상적 행동을 피하게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낙인찍기에 대처하려면 ① 사실을 널리 알리고, ② 존경받는 인사를 활용하고, ③ 경험자의 완치 사례를 널리 알리고, ④ 매체보도가 균형 잡혀야 하고, ⑤ 모든 활동이 하나가 되어 모든 이에게 관심과 공감을 보이는 긍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 p.67, 「31번 확진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마라」 중에서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란과 혼란은 일단락됐다. 정부의 마스크 공적조달 등 과잉 대응에 대한 비판과 오해에 의한 허위정보, 가짜뉴스도 있었지만 정부는 꿋꿋하게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로 나아갔다.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서울대학교 75회 후기 학위 수여식에서 전한 메시지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면 ‘나와 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간단한 대답 같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쓴다’라는 사적/이기적 답변이 아니면 ‘남들을 위해서 쓴다’의 공적/이타적 답변밖에는 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마스크의 본질과 그 기능이 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서 쓰는 마스크’라는……”
마스크 한 장이 나와 남, 공과 사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공생의 가치를 보여줬다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메시지는, 인류가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고 진화를 해온 데 결국 연대와 공생의 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음을 일깨운다. 포스트코로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연대와 공생은 중요하다.
--- p. 84~85, 「마스크 한 장의 가치, 마스크 대란과 공적조달」 중에서
66.2퍼센트. 선거 결과는 더 놀라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투표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선거만 잘 치러도 성공했다는 찬사를 들을 선거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전체 유권자 4,399만 4,247명 가운데 2,912만 8,04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선거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과 선관위의 철저한 방역 관리는 물론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한 국민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 p.129~130, 「21대 총선, 재난 속에서도 꽃피운 민주주의」 중에서
“방역과 경제는 반드시 함께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입니다.” 2020년 8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과 정부, 방역 당국은 이 말의 무게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1,4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3,000선 이상으로 회복하면서 수년간 넘보지 못했던 벽마저 깼다. 한국 증시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OECD가 내놓은 경제 성장률과 전망보고서는 한국 경제를 회원국 가운데 1위로 기록했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놓았다. 불과 1년 만의 기록이었다.
방역과 경제는 코로나19 극복의 수레를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였다. 방역 없이 경제 없었고, 경제 없이 민생 없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방역, 경제, 민생 세 개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일선 전방에서 열심히 뛰었다.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선언한 지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은 중앙사고수습본부 직원들의 고생을 위로하기 위해 과일과 떡 등 간식을 보냈다. 대통령 특유의 소통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 p.140,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와 세 개의 전쟁」 중에서
백신 문제는 의학의 영역이자 과학의 영역이다.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백신 그 자체에는 정치 또는 정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백신이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신 공급 문제를 정쟁의 도구화로 이용하는 정치권과 언론을 보며 나는 답답함을 넘어 무서움을 느꼈다. 백신과 K-방역을 둘러싼 정쟁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화이자 백신을 맞으면 괌 여행을 가는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으면 괌 여행을 못 간다는 설, 우리나라가 루마니아에 백신 무상 원조를 구걸했다는 K-방역의 백신 구걸설, 문재인 대통령이 군부대에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노마스크’를 지시해 군인이 생체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설 등등 말도 안 되는 ‘설’들이 모두 시중과 항간의 유언비어가 아닌 보수야당의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 언론에서도 이 ‘설’들을 대서특필했다는 것은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저급한 것이었다.
--- p. 167, 「감염병의 정치화, 방역과 정쟁」 중에서
방역에서 정부 정책의 신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방역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자신의 자산을 투자할 때도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투자하듯이 하물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를 신뢰할 수 없는 기관에 맡기겠는가. 신뢰는 방역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래서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 셋째도 신뢰여야 했다. 신뢰할 수 있는 리더,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나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뢰의 핵심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신뢰의 핵심은 ‘소통’이라고 본다.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팬데믹 상황에서는 작은 오해나 실수가 있어도 엄청 크게 부풀리는 것이 언론이요, 정치권이다.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들이 방역에서 티끌만 한 오해나 실수를 발견하면 그것은 곧 태산만 한 실책으로 바뀐다.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정부의 정책은 신뢰를 잃게 된다. 정부 정책의 신뢰가 무너지면 방역도 무너진다. 작은 구멍 하나로 댐이 무너지듯 방역에서의 작은 구멍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 p. 190~191, 「소통이 희망이다, 여준성처럼 일하라」 중에서
여준성_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인수공통 감염병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보건의료 영역의 문제만도 아닌 듯합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이제 한 지역, 한 영역을 넘어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 인류 모두에게 큰 숙제를 남긴 듯합니다. 코로나19의 경험을 토대로 보건의료를 포함한 사회 전체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정은경_ 감염병 위기는 어떤 종류가, 어떤 형태로 올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 대비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감시, 역학조사, 진단체계, 의료대응체계, 비약물적 조치(거리두기, 개인위생 등) 등 분야별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력과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과 시도, 보건소, 의료기관에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하여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계획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23년 5월에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경험을 토대로 〈신종감염병 대비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각 분야별로 다양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실행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구체적인 세부 실행방안을 만들고, 법 근거와 제도 개선, 예산 투입, 전문인력과 조직을 확충하여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요양병원, 시설에서 밀집된 생활을 하는 고령자, 장기간 격리되어 있는 정신질환자, 많은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열악한 근로·주거환경에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 취약한 근무조건의 돌봄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감염병 대응체계의 개선과 함께 사회 전반에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공동체 연대를 회복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216~217,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에게 듣는다-코로나19, 못 다한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