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가 왜 대가라고 불리는지 몇 년만에야 알게 되었다.
도서2팀 유서영 (berrius@yes24.com)
2014-02-19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를 열심히 읽은 탓인지 혹은 중고등학교 때 여러 나라의 고전 이라 불리는 소설들에 심취해서 인지, 요즘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서구권의 소설들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긴 대하 소설은 물론이고, 그냥 소설 조차도 끝까지 읽는 일이 꽤 어렵다. 이런 나에게 모파상, 오헨리와 같은 작가들의 단편선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면서도, 알려진 작품을 읽고 있다는 자부심도 주고, 줄어드는 페이지수를 확인하며 나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긍지도 주는 고마운 책들이었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읽고 나서 뭐 이런 재미 없는 책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불리는가 하는 의문이 꽤 오래 들었다. 사실 아직도 그렇다. 어쩌면 위대하다 위대하다는 소문만 들은데다가 강의 시간 텍스트로 끙끙대며 원서를 읽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느낌은 아스라한 감정, 뒤틀린 인연, 위대하지 않은 개츠비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었다.
괜찮은 인연들이 흔히 그렇듯 이 단편선 또한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개츠비 보다 훨씬 재미있고 이야기도 꼬여 있지 않아 진도도 빠르면서, 문장은 세련되고 재치있게 꼬아두어 그 솜씨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고 개츠비에서 보여준 작가의 못된 심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텍스트를 텍스트로 읽지 못하고 드라마 주인공에게 빠져들듯 평하는 것이 다소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단편들은 정말 못됐다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작가의 전지전능함을 보란듯이 내뿜는 불쾌함이 있다.
그러나 이 불쾌함은 불한당을 만났을 때와 같은 것이기 보다는, 운명과 자아, 타인과의 관계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사건, 즉, 필연 혹은 우연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모순된 단어들을 모아서 정확한 묘사로 승화시키는 문장의 힘 때문이다.
앞서 불쾌함과 못됨에 대해 썼지마는, 사실 그보다는 유머러스하고 통렬하고, 아스라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출근길에 짬짬이 전자책으로 읽었다. 짧은 시간에 읽혀도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섬세하게 단서를 끼워넣은 흔적들, 피츠제럴드가 왜 대가라고 불리는지 몇 년만에야 알게 되었다. 아전인수 격으로 온갖 자료를 주관에 끼워 맞추는, 도저히 자연스럽지가 못한 글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래도록 읽힐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