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봉은 시설에서 몸무게가 늘어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복지사들은 늘 그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했다. 우리의 키가 자라나고, 우리의 몸무게가 늘어난 것은 모두 자신들이 준 알약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꼬박꼬박 네 알의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받아먹었다. 처음 알약을 받아먹었을 땐, 속이 좋지 않고 시소 위를 걷는 것처럼 어지러웠으나, 지금은 알약을 먹지 않으면 어지럽다. 그래서 시봉과 나는 늘 알약 먹는 시간을 기다렸다. 복지사들이 저벅저벅 알약을 들고 방문 앞에 서면, 뒤꿈치를 들고 달려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었다. 알약은 한 번도 목구멍에 걸리는 법 없이, 감쪽같이 몸 안으로 사라졌다. --- p.9
우리는 매일매일 점심을 먹은 후, 정육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저씨의 죄는 훨씬 더 많을 수 있어요.”
처음 며칠 동안 정육점 주인은 우리를 볼 때마다 인상을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말했다.
“도대체 내가 형님한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사과를 하라는 거야? 응? 어디 말이나 한 번 들어보자.”
그러면 시봉과 나는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얘기해주었다.
“아까 배드민턴공을 높이 띄운 것도 죄가 될 수 있고요.”
“도시락 반찬을 두 번 더 집어먹은 것도 죄가 될 수 있지요.”
“파라솔 의자에 먼저 앉은 것도 죄가 될 수 있고요.”
“캔맥주를 더 빨리 마신 것도 죄가 될 수 있어요.”
“죄는요, 사실 아저씨하곤 아무 상관없는 거거든요.”
“아저씨가 생각하는 거, 모두가 다 죄가 될 수 있어요.”
“그걸 우리가 아저씨 대신 사과해드린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아저씬 좀 쑥스러울 테니깐요.” --- pp.67-68
“할 일 없으면 가던 길이나 마저 가쇼. 내 오늘 저놈의 자식 손모가지를 부러뜨리고 말 테니까.”
아이 엄마는 다시 아이를 향해 쇠 집게를 휘둘렀다. 아이는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쇠 집게를 피했다. 나는 다시 아이 엄마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손모가지가 부러지면 사과를 받아주시겠어요?”
아이 엄마는 잠시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돌려 마땅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가게 밖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던 쇠 파이프를 집어들었다. 나는 그것을 시봉에게 건네주었다. 시봉은 쇠 파이프를 건네받곤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시봉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나는 시봉에게 왼쪽 팔을 내밀었다.
“뭐야, 뭐 하는 거야, 지금?”
아이 엄마가 물었다. 아이도 시봉의 뒤에서 나와 우리를 쳐다보았다. 시봉은 곧장 쇠 파이프로 내 왼쪽 손목을 내리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봉은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다시 한 번 내 왼쪽 손목을 내리쳤다. --- pp.119-120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나겠네?”
“네.”
키가 작은 복지사는 나에게 했던 질문을 시봉에게도 똑같이 했다. 키가 큰 복지사는 시봉이 대답할 때마다,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이 군홧발로 걷어차고 쇠파이프로 내리쳤다. 시봉의 대답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저런, 어쩌냐? 너희들은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키가 작은 복지사는 쓰러진 우리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말했다.
“그럼, 이제 너희들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사과는 딱 한 가지밖에 안 남았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겨우 간신히 물었다.
“그건…… 뭐지요……?”
복지사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시봉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숨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키가 작은 복지사가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야.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사과가 뭐겠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복지사들은 한참 동안, 더 큰 소리로 웃어댔다.
--- pp.18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