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Made in China 2025’로 알려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때 한국이 두려워했던 것은 중국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중국의 무한 물량 공세는 마치 물건을 담아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절대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단지, ‘화수분’과 같았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상당히 위협적이었죠. 만약 중국의 계획대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가 중국 기업에 인수되고, 미국이 화웨이(Huawei)와 하이실리콘(Hi-Silicon)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면,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국제정치의 구도도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 p.9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어떤 영역에서 경쟁하게 될까요? 과거에는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등 특정 산업으로 한정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미래의 주도 산업을 이끌어나갈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비롯한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화폐 패권,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무역 패권, 5G·6G 등의 통신 인프라, 우주 산업, 반도체, 그리고 이를 통해 파생될 제4차 산업에 이르는 전 분야에서의 주도권 경쟁은 필연적입니다.
--- p.35
메모리 반도체 산업 가운데 디램 산업은 이미 과점화를 마쳤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70%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미국의 마이크론과 함께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자국 내에서 생산을 하고 있고,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도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디램과 관련해 제품 개발 및 양산을 추진하는 중국 기업들은 마이크론으로부터의 소송과 미국 정부의 제재로 이어지는 강력한 견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신규 업체들의 진입 장벽도 매우 높습니다.
낸드는 디램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6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의 계열사 YMTC가 추가로 시장에 진입하려 했습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를 등에 업고 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자를 보며 한국 반도체의 어두운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 p.55~56
모든 인프라 투자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지젠 다음 단계는 바로 ‘신비즈니스新商?’입니다. 중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5G, AI, IoT 등 신형 인프라 구축에 힘을 들이는 이유는 제조업 기술 개조와 설비 업그레이드는 물론, 제4차 산업혁명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통신사의 5G 투자 목표는 미국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중국은 2019년 말까지 13만 개 이상의 5G 기지국을 설치했고, 2020년 55만 개 이상의 기지국을 추가로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2025년까지 6억 명 이상, 2022년까지 4억 명 이상의 5G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매우 저렴한 5G 스마트폰을 제조해 공급할 수 있으며, 누구나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는 저렴한 요금제를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p.96~97
미국 입장에서 냉전 시대 시각으로 보면, 중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을 가져서도, 세계적인 파운드리 업체를 가져서도 안 됩니다. 중국은 그저 저렴한 단순 부품만 생산해야 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의 지원을 통해 하이엔드 파운드리가 가능한 TSMC와 삼성전자의 최첨단 공장을 유치하고, 인텔이 과거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TSMC와 삼성전자는 각각 대만과 한국에 대한 신규 투자를 병행하겠지만, 어차피 주요 고객은 북미에 몰려 있습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에 이어 첨단 제조업을 더욱 증가시키려는 중기 전략을 이어갈 것이기에 북미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며, 향후 중국에 EUV 노광장비 반입조차 막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도 있습니다. 중국에 EUV 노광장비를 다룰 기회조차 주지 말자는 방침이 확고해지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EUV 노광장비를 반입하는 것도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 p.224~225
2021년을 강타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 부족은 산업 구조의 변화와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설비 투자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전형적인 수급 불균형입니다. 코로나19와 테슬라가 촉발시킨 전기차와 자율주행 경쟁,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으로의 가속화 및 엣지컴퓨팅 시대의 전환에 따른 변화는 앞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수요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급 부족 해소는 사실상 생산 설비 증설 외에는 불가능하며,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설비 증설은 미국이 투자세액공제를 40%까지 제공하는 2024년까지 미국 위주로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 p.256~257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받고 있을까요? 10년 전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10년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의 서비스 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를 통해 ‘특이점은 미래에 기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뜻한다’고 했고, ‘진화는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기술을 창조했으며, 이제 인간은 점점 발전하는 기술과 합심해 차세대 기술을 창조하고 있다. 특이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과 기술 간의 구별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