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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윈터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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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윈터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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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24g | 140*205*30mm
ISBN13 9791198173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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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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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린은 언제나 답답한 소리를 하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문득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구멍 난 양말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낡고 해져서 누가 봐도 초라하기만 한 모습. 버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버리고만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잠든 줄 알았던 세린이 벌떡 일어나더니 책꽂이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 들었다.
“만약에 말이야….”
뭔가 대단한 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을 길게 끌자 엄마가 코끝에 걸쳐 둔 돋보기안경 너머로 세린을 잠깐 쳐다보았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살고 싶어?”
---「무더위」중에서

상점은 하얀색 가래떡을 길게 세워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처 건물들에 비해 유난히 높고 웅장해서, 옥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다른 집들은 성냥갑처럼 보일 것 같았다. 출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토리야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들이 문 앞에 도착하자, 별다른 신호도 보내지 않았는데 저절로 문이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유령의 집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이 채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안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두운 상점 안은 그야말로 흥겨운 축제 분위기였다. 순간 토리야가 무도회장을 상점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노인도 이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지 괜한 헛기침을 했다. 천장에는 미러볼이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주변은 실루엣만 보이는 인파로 가득했다. 키 높이만 한 무대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도깨비들의 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단정한 웨이터 차림의 남자 도깨비가 다가오더니 쟁반에 담긴 정체 모를 음료를 권했다. 세린은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노인이 두 잔을 받아 한 잔을 건네는 바람에 마지못해 잔을 손에 쥐었다.
---「문지기 토리야」중에서

“갖고 계신 불행을 없애고 싶으신가요? 꿈꾸던 삶을 살아보시는 건 어떤가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요?”
듀로프는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일부러 잠시 시간을 끌었다.
“소개합니다. 저희 장마상점의 자랑, 도깨비 구슬입니다!”
곧이어 듀로프가 마술사처럼 현란한 동작으로 천을 걷었다. 익히는 데만 반나절은 꼬박 걸렸을 것 같은 멋진 포즈였다. 천은 공중에서 활짝 펼쳐지더니 나풀거리며 뒤쪽으로 떨어졌다.
---「장마상점」중에서

“저는 대체 어떤 걸 훔쳐야 할까요? 여기서 몇 년이나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도깨비들이 훔쳐오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훔쳐오고 싶어요.”
도깨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세린을 올려다보았다. 세린은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펜 끝을 잉크통에 담갔다가 뺐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마타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기 꿈을 이뤘다고 하는 사람이 있죠? 사실 그건 저희 아버지가 그들에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훔쳐왔기 때문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그걸로 올해의 도깨비 상을 무려 일곱 번이나 탔죠. 그에 반해 저는 아직도 이 모양이에요.”
---「마타의 서점」중에서

“저것들은 모두 자기만의 계절을 기다리고 있죠.”
세린이 포포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자기만의 계절이요?”
포포는 차를 한 모금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꽃과 나무에는 자기만의 계절이 있답니다. 어떤 날에는 화사하게 피어나지만, 늦은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죠. 심지어 모든 식물이 얼어붙는 가장 추운 겨울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꽃도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인간의 노력이 담긴 눈물과 땀을 모아 이곳의 식물을 돌보는 거랍니다. 가장 적당한 시기에 활짝 피어나도록 말이죠.”
---「포포의 화원」중에서

잇샤는 거의 엉겨 붙다시피 한 나무들 사이를 약 올리듯 지나다니며 그들의 화를 돋웠다. 나무뿌리 아래를 지날 때는 연체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미끄러지듯 통과하기도 했다. 공격을 피하는 잇샤보다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세린이 더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세린은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나무들은 잇샤를 잡느라 정신이 팔려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우왕좌왕 댔다. 줄기가 서로 꼬여 나자빠진 나무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 위로 다른 나무들이 타 넘어 다니면서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나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이만하면 됐어, 잇샤. 저놈들을 멀리 유인한 다음에 할머니께 돌아가자.”
잇샤는 짧게 울부짖고는 머리를 숲 바깥으로 돌렸다. 잔뜩 흥분한 나무들이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또다시 숲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포포의 화원」중에서

“아저씨도 원하는 게 있나요?”
“물론이지.”
노인은 아직도 열띤 토론 중인 사람들을 어깨너머로 슬쩍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세린의 눈망울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얻고자 했던 건 자네와 같은 젊음이었어.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자네에겐 추억이 있나?”
세린은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추억이요?”
“그래, 언제든 떠올리면 행복한 순간들 말이야. 나에겐 그게 없다네. 난 평생을 사업만 하느라 나중에야 뒤늦게 깨달았지.”
노인이 작게 한숨을 터뜨렸다.
“돈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도 있다는 걸 말이야. 내가 젊을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거야.”
세린은 노인이 말한 걸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잇샤와 함께한 순간들이 기억났다.
---「지하 미로 감옥」중에서

“잇샤는 먹는 것만 밝히는 멍청한 고양이가 아니야.”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뒤에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서 있었다. 분명 자신이 던진 판자 조각에 맞고 쓰러져 있어야 할 세린이 멀쩡히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판자 조각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너, 어떻게….”
세린은 그의 말을 자르고 외쳤다.
“잇샤는 세상에서 먹는 걸 제일 잘하는 고양이야!”
그러더니 한쪽 다리를 뒤로 빼면서 이상한 자세를 잡았다. 생전 처음 보는 자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뒷말이 나오기까지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내 소중한 친구야.”
---「안내묘 잇샤」중에서

“아….”
세린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침부터 무섭게 쏟아져 내리며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멈추고, 어느새 시커먼 먹구름이 걷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무지개가 떠 있었다. 세린은 문득 어느 상점과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남학생과의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빛 한 줄기가 그녀의 어깨에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무지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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