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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하는 혼잣말 : 염습(殮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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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136*200*17mm
ISBN13 9791165348847
ISBN10 1165348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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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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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정말 좋다니깐. 당신 몸 닦아 주는 동안 서로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참 좋단 거요. 어찌 보면 지금 이 시간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이잖소. 당신도 좋지 않소?”
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짐짓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어서 하기나 하라구? 헛허허, 어련히 내 알아서 하겠소? 보채지는 마시구려. 내가 닦아 낸 자리가 시원치 않다면 언제든 말해 주시구. 당신답지 않게 맘껏 성질부려도 좋소.”
거즈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아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무쪼록 내가 성심을 다할 터이니 좋게 봐 주시구려. 그래 요, 은신이……. 당신은 이름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당신은 참 오랜 세월 이름 없는 듯 살아왔지만 난 당신 그 이름이 참 좋소. 지금 난 은신이, 박은신을 맘껏 부를 수 있어 좋은데 듣는 당신은 어떠하오?”
아내 맨몸을 가린 흰 천을 가슴 위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천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왼손을 조금 들어 올렸다.
“아아…….”
이내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너무나 작았다. 그 무게가 너무나 가벼웠다.
죽음은 원래 안에서 바깥을 최대한 힘껏 잡아당기는 것인가. 그래서 피돌기가 멎은 공간 안까지만큼 신체가 축소되는 것일까. 원래 이렇게까지 조그맣게 느껴지던 손이 아니었다.
처음 잡아 보는, 만져 보는 손 같았다. 그 감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가 죽은 아내 손을 만져 보는 첫 느낌은 그렇게 한없이 작고 가벼웠다.
--- p.23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이처럼 왜소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던가. 그래서 사라지고 없어질 만큼 덜어 내고 끝끝내 비우는 과정이던가. 승민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아내의 손을 다시 한번 요모조모 애틋한 눈으로 살폈다. 다시는 못 보고 못 만질 손을 최대한 기억 속에 저장해 두겠다는 듯이. 살아오는 동안 그 손이 거머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려서 그런지 너무나 가벼웠다.
--- p.24

아내 은신의 얼굴은 조그맣고 갸름했다. 차게 식은 이마며 희다 못해 연한 잿빛으로 가라앉은 듯한 감겨진 두 눈, 오뚝한 콧날, 보랏빛 입술이 얼굴 안에 담겨 있었다.
--- p.33

당신 눈꺼풀을 닦는다. 살아 한 번이라도 거즈가 아니라 내 손이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없다. 단 한 번도.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않았을까. 내 손으로 진작 눈물을 닦아 주었다면 당신 세상은 보다 평화로워지지 않았을까? 눈이 더 맑아져 세상의 기쁨을 더 많이 보았을 텐데. 어리석고 부끄럽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눈물이 나의 죄구나. 이렇게 당신이 죽어서야 몸을 닦아 준다는 것이 결국은 내 죄책감을 문질러 닦는 게 아닌지. 더께더께 쌓인 내 허물과 잘못을 닦아 내는 속죄의 행위가 아닐는지.
--- p.88

느닷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가슴의 감정과 머리의 이성이 따로 놀았고 쉼 없이 으르렁거렸다. 아내와 내가 깊이 사랑한 것이 죄인가. (---)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들이 흔들림 없는 사랑을 하고 가족으로 결실을 맺은 게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 그토록 못마땅하고 언짢았는가.
--- p.200

"당신이 너무 고마웠어. 나에 대한 당신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깊고 크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 됐어. 그래서 그 이후 내 삶은 전부 나를 믿어 준 당신에 대한 은혜를 갚는 거라고 여겼어. 당신에 대해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지. 물론 많이 부족했다는 거 나도 잘 알지만…….”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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