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머니가 지내는 곳이 여기서 지척이다. 홍제천 밤길을 걷기로 하고 나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요양원에 계신 지 오래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제일 하고 싶으신 일이 뭐예요?” 어머니는 요 근처 인왕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재래시장에 가서 과일 한 알 사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자 가장 큰 행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84, 「엄마에게 걸음으로 부치는 밤 편지」 중에서
살다 보면 때때로 돌이킬 수 없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그럴 때는 힘들어도 잠깐 쉬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순리대로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하게 된다.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에 어느 녹음실에 막내로 들어갔을 때였다. 녹음실에서 같이 먹고 자던 엔지니어 정오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우리도 음악 한번 해볼래?”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삶이 시작됐다. 내가 지금 막 걸어온 길처럼, 인생에도 샛길은 별로 없다.
--- p.111, 「산도 인생도,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에서
나무 데크가 깔린 계단을 내려가며 옛 매니저 형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잘 내려가자.” 아, 사실은, ‘있어’ 보이려고 이렇게 표현했다. “멋있게 추락하자.” 같은 길이어도 오르막을 걸을 때와 내리막을 걸을 때가 전혀 다르다. 오르막길에서는 두 발에 힘주고 숨이 차오르면 땀도 식혀가면서 쉬엄쉬엄 갈 수 있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미는 것 같다.
--- pp.118~119, 「산도 인생도,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에서
나 또한 이삼십 대에는 나름 힙스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스쿠터를 타고 이 거리, 저 거리를 활보하면서 나와 닮고 나와 다른 청춘들과 어울렸다. 김지운 영화감독, 상이 형, 종신이 형, 동률이, 적이와 약속 없이 오다가다 마주치기도 하고, 수다를 떨고, 술잔을 기울이고,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람이 풍경을 만드는 이곳, 압구정동에서 수많은 음악과 영화가 탄생했고 문화적인 흐름도 만들어졌다. 이 거리는 되살아나 여전히 청춘들로 가득하지만, 더 이상 나의 거리가 아니다. 이제 나는 무서워서 스쿠터도 못 탄다.
--- p.151, 「산책의 끝은 언제나 집」 중에서
채석장 절개지는 나에게 서울에 남은 오래된 흉터처럼 느껴졌다. 아직 다 아물지 못해 속살이 드러나 있는 흉터.
자연과 시간의 힘으로 절개지 주변에 작은 집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안 그 온기가 딱지로 내려앉아 또 하나의 소중한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새살이 마구 돋아나야 한다. 겨울밤의 삭막한 절개지가 잊히지 않아 다른 계절의 풍경을 찾아봤다. 햇살도, 바람도, 비도 다정하게 찾아들었나 보다. 깎아지른 절벽에도 초록빛이 제법 풍성하여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 p.243, 「각자의 치열함이 빛을 내는 거리」 중에서
예전엔 여기 어둑한 놀이터에서 키스하는 연인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노래들에도 놀이터가 많이 등장한다. 시경이가 부른 노래 〈소박했던 행복했던〉에도, ‘처음 입 맞춘 그 밤’의 놀이터가 나오는데 그 배경이 바로 홍대 앞 놀이터다. 지금은 연인과 함께 앉을 그네도, 벤치도 없고 무엇보다 너무 밝아져서 그런 낭만은 도무지 찾기 힘들겠다. 놀이터가 있던 자리를 지나쳐 걷다 이번엔 아주 오래된 중국집도 사라진 걸 발견했다. 쟁반짜장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곡에, ‘널 데리러 온 그를 내게 인사시켰던 나의 생일날’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가사 속 생일 파티를 그 중국집에서 했었다. 이 거리에 스민 내 청춘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구나 싶다.
--- pp.250~251,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밤에」 중에서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다니는 희수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랑 툭하면 여기를 걸어 다녔다. 둘 다 돈이 없어서 어디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람 구경하며 그냥 걷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한참 걷고 나서 “오늘 예쁜 사람 많이 봐서 되게 좋다” 그러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진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그런 시시껄렁한 시간과 얘기를 나눌 친구가 점점 없어진다는 거다.
--- p.254, 「시시한 이야기가 그리운 밤에」 중에서
상처가 흉터로 아물면 통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 가리고 덮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 p.273,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