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글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작가가 될 깜냥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말이 하고 싶어 글을 썼고, 쓰다 보니 좋아져 오래 붙들게 되었을 뿐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어 글을 쓰기도 했고,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밖에 없어 쓴 날도 많았다. 끝까지 깜냥을 운운했다면 나는 결국 쓰는 사람으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사람들에게 우리에게는 글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글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그저 나다운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사람을 위해 글이 존재하는 것이지, 글을 위해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니까.
--- 「프롤로그」 중에서
글을 쓰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은 오랫동안 지식인들의 일이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만 읽고 쓸 수 있었다. 그런 과거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글은 작품이라는 생각과 작가들이 쓰는 거라는 선입견이 강한 데다, 작가는 오랫동안 지식인이었으니 시작도 하기 전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데도 이런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글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듯이 말을 활자화한 게 글이다. 예전에는 구어체니 문어체니 하며 말하는 언어와 쓰는 언어에 차등을 두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 「1장 문턱 낮추기: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중에서
글이라고는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도 단번에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글 속에 그런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들이다. 부끄러운 모습도, 부족한 모습도 감추지 않고 보여주면서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는 사람은 금세 ‘좋은 글’을 써낸다. 이런 글은 짜임새가 엉성해도, 화려한 표현이 없어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이어도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 사람이 훈련까지 열심히 한다면 그의 글은 ‘좋은 글’인 동시에 ‘잘 쓴 글’이 된다.
--- 「1장 문턱 낮추기: 재능이 없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에 겁을 먹는 사람이 많다.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공감이나 감동은 사실 글을 읽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지나고 나면 결국 자신의 삶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공개한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게는 살이 에이는 아픔일지라도 독자에게는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다. 다만 내 안에서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쓸 때는 주저했지만 막상 쓰고 나니 큰 아픔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생각보다 더 아린 일이었음을 알게 될 때도 있다. 부끄러움은 더이상 부끄러움이 아니고, 아픔도 더는 아픔이 아니다. 글로 쓰고 나면 분명 같은 일인데 내 안에 다르게 남는다.
--- 「2장 본격 글쓰기: 공개적인 글쓰기, 나를 분리하는 글쓰기」 중에서
글을 쓴다고 하면 시작부터 틀에 너무 얽매이는 사람이 있다. 형식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신선함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데서 나온다. 형식을 지키고 기존 문법들을 착실히 따르느라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형식보다는 내용이니까. 사람도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한 것처럼. 내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럴싸한 표현이나 명확한 장르보다 훨씬 중요하다. 겉만 화려한 게 아니라 알맹이가 있는 글이 되려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그 본질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형식, 장르, 메타포보다 몇 배 더 귀하다. 독자에게 남는 건 결국 글쓴이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입장에서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담아내지 못하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 「2장 본격 글쓰기: 형식보다 메시지를 담아야」 중에서
글을 쓰는 건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다. 하루 전의 일이든, 한 달 전의 일이든, 수십 년 전의 일이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억을 되살릴 수밖에 없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야만 한다. 지구의 역사를 알기 위해 퇴적층을 조사하고, 인간의 역사를 알기 위해 문헌을 뒤지고, 우주의 역사를 알기 위해 먼 은하를 들여다보듯 내 글을 쓰려면 기억을 뒤져 내가 살아온 역사를 살펴야 한다.
--- 「3장 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 기억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 칭해본 적이 없다. 대신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쓰는 걸 좋아하고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작가라는 말이 가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때문에 지레 겁먹고 물러서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도 그렇지만 작가도 명명한다 해서 그 상태를 지속하는 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는 쓰는 사람이다. 꾸준히, 묵묵히, 뚜벅뚜벅 자기 생각과 느낌을 글자로 표현하려 노력하는 사람. 그렇다면 쓰는 사람이라 칭하는 나 역시 부끄럽지만 작가 바운더리 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나는 진짜 중요한 건 당장 책을 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은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낼 수도 있는 중간 결과물일 뿐, 쓰는 삶의 최종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
--- 「3장 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 책을 내는 것보다 작가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