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보였다.
내 친한 친구와, 그 친구가 사랑하던 사람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모습이. 언젠가 보았던 광경. 왕관을 쓴 유키랑 선생님이 탄 보트가 멀리 보였다. 호수 수면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_맑은 날의 데이트와 유키 中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라는 게 어디 있지 않을까?”
“나라?”
내가 그 단어를 되풀이했다.
“응. 잃어버린 것들의 별, 이라고 해도 되고, 마을, 이라고 해도 되지만 말이야.”
“잃어버린 것들의…….”
“어, 안 보이네, 어디 갔지? 했던 것들이 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거기로 옮겨져 있는 거야. 거기 가면 틀림없이 내 카메라도, 네 왕관도, 그리고 어쩌면 유키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_키스와 미케, 그리고 바다 中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는 여기를 나갔지. 그때도 두렵지 않았어. 어디론가 가는 건 전혀 무섭지 않았어. 맞아, 처음 그때처럼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그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건 당신이 우는 일이었어. 당신을 슬프게 하는 일. 당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후회를 하는 일. 당신은 너무 슬프면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고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하잖아. 이번처럼 말이야. 나는 그런 모습을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어. 그런 걸 보는 게 더 두려웠어. 그때처럼 지금도 너무 슬픈 거지? 그때 말해주지 못했으니까 지금 말할게. 괜찮아. 다른 곳으로 간다는 건 두려운 일도 슬픈 일도 아니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렇게 다시 만나거나 하는 일도 간혹 있고 말이야.”
잔뜩 부풀어 올랐던 엄마 눈의 물방울이 마치 웃는 것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볼을 타고 내려왔다. 엄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살금살금 주이치로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 머리를 잡고 끌어안았다.
_키스와 미케, 그리고 바다 中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 모두가 사랑인 것은 틀림없다. 또 사랑에는 제각기 크기가 있다. 하지만 크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모조리 잃게 되는 사랑도 있다.
_잃어버린 사랑과 육교 中
이 엄청난 사랑은 나한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예를 들면 쉬는 날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를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그런 행복이라든지, 혹은 친구하고 여자끼리 속닥거리고 깔깔거리면서 지내는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라든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한 따분한 귀향이라든지, 십대 때부터 변하지 않았던 소녀 취향의 옷이라든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계속 좋아했던 펑크 뮤직이라든지. 하지만 내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_잃어버린 사랑과 육교 中
뻗었던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양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떨리는 두 손에 후두둑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방울은 손바닥의 윤곽을 따라 흐르다가 떨어졌다. 여러 가지 광경이 조각조각 잘려서 뒤로 흘러갔다.
시야가 흐려져서 호수처럼 보였던 하늘. 내 등을 쓰다듬는 남편 손길의 감촉. “괜찮아, 괜찮아”라는 조용한 말. 사지는 않고 만지기만 했던 작은 양말. 표시를 해 두었던 이름 몇 가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둔, 와야 했던 날과 영원히 오지 않았던 날.
그랬다. 당신은 오지 않았다. 나에게 오지 않았던 것이다.
_떠나는 안녕과 만나는 안녕 中
미안해, 라는 말을 하려는데,
“자꾸 왜 그래.”
아이가 웃는 얼굴로 가만히 말했다.
“미안할 것 하나도 없다고 했잖아. 우린 조금만 있으면 만나게 되니까. 만나는 날이 아주 조금 연기되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이제 울지 마.”
울지 않을게, 하고 내가 말했다. 말하면서도 두 눈에서 물방울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_떠나는 안녕과 만나는 안녕 中
잊어도 괜찮아, 하고 귓가에서 부드러운 바람처럼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그 목소리의 주인도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주 가깝고, 든든하고, 따뜻한 누군가. 잊어도 괜찮아, 잊어버려도 만나게 되면 또다시 반드시 사랑하게 될 테니까. 아니,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_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中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