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서 오늘날 과학적으로 수용 가능한 측면은 유기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내재적 목적론이다. 초월적 목적론은 중세의 신학에 수용되어, 중세의 목적론은 목적을 신 안에 위치시킨다. 중세 목적론에서 모든 존재는 신의 은총의 산물이므로 그 자체 선할 뿐만 아니라, 신이 부여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전통은 목적론을 비과학적이며, 인간의 의도를 자연에 부과한 의인관으로 취급되게 하였다. 칸트 시대의 근대 형이상학자들도 목적론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신은 인간에게 코르크 마개를 선물하기 위해서 코르크 나무를 창조했다는 방식의 터무니없는 외적 목적론을 주장했다. 칸트는 계몽 철학자로서 미신과 미몽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 아래, 철학에서 중세로부터 근대로 이어지는 공허한 형이상학을 몰아냈다. 물론 칸트는 그 대신 『순수이성비판』의 개념과 원칙들을 내재적 형이상학으로서 도입하며,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시작원리』에서는 이러한 최고 수위의 추상적 개념틀에 물리학의 운동이론들을 연결시키는 형이상학적 작업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도덕 형이상학을 구축한다.
--- p.18
유기체를 자연 목적으로서 사유하기 위해 부분들의 유기적 연관을 가능케 하는 전체로서의 목적이 불가결하다면, 우리는 마치 직관적 오성이 자신의 의도적 목적에 따라 부분들을 산출하고 부분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에 기여하도록 조직한 것처럼 사유해야 한다. 칸트에게서 유기적 질서는 인간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유기적 질서의 이해를 위해 불가결한, 유기적 질서의 창조자이자 그것의 가능 근거인 직관적 오성을 이념으로 요청하여야 한다. 유기체의 목적은 부분을 가능케 하는 전체로서 개념인데, 그것은 논증적 오성에 의해 구성될 수 없는 이성 개념, 이념이다. 목적은 특수를 산출하는 보편이며, 특수를 자신의 의도에 따라 구성하여 합목적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목적에 따른 부분들의 통일인 합목적성 역시 목적과 마찬가지로 이성 개념을 나타낸다. 내적 목적과 합목적성의 이념은 보편으로부터 특수를 산출하는 직관적 오성의 표상 방식에 기초한다. 따라서 내적 목적과 합목적성, 직관적 오성을 관통하는 이성 개념은, 순수 오성 개념이 지각 경험에 대한 인식을 위해 불가결하였듯이, 유기체의 이해를 위해 불가결한 그것의 가능 조건이다.
--- p.60
헤겔에게 유기체는 칸트처럼 불가지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범형이다. 그것은 기계론적 과정을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계론적 과정의 목적으로서 작용하면서, 기계론적 과정이 의미를 지니게 한다. 유기체가 자연 목적으로서 자연 안에 존재하려면, 유기체를 합목적적으로 만들어 주는 목적 개념이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특수를 가능케 하는 보편, 즉 전체로부터 부분으로의 진행에 대한 구성적 사유가 가능해야 한다. 헤겔은 칸트가 유기체의 최상의 근거로서 유비적으로 사유했던 직관적 오성에 초점을 맞춰, 칸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의 규정을 해석함으로써, 유기체의 가능 근거를 개념적으로 논증한다.
--- p.76
헤겔은 이전의 목적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두 가지 점에서 비판한다. 하나는 목적의 근거를 세계 외적인 합목적성의 창시자에서 찾는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의도를 가진 오성으로 간주하여 목적론을 의식과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헤겔은 “목적론적 원칙이 세계 외적인 오성의 개념과 연관될수록 그만큼 그것은 참된 자연 연구로부터 멀어진다”고 주장한다(LB, 183: 20-23 / 155). 외적 주관적 목적론이 유기체의 목적의 근거를 유기체의 창조자인 신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우선적으로 이러한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칸트의 직관적 오성도 인간이 유비적으로 사고한 내용이지만, 자연에 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세계 외적인 오성이다. 칸트는 반성적 판단력이라는 인식론적 안전지대에서 유비적 사유를 통해 전통 형이상학과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신적인 오성은 이념이라는 형식을 지니지만, 유기체를 창조하고 유기체의 부분들의 상호 인과성을 자신의 특정한 목적에 따라 설계하였을 의도적 주체로서 생각된다. 하지만 헤겔은 유기체의 목적을 자연 초월적인 것으로서 간주하지는 않는다. 헤겔에 따르면 외적 목적론에서만 자의적인 의도가 문제 된다. 반면 유기체의 목적은 유기체라는 자연 사물 안에 내재하는 내적 목적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자의적 의도가 개입될 여지 없이 철저히 자연필연성이 관철된다.
--- p.83
이같이 칸트주의자들조차도 목적론에 대한 규제적 해석, 목적론의 발견법적 위상의 불충분성을 느끼면서, 객관적인 구속력을 갖는 목적론을 희망하고 있다(최준호 1998, 241-244). 나아가 유기체가 우리로 하여금 목적 개념을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칸트의 목적 개념을 우리의 주관적 해석 원리를 넘어서 사물 자체에 귀속하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다(박찬국 2004, 317 주 19). 이러한 희망과 시도는 칸트의 문제에 대한 헤겔적 해결을 지시하고 있다. 헤겔의 해결책의 핵심은 목적 개념을 자신을 특수로 분화하는 보편 개념으로서 논리적으로 방법론화한 것이다. 헤겔은 합목적성을 개념 논리적으로 구조화함으로써, 목적론을 자연의 객관적 질서 내지 규범으로서 논증한다. 나아가 그는 기계론과 목적론을 차별적 방식으로 규정하여 기계론을 목적론에 종속시킴으로써, 생물학이 물리화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신의 고유한 질서를 갖는 자연과학임을 증명한다.
--- p.180
나는 앞의 2장 1절에서 헤겔의 보편 개념을 사과의 씨앗에 담겨 있는 유전 프로그램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였지만, 그것은 특히 동물 유기체의 경우를 고려하면, 마이어가 말한 대로 유전 및 비유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제 폭넓게 목적론을 수용하는 마이어에게도 목적론은 더 이상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말해서는 안 되며, 헤겔의 보편 개념처럼 기관의 분화, 적응을 위한 형질, 생존을 위한 합목적적 행위 등을 규율하는 규범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이어가 대체하고자 했던 목적은 실은 어떤 자연 외적인 의도가 아니라 헤겔이 말하는 보편 개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헤겔이 말하는 존재론적 타당성을 요구하는 목적 개념은 생물학적 내용을 얻게 되고, 마이어의 유전 및 비유전 프로그램은 목적으로서 개념적으로 정당화된다. 자연과학으로서 생물학은 유전 및 비유전 프로그램과 합목적적 활동의 목적 같은 생물학적 실체 속에서 유기체의 합목적적 활동의 궁극 원인을 찾아야 한다. 텔레오노미가 이러한 객관적 목적 원인을 갖는다면, 텔레오노미는 더 이상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 p.20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