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란 돌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사람이었다. 사물의 표피를 꿰뚫는 그의 통찰력과, 그렇게 그가 남긴 수많은 걸작들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나는 문득 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망치와 정으로 깨어낸 파편과 가루들이 궁금하다. (……) 여기서 세계는 형태와 형태 아닌 것, 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으로 나뉜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후배들이 세상의 모든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형태들을 끌어낸 지금 우리는 결국 그 잔해들 속에서, 버려진 파편과 먼지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고 있다.
--- p.11~12, 「형태와 형태 아닌 것」 중에서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 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상자와 서랍을 더 많이 만들어서 그들을 그 안에 가두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수도승들의 단정한 생활을 따라 해봐야 한다. 때가 되면 부르지 않아도 어느새 피는 꽃들처럼 사라진 것들은 언젠가 다시 나타날 것이니, 지금은 어지러운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언제 쓸지 모르는 잡동사니들을 내다 버릴 시간, 내가 먼저 그들로부터 달아나야 할 시간이다.
--- p.39~41, 「물건들」 중에서
오래전 누군가가 ‘살아지더라’고 말했을 때, 내게는 그 말이 ‘사라지더라’로 들렸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이 한동안 실제로 사라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지 모른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살게 되더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 괜찮다는 말, 어쩔 수 없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그래서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어설픈 위로 따위를 듣지 않겠다는 말. ‘살다’ ‘살아오다’ ‘살아가다’ ‘살아내다’ ‘살아남다’가 아니라, ‘살아버리’고, ‘살아치우’고, ‘살아 없애’는 삶, 그래서 결국 삶 속에서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그런 삶.
--- p.83~84, 「살아지다」 중에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나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연필 끝을 통해 전해지는 켄트지의 촉감과 그것들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거기서 허용되는 자유, 그 위에서 달팽이처럼 천천히 움직일 수 있고, 마냥 멈춰 있을 수 있고, 또 언제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한다. 딱딱한 A4 용지에 볼펜으로 쫓기듯 써내려가는 공문서 같은 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가 거기 있다.
--- p.177~179, 「스케치북에 쓰는 글」 중에서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시대정신이 된 세상에서, 임박한 실직과 임박한 파산, 임박한 재난과 임박한 파국의 예감에 채찍질당하며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우리는 하필이면 ‘100세 시대’의 기나긴 생을 살아갈 아무 준비도 없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 영원이니 불멸이니 하는 것들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지금 우리에게는 석 달짜리 인테리어가 아니라 100년을 살아갈 영혼의 집을 지을 목수가 필요하다.
--- p.200, 「100세 시대」 중에서